태그 : 압생트

프랑스산 압생트 - La Muse Verte











0. 구입기

프랑스는 결코 압생트를 사기 좋은 국가는 아닙니다. 일단 압생트라고 이름 붙은 건 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페넬 성분인 펜촌에 대한 규제 역시 다른 EU국가 보다 심합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스위스에서 압생트의 부활이 이뤄지면서 압생트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 놀러와서
압생트를 찾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는 모양입니다. 프랑스 최대의 와인샵이라 할 수 있는 라비니아를 들러서
압생트에 대해 문의했더니 당장 압생트 코너로 안내합니다. 그러나 




저한테 베르상트를 권합니다. 베르상트는 압생트풍 리큐르입니다. 설탕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난 압생트를 원한단 말이야. 설탕 없는 거 "상 쉬크헤, 응?"
그거 말고 에밀 페르노나 푸제로예 달라고 했더니 그건 프랑스에서 생산되지만 수출 온리라면서 안타까워 합니다.
그거 사려면 프랑스 말고 다른 나라 가야합니다. (전의 포스팅에서도 다뤘지만 프랑스는 압생트생산은 가능 판매는 금지인
이상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됐다 고맙다고 하고 저 혼자 옆 선반을 보는데 호곡! 눈에 띄는 브랜드가 몇 개 있더군요.
퀴블러, 그리고 제이드의 블랑쉬, 그리고 라 뮤즈 베르트, 완벽하게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근접했어, 어헝헝.
아마도 프랑스에서 구할 수 있는 압생트 중에선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벨상트보다는 100배 나으니깐 말이죠.







1. 체험 삶의 현장!

외관은 내용물의 변색을 막기 위한 불투명 검은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거라 압생트가 아니라 "spiritueux aux plantes d'absinth(쓴 쑥 식물로 만든 증류주)"라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기다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68% 정통 압생트의 알콜함유량을 따르고 있습니다. 
병 뒷면에는 먹는 법과 설탕도 안들어갔고 색소도 안들어 있다는 자랑스러운 주장이 적혀있습니다.
마개는 당연히 증류주에서 볼 수 있는 T형 코르크.




일단 원액을 압생트 잔에 붓습니다.
프랑스제 싸구려 압생트 글래스인 "리오네"입니다. 15ml정도 부으려 했는데 그만 25넘게 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것이 입에 침이고이는 바람에 벌어진 오늘의 첫번째 실수입니다.
뭐 어떻게해요 물을 더 부어서 먹어야지. 일단 5:1로 만들 생각입니다.




스푼보다 제가 좋아하는 브루이외를 올려 놓고 구멍위에 각설탕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 위에 얼음을 채워 넣는데 부순 얼음을 올려 놓는 걸 깜빡하고 웻지 얼음을 올립니다.
이 것이 입안에 침이고여 벌어진 두 번째 실 수 입니다.
그리고 브루이외에 생수를 붓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루쉬"가 벌어지는 모습을 5배 정도의 속도로 돌려본 모습입니다.
이 압생트의 루쉬는 진하고 끈적합니다. 맘에 들어요 오홍






완성!
물조절을 못해서 물이 살짝 많이 들어가버린 걸 제외하면 제법 그럴 듯하게 나왔습니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아니스와 각종 허브의 향이 그윽합니다.


2. 보나스 체험
투우의 열정을 그린 헤밍웨이의 작품 "오후의 죽음"의 이름을 딴 "Death in the afternoon"이라는
칵테일을 만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신의 글라스" 사사쿠라 류는 가짜 압생트를 썼었지만 저는 진짜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실 샴페인님 역시 멈이 아니라 독일의 에디션 바움입니다. 일단 뮤즈 베르트의 풍부한 허브향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
리슬링 베이스를 골랐고 좀 달아도 좋을 듯해서 과감하게 브륏보다 살짝 더 달콤한 엑스트라 트로켄을 선택했습니다. 
(원래는 브륏을 첨가하는 게 정답입니다)

샴페인 플루트에 압생트를 붓고 천천히 거품이 올라오지 않도록 스파클링 와인을 붓습니다.







완성 "오후엔 마시고 죽자"라는 이름의 Death in the afternoon"완성. 잔은 스왈롭스키에서 나온 플루트가 수고해 주시는 바람에
 극약에 가까운 칵테일임에도 불구하게 우아하게 죽을 수 있을 듯합니다.




* 예고편



T. A. 브로의 압생트 블랑쉬, 제이드의 블랑솃 이야기...

추가:
마약 먹었다고 신고할 바보들이 있을지도 몰라서
마셔봤다나 무슨 맛이라는 이야기는 당분간 안 씁니다.
라는 건 핑계고

종합적으로 따로 포스팅 준비중입니다...
오늘은 사진으로만 참아주....


by 액화철인 | 2009/06/23 02:08 | 입 안의 쾌락 | 트랙백 | 덧글(13)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4 - 실전편(2)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네 번째 이야기 
실전편(2) 쇼핑 리스트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1 - 실체편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2 - 진상규명편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3 - 실전편(1)

앞의 글을 먼저 읽으시는 쪽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압생트 마시는 남자, 마네 作




너는 술을 맛으로 먹니?

압생트는 식전주(aperitif)’라는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식사 전에 먹는 식전주는 좋은 맛으로 식욕을 돋우고 혀의 감각을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술 중에서도 식전주는 특히 이 중요합니다. 식전주인 압생트는 환각 효과 때문이 아니라 역시 때문에 마시는 술입니다. 흔히 달달해서 리큐르라고 (특히 일본 사람들이)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사실은 리큐르는 아닙니다. (리큐르는 보틀링 시점에서 맛을 조절할 목적으로 당분이 추가되는 것이 리큐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유념할 점은 압생트가 취향을 타는 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는 아니스와 페넬인데 비교적 강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 식물들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향기가나는 풀에 대한 반감을 가진 경우도 많습니다. 월남 쌀국수나 타이 음식에 들어가는 고수라던지 개고기에 들어가는 산초라던지 하는 향기나는 식물을 못 드시는 분들은 대부분 압생트가 취향과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입견이나 취향을 넘어서 좋은 압생트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준다면 누구라도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뭔가를 억지로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부질 없는 다섯 가지 짓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요)

 

이 번 포스팅에서는 맛있는 압생트를 고르는 법과 마시는 법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좋은 압생트를 찾아서

전성기의 프랑스의 압생트는 다섯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오르디네르(ordinaire), 데미핀(demi-fine), (fine), 쉬페리외르(supérieure), 스위스(Suisse)입니다. 마지막 스위스는 스위스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압생트의 발상지인 스위스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최고 등급에 붙인 등급명입니다.

이 중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들어지는 건 쉬페리외르와 스위스 두 등급입니다. 오리지널 레시피라는 이야기는 기본재료인 아니스, 페넬, 쓴쑥을 빻아 넣은 알코올을 증류시켜서 72~74%의 블랑쉬를 뽑아내고 여기에 각종 허브를 이용해 착색했다는 의미입니다. 바꿔 말하면 밑의 세 등급의 경우는 알코올에 아니스, 페넬, 쓴쑥의 엑기스를 섞고 인공착색료를 섞어서 만들기도 했다는 의미입니다.

압생트 판금 이후로 이런 규정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현재는 스위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는 압생트 생산 및 판매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대부분의 국가에선 콜라와 알코올을 섞고 녹색으로 착색을 해서 압생트라고 팔아도 판매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말도 안 되는 물건이 압생트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번의 포스팅에서도 살펴본바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좋은 압생트고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자료와 증거들은 분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벨에포크의 사료들과 그리고 당시 생산되었던 압생트들이 그 모습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애호가들과 장인들이 고집스럽게 그 압생트의 이상을 현대에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먹거리와 마실거리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압생트를 만드는 데에는 재료가 가장 중요합니다. 최고의 압생트는 포도주를 증류한 오드비(eau-de-vie)’를 베이스로 만들어집니다. 비트순무 알코올은 한 단계 아래의 제품에 쓰여지고 그레인 알코올은 그야말로 최저급의 선택입니다. 베이스 허브 역시 까다롭게 선택됩니다. 아니스, 페넬, 쓴쑥을 가리켜 압생트의 성삼위일체(holy trinit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원래 이 말은 세 가지 허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료의 조합인 그린아니스(green anice), 플로렌스 페넬(Florence fennel), 향쑥(grande wormwood) 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최고의 압생트란 포도 오드비에 성삼위일체의 허브를 빻아넣고 증류시킨 후 자연허브를 이용해 착색한 것을 의미합니다. 압생트가 맛이 중요한 술인 만큼 이런 까다로운 재료의 선정은 압생트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최고의 압생트에 대한 모습을 머리 속에 넣고 이제 본격적으로 쇼핑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재 시중에 유사품까지 포함해서 10여 개 국에서 200개가 넘는 브랜드의 압생트가 나와 있습니다. 각 나라의 스타일과 관련 법규, 그리고 역사가 다라 국가별로 분류를 해보았습니다. 명시된 가격은 현지에서 팔리는 가격을 일괄적으로 US달러로 환전해 놓은 겁니다. 혹시 한국에서 구하실 때 참고하시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프랑스: 눈 가리고 아옹 중

놀랍게도 프랑스는 아직도 압생트가 금지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생산해 내고 있고 열심히 소비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 일단 프랑스는 압생트의 생산금지를 한 적이 없습니다. 1915년 대통령 푸앙카레가 내린 금지조치는 판매금지였지 생산금지는 아니었죠. 하지만 내수 없이 수출용으로만 꾸려나갈 수 있는 산업은 아니었기 때문에 판매금지는 생산금지와 마찬가지의 효과였습니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2000년 영국 사업가 조지 로울리는 판금 이후 최초의 수출전용 압생트 양조장을 프랑스에 세웁니다. 가짜 압생트를 영국에 최초로 소개한 바로 그 사람이 이번엔 진짜 오리지널 압생트를 팔아 먹어보기로 결심한 셈인 거죠. 결국 프랑스 정부에서는 같은 해 압생트를 금지 시킨 법은 폐지하지 않은 채 1988년 만들어진 식품법인 식품 내 투존 허용수치는 10mg/l 이하로 한다라는 법을 기준으로 규정에 맞는 주류를 쓴쑥으로 만든 이용한 증류주(spiritueux aux plantes d'absinthe)”, “증류시킨 쓴쑥(absinthes distillées)”, 쓴쑥을 바탕으로 한 증류주(spiritueux à base de plantes d’absinthe)”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내립니다. 내용물은 같지만 이름이 틀려진 거죠. 그래서 현재 프랑스에도 압생트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비록 압생트를 압생트라 부르지는 못하지만 말이죠. 다만 프랑스에서 압생트를 구매할 때 주의해야 할 사실 하나는 프랑스 식품법은 페넬 추출물인 펜촌에 대한 규제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일부 브랜드의 경우는 프랑스 내수품이 오리지널과 다른 레시피로 만들어진 것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추천 브랜드

프랑스의 최초의 압생트 양조장인 페르노 양조장이 세워졌던 프랑스 압생트의 성지, 퐁타를리에를 중심으로 전통의 강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에밀 페르노(Emile Pernot)

그 페르노(Pernod)가 아닙니다. 벨에포크 시대에는 1890년대에 시작한 후발주자라 Pernod에 의해 유사품 취급도 받고 상표권관련 피소도 당하던 브랜드였지만 현재는 현대 프랑스 압생트에 있어서 대표적인 메이커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스타일의 압생트를 만들면서 스타일을 변화시켜 나가는 끊임 없는 연구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지금 보다는 미래가 기대 되는 회사입니다.



 

Un Emile 68

700ml, 68% ABV

판금 이후 최초로 프랑스인에 의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지금은 워낙 쟁쟁한 녀석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격이 떨어진 느낌도 들지만 압생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압생트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해 줄 수 있는 교과서적인 압생트이며 에밀 페르노의 대표적 상품입니다. 가격은 55불 정도.

 





Roquette 1797

700ml, 75% ABV

이름은 압생트의 발명자로 알려진 오르디네르박사의 애마의 이름과 압생트가 태어난 해에서 따왔습니다. 페르노(Pernod)가 식전주로 레시피를 변경하기 전,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던 시절의 레시피라 정말 같은 느낌도 나고 루쉬도 늦게 일어납니다. (처음엔 안 일어나는 줄 알았음) 하지만 독특한 끝 맛을 즐길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압생트 경험자에게 추천. 가격은 70불 정도.

 

 

제이드(Jade)

브로(T. A. Breaux)라는 미국 뉴올리언즈 출신의 미생물/화학자가 런칭시킨 브랜드입니다. 압생트에 관심이 많았던 브로는 문헌자료와 현재까지 남아있는 판금전 빈티지 압생트를 연구해 완벽한 압생트를 재현하는 것을 일생의 꿈으로 삼았던 남자였습니다. 페르노(d)전성기의 콩비에 증류소와 협력하여 그는 2000년 제이드라는 브랜드를 설립하게 됩니다. 퐁타를리에의 콩비에 증류소는 프랑스의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와인 오드비가 아니라 실제로 당시 압생트의 베이스 알코올로 쓰였던 마르뒤뱅(포도찌꺼기로 만든 와인) 오드비의 품질까지 세세히 따져서 고증하는 제이드는 판금전 압생트 수집광인 브로가 만드는 브랜드답게 당시의 맛을 재현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PF 1901

750ml , 68% ABV

빈티지 압생트인 페르노 피(Pernod Fil) 1901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입니다. 오리지널 페르노 피 1901의 강렬하고 복잡한 맛과 향, 특유의 끈적거리는 루쉬와 오래 가는 끝 맛까지, 조금 비싸기는 해도 그 값어치를 합니다. 80불 내외

                   

 




Edouard

750ml, 72% ABV

판금 당시 3위의 브랜드였던 에두아르 페르노(Pernod Fil과는 다른 브랜드)의 레플리카입니다. 페르노 보다 훨씬 더 상류층 지향이었던 에두아르 페르노를 훌륭히 재현해 냈기 때문에 PF1901보다 훨씬 정제되고 부드러운 맛을 보여줍니다. 80불 내외




 

Lucid

750ml, 62% ABV

루시드는 엄밀하게 말하면 제이드社의 압생트는 아닙니다. 다만 브로가 개발한 레시피로 브로의 콩비에 증류소에서 미국회사인 비리디언 스피리츠(Viridian Spirits)의 주관 하에 생산되는 일종의 OEM제품입니다. 2007년 판금 해제 후 미국시장에 최초로 소개된 압생트로 현재 미국시장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입니다. 수상해 보이는 고양이 눈이 그려진 매력적인 병 디자인이 특징적이죠. 골수 순수주의 애호가들에겐 조금 욕을 먹고는 있지만 압생트 입문자들에게는 제법 괜찮은 제품입니다. 제이드와의 차이 점은 오드비 대신 비트알코올로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전용허브농장에서 키운 허브가 아니라 외부에서 구입한 허브로 만들어진다는 것 정도입니다. 아니스 맛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을 위해 약간의 맛 조정도 들어갔죠. 그러니까 격이 많이 떨어지는 제이드 제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정식 명칭은 “Absinthe Supérieure”인데 이건 등급에 대해 표시한다기 보다는 압생트라는 이름에 대해 프랑스정부와 마찬가지로 민감해하는 미국정부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가격은 60~70불 사이.

 

 

스위스: 발상지의 자존심

최고 등급의 압생트가 스위스로 불리는 이유는 스위스가 발상지라는 이유도 있지만 스위스는 좋은 압생트의 바탕이 되는 알프스의 좋은 허브가 자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압생트는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1910년의 압상트 판금 및 제조금지 이후에도 소형 증류소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압생트가 밀조되어 왔습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착색과정을 생략했고 알코올 함량을 50~55%로 낮춰 언뜻 봤을 땐 보드카나 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압생트 블랑쉬는 푸른 색을 뜻하는 라블뢰라는 은어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색이 없는 압생트를 블랑쉬 말고도 라블뢰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엔 이런 사연이 있는 거죠.

스위스 압생트 부활 뒤에는 퀴블러라는 회사의 대를 뛰어넘는 집념이 있습니다. 1863년에 발드트라베르 지역에 세워진 퀴블러 증류소를 통해 스위스 압생트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았던 퀴블러에게 1910년 떨어진 판금조치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을 겁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4대 째 후손인 이브 퀴블러는 자신의 혈통과는 관계 없이 평범한 전기수리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가문의 유산인 포도밭과 양조장을 유산으로 물려 받으며 모든 일은 시작됩니다. 그는 뒤늦게 증조 할아버지의 성공신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빼앗긴 가문의 영광을 되찾고자 집념을 불태웁니다. 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이브 퀴블러는 그야말로 기초인 알코올 증류법부터 라블뢰 제조법에 이르는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밤낮없이 팠고 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90라랭셋(La Rincette)”이라는 파스티스를 내놓습니다. 이 제품은 진짜 그야말로 압생트 라블뢰에서 문제 재료인 쓴쑥만 빠진 제품입니다.

그러다 2001 10월 라랭셋에 쓴쑥을 조금 첨가한 제품을 퀴블러의 쓴쑥 추출액(Extrait d'Absinthe Kübler)”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습니다. 그야말로 압생트인 셈이죠. 문제는 이 술의 이름이 엑스트레답생트인데다 투존함유량에 관한 법도 지키고 있는 합법적인 제품이라는데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정도면 싸워 보자는 거죠. 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압생트에 가까운 이 제품 덕에 압생트에 대한 논쟁이 전면에 재부상하고 압생트 규제에 대한 불합리성을 깨달은 스위스 정부는 2005년 입장을 바꿔 압생트 생산을 전면 허용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합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압생트 품질에 관한 강력한 규정도 도입하게 되죠. 이왕 만들 꺼 제대로 만들어라 라는 대인배적인 정부시책인 셈이죠. 반드시 허브혼합주를 증류시킬 것, 반드시 무색투명하든지 아니면 천연재료로만 착색할 것, 즉 예전 프랑스의 다섯 등급 중, 슈페리외르와 스위스 등급만 압생트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스위스에서 생산되는 “absinthe”라는 이름의 술은 일정등급 이상의 품질을 보장한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퀴블러의 제품소개는 그닥 추천 할 만 하지 않아서 생략합니다)

 

추천브랜드

스위스는 압생트 밀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상지인 발드트라베르지역과 인근 지역으로 훌륭한 양조장이 많습니다. 여기서 소개할 브랜드는 발드트라베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칼나흐의 마터루긴뷜입니다. 왠만하면 제가 마셔본 제품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스위스 브랜드로 알려진 Helfrich의 이야기는 일단 뺐습니다.

 

마터루긴뷜(Matter-Luginbühl)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스위스 압생트 양조회사입니다. 이 증류소가 위치한 곳은 노이샤텔과 베른 사이의 칼나흐(Kallnach)라는 지역입니다. 1920년대 압생트의 탄생지인 노이샤텔/발드트라베르 지역과 왕래가 있던 양조장 설립자 에른스트 루긴뷜-뵈글리가 자기의 소 한 마리를 주고 압생트(라블뢰) 레시피를 입수합니다. 그리고 불법이라 실제로 만들어 보지는 못하고 어디엔가 처박아뒀었는데 8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증손자이자 현재 마터루긴뷜의 경영자인 올리버 마터가 고문서를 뒤지다가 그 걸 발견하고 나서 2005년 스위스의 압생트 판금이 해제 되자마자 칼나허(Kallnacher)”라는 이름의 라블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게 공식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칼나흐 지역은 판금시절에도 라블뢰가 밀조되던 지역이었고 현재 남아있는 밀조 라블뢰와 마터루긴뷜의 칼나허의 맛이 판박이인걸로 봐서는 아마도 루긴뵐 양조장이 압생트를 처음 만든 것은 2005년이 아니라 훨씬 전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상급 지멘탈 품종의 소를 주고 바꾼 레시피를 안 써보고 처박아뒀다는 게 말이 됨?)  밀조했었다는 범죄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는 없는 건 당연한 것 아니 겠습니까. (금지한 적도 없었는데 밀조했었다고 떠들어대는 체코의 힐과는 사뭇 상반되는 이야기입니다.) 라블뢰의 레시피는 있었으나 베르트의 레시피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마터루긴뷜에 날개를 달아준 건 독일의 압생트 전문가인 마커스 리온이었습니다. 리온과 손을 잡고 마터 루긴뷜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Kallnacher Absinthe

1l, 55% ABV

밀조시대의 바로 그 맛. 판금해제 이후 최초의 스위스 압생트. 최초로 합법적으로 상용화된 라블뢰. 왠지 거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부드러운 맛입니다. 스위스 라블뢰는 알코올도수가 낮아서 그런지 허브의 향이 더 극명하게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라블뢰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으로 라블뢰 초심자에게 강력 추천. 50불 내외

 

Duplais 시리즈

판금 이 후 스위스에서 최초로 생산된 베르트인 뒤플레 압생트를 필두로 뒤플레 베르트, 뒤플레 밸런스, 뒤플레 블랑쉬 등의 제품군을 자랑하는 마터루긴뷜 최고의 라인업입니다. 독일 출신의 주류전문가 마커스 리온과 마터루긴뷜이 최초로 협력한 작품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최고 압생트인 스위스급의 제조규정을 정리한 뒤플레의 증류주와 리큐르에 관한 규정(Traité des Liqueurs et de la Distillation des Alcools)"을 기반으로 제조된 최고급 압생트입니다. 이 중 최고작으로 꼽히는 뒤플레 밸런스는 뒤플레의 규정을 바탕으로 마커스 리온이 다소간의 밸런스 조정을 한 제품으로 마커스 리온의 감각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밸런스는 단순하게 밸런스 조정했다는 의미 이외에도 마커스 리온이 좋아했던 영국 출신의 음악가 고() 존 밸런스(인더스트리얼 그룹 코일의)의 이름을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라벨에 그려진 그림 역시 존 밸런스의 작품입니다. 이 후 마치 무통 로췰드와 비슷하게 유명인사의 그림을 이용해 브랜드를 정의하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됩니다. 뒤플레 밸런스의 경우 500ml 한 병에 40불 정도.

 

Brevans 시리즈

500ml, 68% ABV

브레방 시리즈는 레시피 창안자의 이름을 따르는 뒤플레의 전통을 따릅니다. 1897년의 쟈크 드 브레방의 레시피를 따라 베이스 알코올도 와인 오드비와 마르 오드비를 섞어서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제법 쌉쌀한 편이고 허브들 간의 발란스도 좋습니다. 브레방의 레이블은 에일리언을 디자인한 걸로 유명한 HR기거의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50불 정도

 

 

Mansinthe

700ml, 66.6% ABV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잠깐 소개한 바로 그 브랜드입니다. “마릴린 맨슨과 마커스 리온이 공동제작한…” 이라고 해도 마커스 리온이 만들고 맨슨이 마셔보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 그걸 반영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겠죠? 실제로 맨슨은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압생트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알코올 함유량이 66.6%인 것 역시 맨슨답지 않습니까?

맨신트는 기대했던 것 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좋다. 하지만 같은 회사의 뒤플레나 브레방 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맨신트는 저도 못 먹어봤어요. 현재 가장 궁금해하는 압생트입니다)라벨의 그림 역시 맨슨이 직접 그린 수채화“MB의 초상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60~70불 정도

 

 

스페인: 더욱 달콤한 남유럽 스타일

스페인은 압생트를 금지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제법 소비가 잘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마도 청십자 운동이 시작되기에는 스페인 신부님들께서 술을 너무 좋아하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프랑스에서 압생트가 금지되자 페르노는 프랑스의 공장을 유사품인 파스티스를 생산하도록 변경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남부의 타라고나라는 곳에 압생트 증류소를 세웠습니다. 스페인 시장을 개척하려고 한 거죠. 많은 현지 업체들과 피난 온 다른 프랑스 업체들이 꾸준하게 압생트를 생산했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기에 결국 60년대에 페르노는 공장을 폐쇄해버렸고 많은 스페인 압생트 생산 업자들도 이를 따랐습니다. 이 때 살아 남은 세르피스, 데바, 세가라 등의 전통 있는 브랜드와 신규 브랜드인 옵셀로 등이 있습니다. 스페인으로 퍼진 압생트는 재료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린 아니스외에도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이 원산지인 마탈라우바(matalauva)라는 아니스가 첨가되는데 이 덕분에 맛은 더욱 달콤해지고 상큼한 감귤류의 느낌을 띄게 됩니다. 이런 스페인 스타일의 압생트는 현지 표기대로 압센타(Absenta)라고 불립니다. 압센타는 일반적으로 50~55%에서 증류되어 달콤한 리큐르의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따라서 왠만하면 압센타를 드실 때는 설탕은 빼놓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물로 희석시켜서)

 

Obsello

700ml, 50%

사실 현재 압센타라는 제품에 대해서는 추천할 만한 브랜드가 거의 없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변형도 많이 되었었고 특히 주 소비처가 밭에서 농사짓다가 더울 때 한 잔 먹는 레모네이드 정도의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품질과 맛에 대한 고민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할까요. 그런데 옵셀로는 그런 대충 만드는 것이 잘 만드는 것이라는 압센타의 전통을 기특하게도 무시한 채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 만드는 압센타의 명품입니다. 바닐라 향과 진한 루쉬가 마치 허브향기 꽃향기 가득한 밀크쉐이크를 마시는 듯한 느낌마저 전해 줍니다. (츄릅) 특히 단 것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 초보자들에게도 강추. 50~60

 

압센타는 이 외에도 마리 마얀스와 데바를 마셔봤지만 둘 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미국: 글로벌 압생트 시장의 새로운 강자

2007년 가장 크고 트렌디한 시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 드디어 압생트를 해금 시키게 됩니다. 1912년 판금 이 후 95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이 판금해제를 주도한 회사는 스위스의 판금 해제에도 기폭제 역할을 한 집념의 퀴블러와 미국회사로 프랑스의 압생트 전문가 브로와 손을 잡은 비리디안(앞에서 소개한 루시드의 판매원)입니다. 미국시장을 개척하려는 두 회사는 각각 미국의 담배주류세금및무역국(Tobacco, Alcohol Tax and Trade Bureau 줄여서 TTB)의 문을 두드립니다.

흥미로운 건 미국에서 압생트는 이미 어느 순간인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해금되었었다는 겁니다. 1912년 발효되었던 법률은 정확히 압생트라는 이름의 제품을 금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률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서 압생트금지투존금지조항과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었는지 빠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투존을 규제하면 압생트도 자연적으로 금지되는 거 아니겠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투존금지라는 말에는 구멍이 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無투존(thujone-free)”이라는 개념에 그 구멍이 있습니다. 이 말은 투존이 아예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0ppm이하인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다이어트 음료에서 100ml 4Kcal 미만이면 0Kcal로 친다는 것과 비슷한 거죠.) 따라서 정통 레시피로 만들어진 압생트는 미국식품관련법의 관점에서 보면 투존이 안 들어 있는 셈인 거죠. 결국 법률을 정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압생트를 규제할 법적근거가 사라져 버린 셈이 된겁니다. 압생트는 미국기준으로는 無투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금지조항이 없다는 것과 판매허가를 받는다는 건 다른 문제죠. 수입주류의 판매허가를 담당하는 건 담배 및 주류 관련 관세청/국세청 같은 조직인 TTB였습니다. 압생트에 관한 TTB의 입장은 조금 틀렸죠. TTB압생트라는 마약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악명이 마케팅에 사용된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제품명으로 한다는 건 마치 코케인이나 “LSD”라는 이름의 보드카를 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결국 이 덕분에 스위스대사관의 문화홍보담당까지 동원되어 TTB 관료들에게 전부 오해였다능. 빅토리녹스 아미나이프나 스와치처럼 압생트는 스위스의 훌륭한 문화상품이라능,. 우리도 2005년에 제조를 허가했다능이라고 압생트의 무해성과 우수성에 대해 설득하는 노력을 보입니다. 드디어 2007압생트라는 이름을 직접적인 브랜드명으로 쓸 수 없고 (제품을 묘사하는 이름으로 쓸 수 있음) 절대로 라벨에서도 강조되어서는 안된다는 조건 하에 2007년 판매허가가 내려집니다.

 

 

 

 

2007년 미국TTB로부터 최종적으로 판매허가가 떨어진 퀴블러의 라벨. 제품브랜드는 퀴블러.

압생트라는 이름은 정말 숨은 그림 찾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숨겨져 있다.

위로부터:

허브와 향신료를 함유한 곡물중성주정

스위스 압생트 쉬페리외르

퀴블러

노이샤텔의 발드트라베르에서 증류

스위스

 

 

추천 브랜드

집요한 압생트 마니아의 노력이 느껴지는 브랜드들이 눈에 띕니다. 전통보다는 도전이 미국 압생트에서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와인산업과 마찬가지로 부족한 역사를 풍부한 자원과 개인의 도전정신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토(Marteau)

미국 압생트계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기디온 스톤이 만든 브랜드 입니다. 유럽의 역사와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기디온 스톤은 압생트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조사를 시작하는데 압생트에 대한 대부분의 사실이 거짓이라는 걸 발견하고는 끝까지 파보기로 결심합니다. 2004,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시애틀의 친구들과 함께 “Wormwood Society”라는 압생트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그의 압생트 탐구여행에 있어 커다란 인적 자산이 됩니다. “아마츄어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프로라는 전개는 열정으로 뭉친 동호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곧 스톤의 압생트에 대한 집념은 단순히 맛보는 것을 넘어서 증류법을 배워 직접 만들어 보는 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자기집 창고에 소형 증류장비를 갖추고 브레방과 뒤플레 등이 만든 19세기의 매뉴얼을 실험하면서 자신이 먹어본 옛날 압생트의 맛을 구현하려 노력을 했고 결국 그 레시피를 가지고 스위스의 유명 압생트 양조업체인 마터루긴뷜에게 증류를 의뢰합니다. 그래서 2007년 탄생한 것이 바로 마르토 베르트 클라식(Marteau Verte Classique)”입니다. 2006년 기디온 스톤이 유럽으로 건너가 마터루긴뷜 사람들과 압생트 생산을 논의하던 시절은 아직도 미국에선 판매금지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원래 이 술도 주로 유럽에서 판매될 목적으로 생산되었던 거죠. 그런데 일이 급박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베르트 클라식이 나올 쯤에서는 이미 비리디안과 퀴블러의 노력으로 TTB에서 압생트 판매가 허가되고 생산을 규제할 만한 근거도 없어진 거죠.

기디온 스톤은 2008년 오레곤주 포틀랜드의 하우스 스피리츠라는 양조장으로 생산라인을 옮기고 알프스와 기후와 토질이 비슷한 몬타나의 산 기슭에 허브밭을 가꿔 베르트 크라식보다 훨씬 더 정통에 가까운 두 번째 모델을 내놓게 됩니다.

 

마르토 압생트 들라벨레포크 (Marteau absinthe de la belle epoque)

750ml, 68% ABV

벨 에포크 시대의 압생트라는 이름을 자신 있게 달고 나온 미국 최강의 압생트. 한 마니아의 열정이 맺은 결실. 이제는 생산이 중단된 마터루긴뵐이 생산하던 마르토 베르트 클라식이 칵테일 재료로서의 압생트 특정 향이 더 강조가 된 레시피로 만들어졌다면  들라벨레포크는 그야말로 당시의 모든 걸 재현해서 미국인들에게 소개 하려는 기디온 스톤만의 집념이 어려있는 명작입니다. 본토의 제이드 시리즈나 뒤플레에 비해서 전혀 뒤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훌륭한 브랜드 입니다. 강력 추천. 90~105

 

세인트 조지(Saint George)

세인트 조지는 캘리포니아 알라미다에 위치한 양조회사 입니다. 1980년대에 프랑스/독일 국경의 알사스 지방 출신인 요르그 루프(Jorg Rupf)라는 양조 기술자가 캘리포니아 과수원 과실의 품질에 감탄, 이 녀석들로 오드비를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증류소를 세운거죠. 그러던 중, 랜스 윈터스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 이력이 재미있습니다. 원래 해군 항공모함에 근무하던 핵기술자였던 윈터스는 일이 재미가 없어 때려 치고 자신의 창의성과 순수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직업 반, 취미 반으로 집에서 맥주 등의 술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걸 한 번 직업으로 삼아볼까 하면서 세인트 조지를 기웃거리고 있었던 겁니다. 일단 채용해 보니까 왠걸 오랜 세월의 경험을 가볍게 뛰어넘는 센스와 지식의 소유자였던 겁니다. 2002년 윈터스의 아이디어로 오드비를 증류하는 기법을 이용해서 행어 1이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보드카를 시장에 내놓고 세인트 조지는 그 이름을 전국적으로 떨치게 되었습니다. 원래 성조지라는 성인은 창으로 멸종위기에처한공룡용을 죽인 전설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성조지라는 이름의 양조장에 그야말로 창(lance)이 생긴 셈이지요. 윈터스가 가진 맛에 대한 고집과 감각에 반한 창업자인 요르그 루프는 실질적으로 윈터스를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현재 랜스 윈터스는 루프와 함께 세인트 조지의 동업자입니다.

 

 

St. George Absinthe Verte

750ml, 60% ABV

랜스 윈터스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괴작. 괴작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참 맛있는 압생트인 건 사실입니다. 2007년 해금 이 후 미국 땅에서 최초로 생산된 압생트였습니다. 루시드, 퀴블러를 이어 미국 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한 세번째 압생트입니다. 정통파 압생트를 지향하기 보다는 랜스 윈터스라는 천재가 그만의 독특한 해석을 담아 만든 작품이죠. 포도 오드비를 생산하는 회사답게 양질의 포도 오드비를 베이스로 하는 고급 압생트입니다. 사실 정통파인 마르토가 먼저 소개가 되고 바리에이션으로 세인트 조지가 나왔더라면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강렬한 허브의 향이 기분 좋게 자극적입니다. 70~80

 

 

 

그럼 이제 한 잔 할까?

제가 최근 참 좋아라하는 만화 중 하나인 바텐더에 보면 사기꾼에게 파스티스를 스트레이트로 먹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기꾼은 으웩, 이게 뭐꼬?”, 그러니까 주인공 류가 “9명이 싫어하고 1명이 좋아한다뭐 어쩌고 이러면서 여기에 물을 부어서 파스티스 워터라는 칵테일을 만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애니판에서는 중간에 칵테일 이름이 자막으로도 나오는 그야말로 피쳐드 칵테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요. 이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은 류가 사기꾼을 어지간히도 싫어하는구나였습니다.

파스티스는 상당히 인기 있는 식전주로 10명 중 1명만이 사로잡히는 그런 마이너한 드링크는 아닙니다. 그리고 미친 거 아니라면 저런 식으로 스트레이트로 절대 마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원래 물을 부어 마실 것을 생각하고 만든 거죠. (솔직히 파스티스 스트레이트는 술자리 벌칙으로는 꽤 괜찮을 듯하긴 해요) 류는 그런 “10명 중 1명만이어쩌구 하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 사기꾼 손님에게 파스티스를 스트레이트로 먹인 걸 보면 대단히 미워하는 듯. (아 물론 작가의 오류 쪽이 더 정확한 거겠지만)

파스티스는 압생트의 대용품입니다. 따라서 압생트도 당연히 물을 부어서 먹습니다. 전에 소개 드린 압생티아나라는 의식입니다. 이걸 하기 위한 장비(?)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압생트 액세서리의 경우는 압생트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압생트 관련 사이트에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압생트 잔


압생트 잔은 압생트의 정량이 표시되어 있는 편이 좋습니다. 우측은 잘록하게 들어간 형태로, 좌측은 회오리 모양의 문양으로 양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원액의 색과 물을 부었을 때의 루쉬를 관찰할 수 있도록 무색투명해야합니다.

일반적인 텀블러나 올드 글래스는 바닥이 넓어서 루쉬로 인해 개방되는 향의 효과가 적다는 느낌이듭니다. 전용 글래스가 없을 경우에는 샴페인용 플루트나 셰리잔, 혹은 좁은 고블렛, 길쭉한 필즈너잔 같은 걸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만 술은 역시 전용 글래스에

압생트잔은 스템이 짧기 때문에 보울 부분을 쥐고 마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스푼


압생트 스푼에는 구멍이 뚫려있어야 하며 잔에 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은 그래서 스푼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구멍 뜷린 주걱에 가까운 형태의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루쉬를 저어가면서 마시는 상류층의 습관을 위해 스푼의 스템 중간 부분에 설탕을 놓을 수 있는 그릴부를 달고 있는 레퀴예레라는 형태도 있습니다.(Les Cuilleres, 스푼들이라는 스푼의 복수형입니다. 끝부분의 스푼 외에 중간에도 달려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 반면에 아예 스푼의 형태를 버리고 그릴 부분만 컵에 걸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있습니다. 스푼은 각설탕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따라서 각설탕이 없거나 필요 없다면 스푼도 필요 없죠.

 

파운틴


루쉬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도 낮아야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떨어져야 합니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나오는 구라디캔팅 정도로 얼음물을 따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엔 스포이트로 한방울씩이라는 쪼잔한 짓을 해야겠죠. 가장 깔끔하게 압생트를 물로 희석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물건이 바로 파운틴입니다. 물통에 수도꼭지가 달려서 그야말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합니다. 생긴 거에 비해서 가격도 나쁘지 않아서 우리 돈으로 10만원 이하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긴 한데 문제는 번거로움과 부담스러운 부피입니다. 전문적인 바 내지는 가정 내의 미니바라면 설치해 놓을 수도 있지만 일반가정에선 상시 비치하고 쓰기엔 조금 부담스럽죠.

 

브루이외(brouilleur)


스푼과 파운틴의 역할을 하나로 만든 정말 편리한 물건입니다. 혼자 압생트를 즐기는 분이라면 스푼이나 파운틴 없이 이거 하나만 있으면 끝입니다. 압생트 전용 드리퍼라 할 수 있죠. 글래스 위에 얹고 설탕을 올리고 그리고 물을 조금 부으면 설탕을 녹이면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가격도 파운틴에 비해 무척이나 저렴합니다. 현재는 유리로 된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예전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습니다.

 




 


고전적 스타일의 금속제 브루이외


 

이상으로 4회에 걸쳐 진행되었던 압생트 이야기를 마칩니다. 잘못 알려졌던 사실이 바로잡히길 바라고 더 나아가서 한국에서도 진짜 압생트를 지금 보다는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아마도 부록쯤으로 압생트 관련 포스팅이 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줄이면서 쓰느라 불명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점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추가 1.

압생트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과 오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압생트가 마약으로 지정되어 수입금지라는 이야기 역시 이런 오해 중 하나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마약은 식약청의 마약류 관리지침에 나와 있습니다. 첨부된 마약리스트엔 압생트도, 쓴 쑥도, 투존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약으로 규제 받지 않습니다. 단 압생트의 재료인 쓴쑥에 관해서는 식약청 식품공전에 식용으로 절대 쓸 수 없는 것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압생트의 제조 및 판매는 식품위생법 7식품원료의 기준에 적합한 원료사용을 위반한 것이 되는 거죠.


by 액화철인 | 2009/02/22 17:00 | 입 안의 쾌락 | 트랙백(1) | 덧글(19)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3 - 실전편(1)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세 번째 이야기 
실전편(1) 가짜압생트 구별법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1 - 실체편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2 - 진상규명편


아직 안 읽으셨다면 먼저 위의 두 편 부터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싫으면 미워)





강호의 도는 땅에 떨어져 무림은 어지러워지고

법률에 의해 철저하게 품질관리가 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프랑스의 와인이나 스코틀란드의 위스키처럼 벨에포크의 압생트에도 엄격한 품질 등급이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등급부터 높은 등급까지 오르디네르(ordinaire), 데미핀(demi-fine), (fine), 쉬페리외르(supérieure), 스위스(Suisse)의 다섯 가지 등급으로 쉬페리외르 이상의 두 등급은 반드시 천연재료로 착색착향되어야만 했고 반드시 허브를 빻아 넣은 후 증류시키는 오리지널 레시피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금지와 함께 사라져버리게 되었죠.

금지품의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는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법이 지켜주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별 짓을 다하는 데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압생트의 판매금지 이후 사람들은 악마의 음료 전설을 쫓아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들어 내고 압생트라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진짜 압생트가 복권되기 전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 때문에 지금은 이들이 현대 압생트의 선발주자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 되어버려 현재 시장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브랜드가 되어버린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 번 회 실전편에선 먼저 가짜 압생트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압생트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이 현재 한국에도 들어오고 있는 이런 가짜에 속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보헤미안 압생트 전설
(
부제: 가짜가 살아남는 법,
 또 다른 부제: e자가 없다면 의심하세요
 또 다른 부제: 체코에선 압생트를 사지마세요)

1915년 압생트가 금지되자, 페르노는 문제가 되는 쓴쑥을 뺀 레시피로 만들어진 술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그게 바로 아직도 팔리고 있는 페르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파스티스입니다. 맛은 압생트와 거의 비슷하고 아니스가 들어 있기 때문에 물을 부으면 루쉬처럼 허옇게 변합니다. 사실 파스티스는 가짜 압생트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불법이 된 압생트의 대체품이었죠. 파스티쉬(pastiche 모조)에서 따온 이름 자체도 진짜에 대한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가짜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정직한 모방품, 판금을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아닙니다. 이건 아예 스스로가 압생트라고 주장하는 거짓 압생트(비록 스펠링은 absinthe가 아니라 absinth지만)이야기입니다.

 

란도밀 힐이라는 체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체양조시설을 가지고 있는 주류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이을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체코가 공산화되어 버립니다. 다른 체코의 많은 사설 양조장과 마찬가지로 힐가문의 증류공장도 국유화 되어버리고 힐가문은 반동자본가로 낙인 찍혀 몰락의 길을 걸어야했죠.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술을 공부하던 란도밀은 이제는 양조장의 술을 운반하는 트럭운전사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송곳은 감춰져 있어도 주머니에 구멍을 내는 법. 양조전문가라는 사실이 일터에서 드러나면서 승승장구 드디어 작업반장의 위치까지 올라섭니다. 그리고 50년이 넘게 흘러 1989년 드디어 이름처럼 부드러운 벨벳혁명을 통해 공산당의 통치가 막을 내리고 체코의 민주화가 완성됩니다.

 

청춘을 공산체제에서 보내고 이제 65세가 돼서야 란도밀은 국유화 되었던 자신의 유산, 아버지의 양조장을 국가로부터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한을 풀 듯이 열심히 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체코의 양조장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술을 증류합니다. 오늘은 보드카 내일은 과일브랜디 이런 식으로 말이죠. 란도밀 힐의 증류소도 처음엔 럼, 보드카, 코코넛맛 리큐르(말리부 짝퉁), 커피맛 리큐르(칼루아 짝퉁), 페퍼민트 리큐르 다섯가지의 술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보헤미안의 영감이 찾아왔는지 란도밀 힐은 압생트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체코는 다른 동유럽과 마찬가지로 벨에포크 시절에도 압생트가 인기를 끌었던 지역이 아니어서 당연히 금지 어쩌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던 곳입니다. 따라서 압생트가 금지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힐의 압생트 생산은 합법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 금지된 술은 수많은 억측과 전설을 안고 있었습니다. 악마의 술, 마약, 광기의 음료, 를 미치게 한 술 등 압생트를 둘러싼 근거 없이 부풀려진 이야기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란도밀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리고 1998년 힐의 압생트는 체코와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어서) 한 번도 압생트가 금지된 적이 없던 영국에 소개됩니다. 역시 체코와 마찬가지로 술 자체 보다는 그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전설 덕분에 압생트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란도밀 힐은 압생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는 점입니다. 압생트의 빛깔과 쑥이 들어간다는 것 허브의 상콤한 맛이 난다는 것, 설탕을 타 먹는다는 것 정도만 안 상태에서 어디 한 번 만들어 볼까라는 기세로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힐의 압생트가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힐이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지만 결과물은 확실히 예전의 압생트와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식용색소를 사용한 청록색 빛깔과 강한 민트향은 란도밀이 증류소 초창기에 만들었던 페퍼민트를 떠올리게 하면 다행이고 사실은 가그린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게 가짜라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드는 법도 맛도 잊고있었으니까요. 어쨌든 쓴 쑥이 들어간 채로 최대한 기괴하고 음험한 맛이 나도록 만들어진 란도밀 판 압생트가 시장에 나왔고 이거 뭐 팔리겠어?”라고 생각했던 힐이 예상과는 달리 체코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발명자라 할 수 있는 란도밀 힐은 심지어 유럽판 타임지에까지 실리게 됩니다. 그러자 다른 양조장들도 압생트를 생산하기 시작했죠. 그들이 모델로 사용한 건 바로 힐의 될대로 되라압생트, 이름하여 보헤미안 압생트였습니다. 보헤미안 압생트는 실제 정통 압생트와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조지 로울리라는 영국인 사업가가 프라하에 들어와 있다가 체코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는 영국에 가져가면 막나가는 청춘들에게 인기 좀 있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돈 냄새를 맡은 거죠. 그리고 BHH라는 회사를 설립 힐의 압생트를 수입해서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압생트를 팔기 위해 로울리가 한 여러가지 마케팅 활동은 코카콜라가 산타클로스에게 빨간 옷을 입혔던 것만큼이나 약발이 쎈 것이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압생트의 유해성에 관한 이야기들, 마약으로서의 효과, 그리고 함유물질인 투존의 향정신성에 대한 이야기, 벨에포크의 예술가들의 기행들에 관한 이야기 한 마디로 제가 지난 번 포스팅들에서 다뤘던 그 모든 오해들을 현대에 다시 부활 시킨 것이 바로 조지 로울리였습니다. 로울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압생트에 악마의 술이라는 누명을 씌웁니다. 한마디로 압생트를 폐지시키기 위해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 했던 똑 같은 짓을 이 번에는 압생트를 많이 팔기 위해 반복한 셈입니다. 이 마케팅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잘못된 압생트관()을 마치 사실인 양 고착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미술사 교수님들의 강의나 대중매체에서 이야기하는 압생트의 모습은 바로 이 때의 마케팅의 영향이 큽니다. 잊혀졌던 사실보다 잊혀졌던 거짓이 먼저 깨어나 사실의 자리를 꿰 찬 셈이죠.


보헤미안 압생트를 촉발시킨 바로 그 브랜드.

빛깔도 구강청정제, 냄새도 구강청정제, 그럼 맛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주로 수입하니까)


 

보헤미안 압생트를 둘러 싼 거짓말들

란도밀 힐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힐의 압생트는 1920년대부터 내려오는 힐가문 전래의 비법으로 만들어졌다. 2차 대전 때 나치의 눈을 피해 몰래 만들어졌었는데 도수가 높아서 물 만 타면 한 병으로도 오래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던 것이 공산화가 되면서 금지되었고 결국 민주화 이후 옛날 힐 가문의 압생트를 기억하는 노인 하나가 마구 먹고 싶다고 졸라대서 란도밀은 기억을 더듬어 만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1990년대 이전에 체코에 압생트가 존재했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사진도, 숨겨놓은 병도, 라벨도, 기사도, 신문광고도 아무 것도 없이 단순히 힐의 홍보자료에만 존재하는 체코 압생트의 역사만이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이야기도 가만히 보면 많이 우스운 게 탄압의 역사라는 모티브를 어디서 주어와서 괜히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느낌도 들고, 스카치 위스키도 아닌데 말이죠.  2차 대전의 역사를 연구하는 체코의 역사가들도 나치가 특별히 체코의 압생트를 금지시켰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소설을 쓴 거라고 볼 수 있죠.

보헤미안 압생트의 인기에 기가 막혔던 건 압생트 역사가들과 숨어서 암암리에 압생트를 즐기던 애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헤미안 압생트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기 시작하자 다음과 같은 거짓말로 둘러댑니다.  

 

지금의 법규로는 예전과 같은 압생트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신만큼은 이어 받고 있다

 

힐이 같은 압생트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법이 금지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압생트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압생트()의 가장 특징 적인 요소는 이름이 유래된 앱생트(쓴쑥)이 아닙니다. 바로 아니스죠.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아니스입니다. 보헤미안 압생트에는 아니스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었습니다. 압생트니까 쑥만 넣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한데 말이죠 이 문제에 대한 힐의 답변이 걸작입니다.

 

원래 우리집안의 술은 싸나이가 마시는 압생트다. 싸나이가 마시는 술이 캔디처럼 달콤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뺐다.” (후일 힐은 레시피에 아니스를 스리슬쩍 조금 추가하는 초싸나이다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니스가 안 들어있어서 싸나이다운 맛이 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덕분에 압생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물을 부으면 희게 변하는 루쉬가 안 일어나는 겁니다. 이에 체코의 압생트 업자들은 보헤미안 압생티아나라는 걸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도 역시 예부터 체코슬로바키아 지방에서는…”이라는 식의 전설이 따라 붙습니다만 사실 예전에 정통 보헤미안 압생트라는 것이 없었던 것처럼 이 것도 거짓말일 공산이 크지요. 이 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각설탕을 압생트에 적신 후, 불을 붙입니다. (70%니까 붙죠)

2.       설탕이 불에 녹기 시작하면 압생트에 떨어뜨린 후 젓습니다.

3.       압생트 양만큼의 물을 부어 꺼트립니다.

4.       마십니다.

 

 

설탕 놓고 그냥 물만 붓는 정통 압생티아나 보다 재밌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일단 불장난은 모든 남자아이들의 로망이고 남자는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지 애가 되든지 하지 하니까 말이죠. 8~90년대에 유럽의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삼부카 역시 불 붙여 마시는 의식으로 유명해졌었죠. 아마도 이런 불장난의 요소는 삼부카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오리지널 보다 훨씬 흥미롭고 스펙타클한 이 의식은 금방 대중문화의 관심을 받게 되고  조니뎁 주연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연쇄살인극 프롬헬에서 사용됩니다. 나름 이것도 사극이라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압생트는 불을 붙여 먹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 술에 불을 붙여먹든, 라면국물을 부어 마시든 자유겠지만 제대로 된 압생트에 불을 붙이면 복잡한 향과 맛이 불타는 알코올과 함께 날아가 버려 맛이 심하게 망가지는 건 사실입니다.(그렇다고 삼부카 처럼 태운 향을 빨대로 흡입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보헤미안 압생트는 신경 쓸 필요 없겠죠. 망가질 맛도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프롬헬의 한 장면. 악마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소재겠지만

실제 압생트는 저런 식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다.

보헤미안 압생트 업계가 한 거짓말 중 가장 악질적인 건 바로 먹으면 뿅감이었습니다. 이거짓말은 굉장히 다양한 방향으로 파장을 만들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실제 마약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광고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에 단속 들어가니까) 각종 프로모션과 입소문생성을 통해 먹으면 우주를 느낄 수 있음(마약대체품)”, “여자들이 먹으면 당장 홀딱 벗음(돼지발정제대체품)”이라는 식의 제품 루머를 계속 만들어 냅니다. 맛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 술은 맛으로 먹는 술이 아니라 맛이 가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는 식으로 주장한 거죠. 이 거짓말이 여기서 끝났더라면 좋은데 이 거짓말을 입증하기 위해 뒤에서 벌어진 짓들은 상식 밖의 것들입니다. 압생트의 향정신성 효과는 투존에 의한 것이라는 잘못된 상식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더 많은 투존 함유, 고로 쉽게 감이란 식으로 제품생산 및 마케팅을 하기도 했고 일부 업체는 제품 내에 근육이완제를 쓰기도 한다는 루머까지 있습니다. 가그린과 순수 에탄올을 1:2로 섞은 맛을 내는 이 물건이 이제는 몸에 해롭기까지 한 지경에 이른 거죠.

 

보헤미안 압생트는 왜 가짜인가?

테네시 위스키는 가짜 위스키 입니까? 그렇지 않죠. 싱글몰트와는 만드는 재료나 방식이 틀리지만 테네시 위스키는 위스키의 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보헤미안 압생트도 또 다른 압생트의 방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라고 현재 보헤미안 압생트 생산 업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견 그럴 듯 해 보이는 이야긴데 문제는 이겁니다. 보헤미안 압생트가 고흐나 로트렉, 랭보와 베를렝 같은 전혀 자기 제품과 상관 없는 벨에포크적인 상징과 인물들을 계속 쓰려고 한다는 거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압생트의 요건인 아니스, 페넬, 쓴쑥이라는 재료의 기본요건을 지키지 않으면서 압생트의 역사적 명성에만 무임승차하겠다는 겁니다. 테네시 위스키는 언제나 테네시 위스키라는 이름으로 팔리지 싱글몰트인 척 하지는 않습니다.


가짜 일수록 역사에 집착한다.

라벨에 고흐가 나와있다고 속지 말라

게다가 밑에는 수상한 건더기까지 가라앉아있다.


차라리 이 제품, 미국산 absente는 스스로 압생트가 아니라고 정직하게 주장한다.

홈페이지에도 나왔다. “우리제품은 압생트가 아닙니다라고

(압생트를 정제했다라는 밑의 문구에 주목하라.

정제라기 보다는 중요 재료를 교체했다. 즉 파스티스하고 같은 거란 의미)

일단 패키지 고흐 얼굴이 들어간 것 치고 진짜 압생트는 없다


이런 점이 보헤미안 압생트가 과연 테네시 위스키처럼 독자적으로 생존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이 됩니다. 언제나 자기 것이 아닌 전통과 날조된 전설에 의존하는 이상 보헤미안 압생트는 가짜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최근에는 보헤미안 압생트에도 독자적으로 생존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예전엔 1920년부터 내려오던 전통 어쩌구 하더니 이제는 그래도 시장에서 5년 이상 버텼는데 최소한 ‘5년 전통은 되는 것 아니겠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주로 특이한 칵테일 재료로서 자리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긴 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보헤미안 압생트가 우리가 예전에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다가 금지된 그 압생트, 우리가 로트렉의 압생트, 랭보의 압생트라고 부르던 그 압생트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가짜압생트 구별법

 


1.       일단 이름이 absinth면 무조건 가짜. 사실 absinth는 스펠링 오류는 아닙니다. 체코는 원래 그렇게 표기하니까요. 그런데 체코에서 생산되던 것들 중의 대부분이 보헤미안이기 때문에 absinth는 가짜 압생트, 혹은 보헤미안 압생트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2.       첫번째와 연결됩니다. 일단 체코에서 생산된 건 무조건 의심하세요. 체코 브랜드 중 정통 압생트는 제가 알고 있는 건 올리바라는 브랜드와 생안트완이라는 브랜드 두 종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가짜.

 

3.       색이 청록색이면 무조건 가짜. 사실 이 부분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헤미안 압생트는 란도밀 힐이 만들어 놓은 컬러를 모방했기 때문에 전부 청록색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벨에포크시대에 생산되던 전통 압생트 중에서도 청록색인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천연재료로 착색한 것이 아니니까 등급이 낮은 제품이었겠죠. 어쨌든 둘 다 인공착색이고 좋지 않습니다.

 

4.       보헤미안의 특징은 루쉬가 안 일어나거나 약합니다. 아니스가 안 들어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조금씩 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살짝 일어나기도 합니다.

 

5.       투존이 많이 들어있다고 주장하는 압생트는 가짜입니다. 투존과 환각작용이 크게 상관 없다는 것과 압생트는 환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장사꾼이 만들어 낸 술입니다.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죠. 투존이 많이 들어간 건 아마도 증류가 아니라 쓴쑥 엑기스를 그냥 알코올에 섞었기 때문일 겁니다. 투존 많이 먹으면 발작을 일으키며 죽습니다. 환각은 못보고 말이죠.

 

 

6.       안에 이물질이 들어있다면 그건 가짜이거나 성의 없이 만든 제품입니다. 위에도 사진으로 소개된 킹 오브 스피리츠 골드같은 경우는 천연재료를 쓴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밑에 일부러 넣어 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짜의 경우는 과시가 많습니다.

 

7.       과시라고 하니까 한 가지 더! 녹색 압생트인데 병이 투명하면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천연재료로 착색된 압생트는 빛을 받으면 엽록소가 파괴되어 갈색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와인처럼 색이 짙은 병에 넣어 판매됩니다. 그러나 보헤미안은 스스로가 퍼렇다는 걸 과시해야 하니까 투명한 병에 담겨 판매됩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세인트 조지나 베르테 푸제로예 등 몇몇 브랜드는 정통 녹색 압생트이지만 투명한 병에 담겨 있습니다. 이건 천연 압생트는 변색조차 매력이라는 독특한 제품철학의 반영입니다.

 

8.       알코올 합유가 80를 넘어가면 대부분 가짜입니다. 정통 압생트는 블랑쉬로 74%에서 증류됩니다. 착색작업에 의해 이거보다 밑으로 내려 갈 수는 있어도 올라가려면 수상한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다만 75%인 로켓1797(오르디네르 선생의 명마의 이름을 딴)은 현대 프랑스 압생트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에밀 페르노가 소량생산으로 18세기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그러니까 한마디로 압생트가 메이저 데뷔하기 이전 방식을 재현한 명품입니다.

 

보헤미안 압생트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져서 실전편을 2회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다음에는 좋은 압생트를 고르는 법 이라는 상큼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by 액화철인 | 2009/02/11 23:38 | 입 안의 쾌락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0)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2 - 진상규명편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그 두번째 이야기
진상규명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1 - 실체편

아니 보신 분은 먼저 보시면 이해하기가 더더욱 좋습니다.


알베르 메냥 作, 녹색 뮤즈




어허허허 오해입니다. 아니 이번엔 진짜 오해입니다.

압생트와 투존의 유해성 논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너무 급하게 누명을 쓰고 판매금지되는 바람에 제대로 연구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 억측과 가설로 점철된 반대론자들의 연구가 정당한 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마치 사실인양 받아들여졌었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야 압생트에 대한 과학적연구가 조금씩 시작되기 시작하죠. 아직 적어도 투존의 특성에 대해서는 연구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압생트의 유해성에 대한 비밀은 대부분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주장했던 것 처럼 압생트는 해로운 술일까요?

 

오늘 포스팅은 좀 하드합니다. 여러가지 이상한 용어들도 많이 나오고 그렇습니다만 그냥 힘든 말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시면 됩니다.


악마의 물질, 투존?

압생트는 마약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압생트의 주원료인 쓴 쑥에 들어있는 투존(Thujone)이라는 성분은 신경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이성분 덕분에 압생트를 용한 사람은 환각을 보게 되고 장기 복용하면 시신경을 파괴할 수도 있다

 

결국 압생트 안에 들어 있는 투존이라는 물질이 원흉이라는 이야깁니다. 투존은 일종의 유기화합물로 쓴쑥 같은 일부 쑥종류나 특정한 나무 껍질 등에서 추출됩니다. 우리나라자생식물 중에는 약초로 쓰이는 황해쑥에 함유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의 민간요법에 잘 쓰였던 투자(Thuja)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예전에 유럽에선 애들이 잘 때 가슴이나 목에 투자나무의 진액을 발라주면 감기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믿었습니다. 멘솔향의 이 물질은 실제로 몸의 저항력과 면역력을 자극하여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압생트가 예방약으로 군에 보급되었던 것 역시 투존의 면역강화라는 특성 때문이었죠. (단순히 술이라서가 아니고) 그러나 어떤 약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 투존을 과다 투여하면 간질 같은 발작이 일어나고 그러다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투존의 반수치사량은 45mg/Kg(생쥐, 주사)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100마리 생쥐에게 체중 1Kg 45mg을 투여하면 그 중 절반인 50마리가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발작에 대한 반수유효량은 30mg정도입니다. 1Kg 30mg정도를 투여하게 되면 (생쥐 한마리기 20g정도 되니까 실제로는 한 마리에 0.6mg정도를 투여하면) 애가 막 경련과 발작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의 경우 일반적으로 50mg/KG이 반수치사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 수치는 큰 쥐(rat)를 대상으로 얻어진 수치입니다. 아까 투존의 치사량을 얻었던 동물인 생쥐(mouse)의 경우 니코틴의 반수치사량은 3mg/KG에 불과하죠 그러니까 투존의 독성은 생쥐기준으로는 니코틴의 15분의 1에 불과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생쥐의 반수치사량은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만 (인간가지고 반수치사량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편의상 생쥐와 인간의 신진대사가 같다는 가정하에 따져보자면 70Kg의 인간은 2.1g의 투존에 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반반이고 3.2g의 투존을 투여받으면 사망할 확률이 반반이라는 식입니다.

그럼 압생트에는 투존이 얼마나 들어있을까요? 반대론자들은 20세기 초에 무려 1리터에 250mg이나 들어있다는 주장을 했었습니다. 놀랍게도 압생트 애호가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 주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압생트가 환각을 부르는 마약이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희망사항의 발로인 거죠. “옛날 압생트는 향정신성물질인 투존이 많이 들어있었고 그래서 먹으면 천국과 녹색요정을 본다라는 믿음 덕분에 금지되기전 만들어졌던 빈티지 압생트는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옛날 압생트에서도 리터 당 6mg 정도에 불과한 미량의 투존이 검출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장기간 보관으로 인해 투존이 날라가지 않았을까해서 (이건 잘못된 믿음입니다. 투존은 휘발성이 아니거든요) 예전의 여러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보았는데 리터당 5mg이 넘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그게 당연한 것이 압생트는 증류해서 만드는 술인데 증류과정에서 투존이 얼마나 남게 되는가는 결정이 나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착색과정에서 쓴쑥 농축액을 압생트에 들이 붇지 않는 이상 절대로 과도한 투존이 들어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죠. EU와 미국에서는 식품에 들어가는 투존의 양을 10mg/l로 제한하고 있고 쓴술이라고 표시되는 술의 경우는 35ml/l까지 허용하는데 정통적인 압생트라면 결코 넘을 수 없는 양입니다. 

아까의 생쥐신진대사=인간신진대사라는 식의 가정에서 생각해보자면 투존함유량이 5mg/l인 압생트를 70Kg의 남자가 경련의 반수유효량까지 마시려면 앉은 자리에서 420리터를 마셔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참고로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소주 구매량은 33리터(93)쯤 된다는…) 즉 투존이 간에서 쌓이지 않고 쉽게 대사되는 물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마디로 아무리 압생트를 퍼마셔도 투존 때문에 발작이나 사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전에 술병으로 죽지 않겠습니까?

 

압생트의 환각효과

압생트의 경우 독성이나 치사량보다 이슈가 되었던 건 환각효과입니다. 얼마나 먹으면 환각효과가 일어나는 걸까요? 아니 환각효과는 일어나기는 하는 걸까요?

 

압생트의 문제성분인 쓴쑥과 쓴쑥의 주성분인 투존의 환각효과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심각하지않을까라는 짐작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세계의 온갖 허브의 효능 효과 부작용에 대해 총망라해놓은 홀리스틱 온라인 닷컴 (www.holistic-online.com)의 쓴 쑥에 대한 설명을 보면 쓴 쑥의 중독성과 과도하게 사용되었을 때 자주 생기는 부작용 어지럼증, 발작, 혼수상태, 정신착란, 환각, 심지어는 사망 등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지되어 있다.”라는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쓰면 어지럼증, 발작, 혼수상태, 사망까지는 맞는데, 일단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지되어 있다는 말과 환각, 정신착란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쓴 쑥은 마티니의 주 재료라 할 수 있는 버무스에도 들어가고
(vermouth
란 말 자체가 독어로 쓴 쑥을 가리키는 wermut에서 파생)
코막힘 뚫어주는 유명한 빅스 베이포럽이라는 약에도 들어가는 광범위하게 쓰인다.
그런데 모든 국가에서 금지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임?


압생트 반대론자들 에게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던 마냥박사는 과학적으로압생트에 환각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는 고작 압생트 남용으로 입원한 환자들을 관찰해보니 였는데…” 라니 말 다한거죠. 그 환자들만큼 퍼마셨다면 압생트가 아니라 소주를 마셔도 아마 조상님이 검은 옷을 입고 구석에서 손짓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압생트의 환각효과에 관한 이야기는 반대론자들의 주장보다는 애호가들의 스스로의 입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압생트를 마시면 주변의 색이 더 밝게 느껴지거나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걸 압생트의 부가효과(secondary effect)”라고 하는데 그건 커피나 허브차를 마시거나 야근음료 를 먹을 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부가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주효과가 (술이라 당연히) 취하는 것 이기 때문이겠죠. 압생트를 마신다고 갑자기 바닥에서 튤립이 피어 오르고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모세로 변해서 뿔 같은 빛을 뿜자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비 두 마리가 춤을 추고 그런 건 없습니다. 압생트가 글쟁이들로부터 사랑 받았던 이유 중에는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기 때문에 제법 글쓰기 좋은 상태가 된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헤밍웨이나 오스카 와일드나 랭보나 베를렌 같은 작가들이 그런 상태를 가리켜 영감을 주는 녹색 뮤즈라고 말한 거죠. 그런데 그런 식으로 녹색요정이니 녹색뮤즈니 하면서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반대론자들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통에 압생트는 환각과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마약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겁니다.

 

보헤미안의 낭만을 그린 영화 ‘물랑루즈’의 한장면

카일리미노그께서 수고해주고 계십니다.

주인공들은 압생트를 마시고 일렬종대로 춤추는 녹색요정들을 만납니다.





투존의 환각효과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가설제기도 정말 허접하기가 몽마르트언덕에 그지없었습니다. 1975년도에 제기된 투존과 THC(대마초의 정신활성성분)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둘의 분자구조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1999년의 실험에서 마리화나에 반응하는 인체 내의 수용기가 투존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관찰되면서 이 이야기도 허구로 밝혀졌습니다. 투존이 인체의 신경에 미치는 정확한 영향이라면 GABA라는 우리 몸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과다 투여하면 쥐의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근육경력과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물론 아직도 투존이 인간의 정신과 감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미하나마 조금의 의문을 남겨 놓고 있기에 향정신 효과가 100% 없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다른 마약도 많은데 환각 보려고 투존에 매달리는 건 베이비 파우더를 코로 흡입하는 것 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투존에 향정신 효과가 없다고 100%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위에 이야기한 압생트의 부차효과 덕분입니다. 왜 그런 정신이 또렷해지는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에 아직 투존이 구금된 채 취조받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그런데 최근엔 투존이 아니라 압생트에 들어있는 다른 허브의 성분, 페넬의 펜촌이나, 아니스의 아네솔 같은 것들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페넬도 그렇고 아니스도 그렇고 잼이나 허브차로 잘 소비되고 있는 식물이라는 겁니다. 즉 압생트의 부차효과는 허브차의 부차효과와 다를 바 없는 것이란 이야기겠죠.



고흐의 해바라기는 압생트가 그린 그림?




병리학과 미술사의 결합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모네의 그림이 뿌연 건 백내장 때문이라든지 모딜리아니나 엘그레코가 난시 때문에 대상을 길쭉길쭉하게 그렸다든지 하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죠. 특히 반 고흐의 화풍을 지배하고 있던 불타는 듯한 노란색이 황시증이라는 눈의 병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황시증이란 수정체에 노란색 필터를 끼운 듯 노란색이 더욱 강렬하게 보이는 병입니다. 사실 고흐가 살아생전에 안과의사로부터 당신 황시증이요라고 진단받은 적은 없습니다만 엉망으로 살았던 그의 행적과 미칠 듯 노란색이 춤을 추는 그의 그림을 가지고 후대 사람들이 짐작할 뿐이죠. 그런데 여기에 애꿎은 압생트가 끼어듭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모든 것은 압생트 탓으로 돌리는 전통이 고흐의 황시증 분석에도 이어진 셈이죠.

초기의 황시증 연구에서는 산토닌이라는 물질이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산토닌은 예전에는 구충제로 쓰던 물질입니다. 채변검사에서 불합격한 아이들이 교탁으로 불려가서 물과 함께 삼키던 약이 바로 산토닌. 근데 이 산토닌이라는 게 사용하기가 까다로왔던 것이 복용양이 정량을 조금만 넘어도 구토, 메스꺼움과 함께 세상이 온통 노랗게 혹은 초록색으로 보이는 황시증 혹은 녹시증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죠. 예전의 어른들에게도 동네에서 약장수가 파는 산토닌을 먹었더니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사실 산토닌은 진짜 작정하고 많이 먹으면 경력이나 발작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실명까지 할 수 있는 위험물질입니다. 그래서 더 안전한 구충제가 개발된 현재는 거의 아무도 쓰지 않고 있죠.

압생트가 황시증을 유발한다는 건 압생트에 다량의 산토닌이 함유되어 있다투존이 황시증을 유발한다는 두 가지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산토닌을 추출할 수 있는 여러 식물 등 중에서 쑥 종류(마리티마 쑥, 시나 쑥)가 있는데 으로 만드는 압생트니까 이런 종류의 쑥도 들어가 있었을 것이고 특히 고흐가 마셨던 압생트에는 이런 종류의 쑥이 들어있었고 거기 함유된 산토닌이 상습음주자였던 고흐의 눈을 노랗게 물들였을 거다라는 식의 이야깁니다. 물론 마리티마 쑥은 압생트의 정식 재료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와 있듯이 그리고 산토닌에 의한 황시를 경험해 보신 어르신들이 다 알고 계시듯 산토닌으로 인한 황시증은 몇 일정도 지나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증상에 불과합니다.

고흐가 앓고 있었다는 만성적인 황시증과는 차이가 있죠. 고흐가 압생트에 들어 있는 산토닌 때문에 일시적 황시증을 경험했었을 거란 짐작 역시 당시의 압생트의 제조과정을 너무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압생트의 산토닌 때문에 고흐가 황시증을 앓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1990년대에 거짓이라고 주장되었습니다. 게다가 만만한게 투존이라는 투존황시증유발설 역시 투존이 황시증을 유발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고 게다가 압생트의 투존 양도 앞서 설명했듯이 시신경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나 미미했다는 거죠.

현재 고흐의 황시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토닌 보다는 디곡신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디곡신은 폭스글로브라는 허브에서 추출되는 물질로 주로 강심제나 발작 억제제로 쓰이는 물질로 멀쩡한 사람이 과다 복용하시면 심장이 빨리 뛰다가 돌아가십니다. (007카지노로얄에서 르 쉬프르가 카드게임하다가 본드에게 술에 타 먹인 그 약이 바로 디곡신입니다.) 반 고흐는 간질 때문에 이 약을 처방 받았고 결국 고흐의 망가진 생활과 건강상태에 이 약까지 더해지자 만성황시증이 찾아왔다는 식의 주장입니다.

물론 산토닌 때문인지 디곡신 때문인지 아니면 아예 고흐가 황시증이란 것 자체를 앓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란색을 과장되게 보이는 병을 가진 사람이 그림을 노란색으로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피사체뿐 아니라 안료 자체들도 노란색으로 과장 되어 보일테니까요. 한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고흐가 산토닌을 실수로 좀 많이 먹고 일시적으로 세상을 노랗게 보다가 제 시력을 찾은 후에 그 때 보았던 느낌을 되살려 그림을 그렸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말은 농담입니다)

 

고흐와 압생트 그리고 황시증에 대한 루머 중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건 압생트에 테레핀유가 들어있었고 압생트를 즐겨마시던 고흐는 그 덕분에 황시증을 불러왔다는 식의 이야기인데요. 이건 사실 다음의 두 가지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서 와전된 거라고 생각됩니다.

1.       고흐는 이상한 맛이 나는 화학물질을 충동적으로 먹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건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폴 시냑의 기록에도 나와 있는데 몸에 해로운 물감을 짜먹거나 테레핀유를 들이키거나 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맛으로, ?)

2.       압생트에 들어 있는 투존은 일종의 테르핀입니다. 테르핀이라는 탄화수소 화합물의 기본단위라 할 수 있는 이소프렌(C5H8, CH=C CH CH=CH)을 기본단위로 하는 다양한 천연유기화합물을 싸잡아 일컫는 말입니다. 참고로 투존(C10H16O)은 이소프렌이 두 개 들어있는 모노테르핀입니다. (둘인데 모노인건 둘이 기본이라 그렇습니다)

 

테레핀유(Turpentine)의 구성성분이 테르핀(terpene)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투존이 테르핀이라는 것과 테레핀에 테르핀이 들어있다는 건 다른 이야기인겁니다. 투존이 테르핀이라는 이야기는 그냥 유기화합물이라는 이야기지 무슨 투존이 테레핀유의 성분이라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근데 쓴 쑥에 들어있는 테르핀인 투존이 압생트에 들어있다라는 말을 보고 누군가 압생트에는 테레핀유가 들어있다라고 이해버린 겁니다. (멜라민과 멜라닌은 서로 틀린 거거든요)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건 고흐의 노란색 그림은 압생트 때문일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산토닌이든 투존이든 당시 압생트에 함유된 양으로는 정말 황시증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술병으로 사망했을 테니까요.

 

 

압생트의 유해성, 그 결론

내겐 꿈이 있습니다라고 마틴 루터 킹이 외쳤습니다.

저도 상상합니다, 이런 음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잔 마시면 뿅 가면서 온갖 환각을 보게 해주는 신비한 음료.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게 해주고 세상이 온통 밝은 색깔로 빛나 보이게 해주는 마법의 음료. 켈록거리면서 마리화나를 피울 필요 없고, 힘들게 LSD나 엑스타시 구하려고 서울역전이나 홍대거리를 헤멜 필요 없고 그냥 몇 잔이면 완전히 쾌락의 도가니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음료. 절대환각항정신성음료! 그런데 꿈은 꿈이고 사실 그런 거 없음입니다.

 

아니 사실 그런 거 비슷한 거 있기는 합니다. 그 건 바로 술이죠. 사람들은 시름을 잊으려고 심지어는 필름이 끊기려고 마시기도 합니다. 에탄올은 흥분제니까 기분도 좋아지고 세상이 다 친구 같아지죠. 압생트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압생티즘이라고 부르던 압생트의 부작용, 분별력약화, 충동장애, 분노, 흥분, 불면증, 발작, 환각 그 모든 증상들은 사실 습관성 과음의 증상과 똑같습니다. 마냥박사가 압생티즘이라는 말을 만들었던 그 당시에도 영국의 의학저널인 란셋에는 압생티즘이라고 해봤자 전부 그냥 술퍼먹으면 나타나는 증상하고 같은 거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위에 글에서 계속 반복하던 말, “그 증상 나오기 전에 술병으로 먼저죽겠다처럼 압생트 내에서 가장 해로운 성분은 다름아닌 에탄올, 즉 에틸알코올입니다. 그냥 술이라서 해롭다는 이야기죠. 예전의 값싼 압생트를 만들 때 무시되었던 위생법규라든지 몰상식을 살펴보면 에탄올보다 훨씬 해로운 것들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납파이프가 수도관으로 쓰였던 시절 아니겠습니까?) 제조상의 부주의나 불량을 제외한다면 압생트는 술이라서 해로울 뿐입니다.

 

압생트는 70%를 넘나드는 독주입니다. 근데 사실 독한 술이라서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는 당시 유럽사람들의 압생트 음주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반 고흐 作, 압생트,

압생트를 묘사한 그림에는 언제나 이렇게 커다란 물병이 함께 보인다.




물론 툴루즈 로트렉처럼(귀족자식) 돈이 원래 많아서 70%짜리 압생트 원액을 속이 빈 지팡이에 채워 놓고 홀짝거리며 마신 사람도 있지만 (결국 알코올중독으로 사망) 보통은 전에 설명 드렸던 압생티아나라는 의식을 거쳐서 마셨죠. 압생트 원액에 찬물을 부어서 희뿌옇게 변하는 루쉬를 즐기면서 마시는 압생티아나. 여기 들어가는 물의 양은 보통 원액의 세배에서 다섯배 정도입니다. 따라서 세배일 경우는 70/400=17.5% (소주보다 약한 도수) 다섯배일 경우는 70/600=11.6% (와인보다 약한 도수)에서 음용되었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1회 정량이 원액 30ml정도 (1온스)였으니까 압생트 한잔의 양은 물 세 배 희석의 경우에 120ml (소주 1/3) 다섯 배면 180ml (와인 1/4) 정도였겠죠? 세 잔 마시면 소주 한 병 혼자 비운 셈이 되는 거죠.

결론적으로 압생트는 다른 술에 비해 특별히 더 위험한 물건은 아닙니다. 흐느적거리는 보헤미안의 낭만이나 불타는 고흐의 노란색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결론이지만요 

자신의 이름을 딴 압생트 브랜드를 출시할 정도로 압생트 애호가로 알려진 맨슨 역시 처음에는 압생트의 잘못된 악명이 주는 위험한 이미지에 끌렸었을 겁니다. 맨슨이 자기 이름을 걸고 와인(샤또 드 망송?)을 출시하는 것 보다 악마의 드링크 압생트를 출시하는 게 더 그럴 듯 하지 않습니까?

맨슨횽도 즐겨마시는 악마의 지옥국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평범한 약초술




압생트의 유해성에 관한 근거없음이 알려지면서 압생트에 걸린 금주는 서서히 풀려나가고 있습니다. (2007년 미국에서의 판금이 마침내 해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가지 오해가 걸려 있지요. "압생트는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고 도수를 낮춘 후 겨우 판매를 허가받았다. 따라서 지금 압생트는 당시 사람들이 마시던 그 압생트와는 다른 물건이다이 낭설 역시 압생트가 악마의 음료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낭만주의적인 상상의 발로입니다. 이 이야기 역시 몇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져 섞인 왜곡입니다.

 

  1. 압생트의 금지 직 후, 페르노는 압생트의 레시피에서 문제의 성분인 쓴 쑥을 제거하고 도수를 낮춘 파스티스라는 술을 내놓습니다. 이건 1915년 금지 직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최근에 발매한 것이 아니고요. (앞의 오해는 이 이야기가 시공을 초월해 최근의 판매금지 해제와 연결이 된 듯해요) 참고로 파스티스는 요즘도 팔리고 있습니다. 아니스 향이 강하고 당연히 아니스가 들어있기 때문에 물을 부으면 우조효과도 일어납니다.
  2. 문제 물질로 지목받은 투존에 대해 유럽은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35mg/l의 규제를 걸고 있고 미국의 경우 원칙적으로 투존의 식품첨가는 금지이나 10ppm(10mg/l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이하의 경우는 투존이 안 들어 있는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생산 및 판매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애당초 압생트에 들어 있는 투존은 리터당 5~6mg정도 입니다. 저 규정에 맞추기 위해 바꾸고 말고 할 것 없습니다.
  3. 압생트의 알코올함유는 68%정도가 정통적인 것이지만 일부 지방의 압생트의 경우는 제조법의 특성으로 도수가 낮아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압생트의 알코올양은 70~40%라고 이야기 합니다. 현재도 다양한 알코올함유량의 압생트가 팔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옛날의 압생트나 지금의 압생트나 다름 없다는 의미이고 유해성을 거론할 때마다 나오는 투존 역시 커다란 이슈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압생트 판매금지 완화 로비를 벌였던 사람들은 투존에 대해선 FDA에서도 뭐 원래 조금 들어있잖아요라는 식으로 신경 안 쓰는 분위기였고 오히려 압생트라는 이름이 주는 역사적인 악명이 훨씬 더 큰 이슈였다고 합니다.




압생트와 함께하는 평범한 벨에포크의 오후,

이게 어디 봐서 집단 마약복용의 현장입니까, ?






이어지는 실전 편에서는 좋은 압생트를 고르는 법과 가짜에 속지 않는 법 한국을 포함한 각 국가의 관련 법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by 액화철인 | 2009/02/08 18:52 | 입 안의 쾌락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1)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1 - 실체편

압생트 :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그 첫 번째 이야기
압생트의 실체


빅터 올리바 作 “압생트 마시는 사내”



두 화가가 노란 집에서 독주를 마시고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일방적으로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쪽은 깡마른 쪽이다
.
살집이 있는 쪽은 매사가 귀찮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모욕스러운 말을 한마디씩 던진다
.
반면 소리 지르는 쪽의 이야기는 횡설수설이다
.
상대방의 작풍에 대한 불만 같다가도 어느새 신의나 우정 같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
,
그리고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과거의 사소한 기억들
,
깡마른 화가의 화제는 전기에 쏘인 벼룩처럼 정신없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화내던 쪽이 다른 쪽이 툭 던진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욕실로 달려가더니 접이식 면도칼을 가지고 돌아온다

술에 취해 비척거리며 그 칼로
죽여버리겠다고 상대를 위협해보지만
상대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
그 친구의 입가에 슬몃 보이는 비웃음을 칼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화가는

발작적으로 자신의 왼쪽 귓볼을 잡아당겨 잘라버린다


아릿한 통증과 볼을 타고 턱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정신이 들어 보니

어느새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도망갔을 테지,
자신의 귓볼을 자른 화가는 신문지를 꺼내 잘린 살조작을 되는 대로 포장하더니
 
조악한 흑백 양배추처럼 변한 그 신문지 뭉치를 들고 낄낄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1888고흐자해사건입니다. “스스로의 귀를 자른 천재화가의 광기라는 시대적절한 낭만을 풍기는 이 “19세기 보헤미안 엽기사건은 언제나 압생트 괴담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언급되곤 합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는 이 술에 중독된 고흐는 환각 속에서 자신의 귀를 자르는 기행을 보였다는 이야기죠. 압생트와 고흐의 관계는 단순히 광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흐의 환상적인 노란색도 사실은 압생트 남용에 의한 황시증(눈에 노란색 셀로판을 씌운 듯 세상 모든게 노랗게 보이는 병)이라는 질환 때문이라는 설에 이르면 고흐를 키운 건 8할이 압생트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진짜 압생트는 마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세상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무시무시한 환각물질일까요?


마주의 탄생

압생트는 18세기 말 스위스 서쪽 노이샤텔지방의 꾸베지역에 거주하던 피에르 오르디네르(Pierre Ordinaire)라는 프랑스인 의사가 만병통치약으로 개발한 약술이라는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르디네르는 깡마른 몸에 농구선수급의 장신으로 애마인 로켓을 타고 산악지역인 발드트라베르(val de travers)지방을 누비는 모습이 사뭇 동키호테 같았던 기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한국 같았으면 세상에 이런일이에 소개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죠. 프랑스혁명의 어지러움을 피해 스위스로 도망간 이 의사선생은 시골인 쿠베라는 곳에서 동네 약방 비슷한 걸 경영하고 있던 묘령의 미녀 자매가 사는 집에 거처를 잡고(왠지 일본만화 같은 전개) 시골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며 살아가다 19세기의 시작을 못보고 돌아가셨다고 하는데요 이 괴짜 의사의 이야기는 낭만과 오해로 가득한 압생트 전설의 처음을 장식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서양의학이 미생물학의 발달로 뭔가 과학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겨우 몇 세기 동안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 전까지는 의사의 주수입원이 자신이 개발하거나 전가의 비법으로 만든 수상한 만병통치약의 판매였다는 점은 동양의 민간의학과 별로 다르지 않았었죠.

당시의 만병통치약은 간단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생약성분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되는 약초나 꽃잎 같은 식물 생약성분과 여기에 화끈한 약효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섞습니다. 약간은 비과학적으로 들리게 이야기 했지만 많은 생약성분이 알코올에 용해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험에서 얻어진 지혜라고도 생각됩니다.

오르디네르 역시 알프스 지방의 산바람과 햇살을 맞고 자란 싱싱한 약초를 따서 알코올에 섞어 증류해보는 실험 끝에 1792년에 드디어 오르디네르식 만병통치약을 완성시키게 됩니다. 영롱한 에메랄드 빛깔 때문에 녹색 요정(La Fée Verte)”이라 불리기 시작한 이 약물은 원샷하면 갑자기 열기가 돌고, 주위의 여자들이 예뻐 보이며, 기운이 나고 용기가 솟는 약효가 있었고(당연하지 술이니까) 제법 맛도 상쾌하고 먹고 푹 잤더니 감기가 떨어졌어요라는 식의 입소문이 돌면서 그 지방에선 꽤나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8세기 말 당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저런 식의 만병통치약에 대한 믿음은 도시 지역에서는 없어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노이샤텔 같은 깡촌에선 먹히는 장사법이었던 듯.

하지만 (편리하게도) 그 약을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르디네르는 노환으로 쓰러지고 그의 임종을 지키고 있던 약방 자매에게 압생트의 비법을 남기고 죽어버리고 그의 유지를 이어 받아 자매는 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만병통치약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탄생설화의 요지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개발자는 이 약방자매 쪽이고 단지 마케팅을 위해서 오르디네르라는 유명한 (게다가 마침 자기네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의사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볼 수도 있겠죠. 사실 오르디네르 선생이 꾸베 지방으로 쫓겨오기 전부터 이 지역에서는 비슷한 레시피의 만병통치약이 무려 신문광고까지 해가면서 팔리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프랑스에서 온 그 괴짜 같지만 유능한 닥터하우스가 개발한 약이라는 딱지가 붙은 이 녹색요정은 몇 년 새에 커다란 인기를 얻었고 결국엔 프랑스 자본가에 의해 픽업되어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됩니다. 

 

약입니까 술입니까?

문제의 약방자매로부터 제조비법을 독점 구매해 스위스에 공장을 차린 건 군인 출신의 사업가 다니엘 앙리 두비와 그의 사위인 앙리 루이 페르노였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페르노리카의 그 페르노 말입니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칼루아, 말리부, 압솔루트 같은 잘 알려진 주류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주류업계의 공룡 페르노리카의 시작은 바로 압생트였다는 거죠.

프릿츠 듀발의 쓴쑥(압생트) 추출액 이라는 초기의 라벨을 보명

확실히 약으로 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비와 페르노 역시 처음에는 명의 오르디네르 전설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프랑스인 의사가 스위스의 상쾌한 자연에서 만들어낸 상쾌한 약 혹은 술이라는 느낌으로 제품 이미지를 잡고 제품명 역시 녹색요정이라는 비과학적이고 동화적인 별명 대신, 압생트 추출액같은 약품 같은 이름으로 부릅니다. “약술내지는 몸에 좋은 술이라는 말은 확실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업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전략이죠. “와인은 심장병을 예방해요라는 식이나 생약성분이 들어있어 강장효과가 있어요라든가 오줌발이 요강을 뒤집어서 복분자라네라든가결국 몸에 해로운 것을 팔고 있기에 약효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조금은 아이러니컬한 제 발 저림인 셈입니다. 어쨌든 이런 식의 마케팅 전략이 먹혔는지 아니면 판매자의 군경력과 인맥이 먹혔는지 압생트가 처음으로 대량 소비되기 시작한 곳은 바로 군부대였고 그 목적도 기호품이 아니라 약품이었습니다.

 

1830, 프랑스가 알제리를 침공하여 제2기 식민제국을 열기 시작하던 그 시절, 아프리카에 파견된 프랑스 주둔군을 괴롭힌 것 중 하나는 말라리아나 이질 같은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습니다. 내성이 없는 자국 군인들이 픽픽 쓰러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프랑스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예방학이나 미생물학이 발달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겠죠. 그저 그냥 비슷한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여러 가지 약을 전선에 쫘악 돌려보고 현지에서의 임상효과를 보고 좋은 듯하면 계속 써보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전선에 투입된 약품들 중 하나가 바로 압생트였습니다. 아마도 압생트에 대한 보고는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압생트, 효과가 최고임. 말라리아 및 이질에도 좋거니와 용기도 샘솟음. 더 많이 보내주기 바람. 근일 내 낙타고기 안주로 함께 전군 회식 예정

결국 정식으로 풍토병 예방약으로 인정받게 된 압생트는 프랑스군의 1844년부터 3년 동안 정식보급품으로 지급됩니다. 예방약이기 때문에 상시 의무적으로 음용해야하는 행복한(?)물품이었다고나 할까, 프랑스 군인들은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이걸 물 혹은 와인에 타먹었다고 합니다. “제라르 하사, 기분이 꿀꿀한 거 보니 왠지 말라리아에 걸릴 것 같은데 예방차원에서 한 잔 어때혹은 이질예방식을 실시한다! 각자 앞에 놓인 샷글라스에 일방장전! 목구멍으로 투하!”라는 식으로 프랑스 군인들은 압생트의 상콤쌉싸름한 맛에 점점 길들여 지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압생트 맛에 길들여진 군인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프랑스 국내의 녹색 쓰나미는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시절의 녹색 동반자

19세기 후반기의 프랑스, 특히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르누보가 덩굴처럼 거리를 감았고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세계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에 기분 좋게 취해있던 부르주아들을 캉캉댄서들이 속바지를 내보이며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모네가 있었고 마네가 있었고 르느와르가 있었고 드가가 있었고 고흐가 있었고 고갱이 있었고 로트렉이 있었죠. 그리고 물론 압생트가 있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이 전선에서 보급품으로 마시던 압생트를 즐겨 찾기 시작하자 파리 곳곳의 술집은 압생트를 구비해 놓기 시작했습니다. 군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제리 전쟁에서 군인들이 즐기던 술이라는 이국적인 낭만 때문에 찾았죠. 1850년 대 초 만하더라도 압생트는 나름 가격이 센 편(위스키보다 싸고 맥주보다 비싼)이었기 때문에 주로 유행에 민감한 부르주아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특히 상콤쌉싸름한 맛 덕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한 식전주로 음용되었는데 군에서도 인정한 건강주라는 술의 배경 때문이었는지 1870년대에 이르러 압생트는 1500여 종의 리큐르/리커들이 격전을 벌이는 프랑스 식전주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저녁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5~6, 사람들이 일제히 압생트를 마시는 바로 그 때를 가리켜 녹색시간이라고 부를 정도로 압생트는 대량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인기가 있다보니 오리지널 양조회사인 페르노는 점점 공장을 늘려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갔고 증류소를 가진 프랑스 주류업자들은 너도 나도 다투어 압생트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페르노에서 레시피가 유출되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알코올에 허브를 넣고 증류하는, 비교적 손쉽게 만들어 팔 수 있는 술이기에 금방 흉내 낼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강한 맛이기에 더욱 값싼 재료로 대체해도 딱히 티가 안 나는 압생트의 특성상 많은 후발업자들은 조악하게 만들어진 압생트를 염가에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저가제품은 같은 판매조건에서 페르노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대비 대략 3분의 1가격에 팔리곤 했는데 하지만 고급클럽에서 마시는 페르노 압생트 한 잔(30ml원액+) 60상띰인데, 저가 제품의 경우는 도매가가 1리터에 60상띰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최고급과 최저급의 가격차이는 30배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 만큼 많은 계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프리미엄급으로, 없는 사람들은 싸구려로 압생트를 즐기는 식으로 한가지 종류의 술이 여러 계급에서 동시에 사랑 받는 그야말로 국민주류 와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데뷔 1세기도 지나지 않는 신참에게 벌어진 겁니다.

값싼 압생트의 주 소비층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들뿐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의 문화를 주도했던 예술가계층, 흔히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던, 인상파화가들을 비롯해서 자연주의문학작가들, 그야말로 이 시절의 문화를 선도하던 사람들은 압생트의 취기 속에서 영감을 찾았습니다. 이 섬세한 술꾼들이 온갖 기예를 동원해 압생트를 그림과 글과 음악으로 찬미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압생트 숭배는 압생트에게 문화적 정당성과 낭만을 부여했습니다. 이 덕분에 보헤미안문화의 주소비계층인 부르주아 역시 계속해서 압생트에 얽힌 낭만을 소비하기 위해 압생트를 더더욱 소비하는 하나의 공고한 트렌드가 완성되게 됩니다. 그래서 19세기 말엽에 이르면 노동자는 가격 때문에, 부르주아는 낭만 때문에 녹색 요정을 찾게 된 셈이죠.

여기에 압생트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의 와인업계를 괴멸직전까지 몰고간 필록세라(포도뿌리혹벌레)병충해라는 대재앙입니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1870년대 중반까지 전국 포도밭의 40%를 잃었고 와인업계는 고질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숙성해서 판매하는 제품의 특성상 그 피해는 정말 장기적일 수 밖에 없었죠. 왠지 모르게 옛날보다 묽어진 와인에 심지어는 건포도를 알코올로 우려낸 물까지 와인이라고 팔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프랑스인들은 와인에 의존했던 음주문화를 바꾸기를 강요받게 됩니다. 진짜 와인이 필요한 식사시간을 제외한 평소의 친구들과 한잔은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했던 압생트로 하는 것이 대세가 됩니다. 와인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고 압생트는 참람하게도 그 자리를 넘보는 위치까지 올라오게 된거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숫자상으로 얼마나 소비되었는가 하는 수치를 넘어서 압생트가아름다운 시절의 문화와 낭만을 상징한다는 아이콘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한 영광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이 덕분에 압생트는 20세기 초에 처절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역사에서 추방되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압생트의 정체

압생트의 몰락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압생트는 어떤 도대체 어떤 술인지 알아봅시다.

기본적으로 압생트는 증류주입니다. 그러니까 발효된 술을 끓여서 알코올을 추출해 냉각시켜 모은 것이라는 이야기죠. 압생트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게 됩니다.

 

 

 

1.  증류한 알코올에 아니스, 페넬, 쓴쑥(wormwood) 이렇게 세가지 허브를 빻아 넣습니다.

2.  1의 혼합물을 또 증류합니다. 무색투명한 압생트가 탄생합니다.

3.  2의 증류물을 각종허브를 넣고 우려내어 초록색으로 착색하면 완성

 

1의 단계에서 베이스로 쓰이는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세 종류입니다. 포도주를 증류시켜 만든 오드비(eau de vie, 생명의 물), 일종의 순무인 비트를 발효시킨 술을 증류시켜 추출한 비트 알코올, 보리에서 감자껍질에 이르는 다양한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시킨 그레인 알코올이죠. 이 중 가장 가격이 높고 고급스러운 건 오드비입니다. 오드비와 그레인 알코올의 차이에 대해서 어떤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드비를 증류시킬 때는 원래 과실발효주의 풍미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하지만 그레인 알코올을 증류시킬 때는 원래 풍미를 최대한 지워버리려고 한다오드비는 이미 술로 소비될 수 있는 물건을 다시 증류시킨다는 점에서 다른 둘과 차이가 있습니다. (꼬냑은 꼬냑지방에서 포도 오드비를 증류시켜 2년 이상 숙성시킨 술이죠) 압생트를 처음 생산한 페르노사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이런 포도 오드비를 베이스로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최상품의 압생트는 오드비를 기본으로 만들어 진다고 보면됩니다. 오드비를 쓰는 회사의 경우에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재료인 포도의 산지를 공개하기도 합니다.

프랑스가 포도흉작을 겪을 때, 먹을 포도주도 없는 데 끓여서 오드비 만드는 건 미친 짓이라고 하던 시절 오드비의 대용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비트 알코올입니다. 당도가 높은 보라색 순무인 비트를 썰어서 몇 주간 발효시켜 만들어진 걸쭉한 비트주를 증류시켜 만들어지는 비트 알코올은 흉작이 끝난 후에도 전통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비트 알코올을 이용하는 업자들은 오드비와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이건 그냥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그레인 알코올은 셋 중에서 가장 저렴한 알코올입니다. 그레인 알코올을 물로 희석하고 당을 첨가하면 희석식 소주가 되죠. 이런 그레인 알코올을 이용해 압생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원래는 압생트가 가격경쟁을 하던 시절의 산물이긴 하지만 아직도 비양심적인 메이커들은 그레인 알코올을 쓰기도 합니다.

 

1단계의 베이스 알코올의 종류 보다 3단계에서 더욱 메이커간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오리지널 페르노의 경우는 선별된 쑥과 히솝, 멜리사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세인트조지라는 미국 양조장은 여기에 시트릭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 레몬밤을 쓰기도 합니다. 3의 단계는 사실 색을 입히는 목적보다도 2에서 증류된 압생트의 향과 맛을 최종적으로 조절하는 단계인 셈입니다. 메이커에 따라서는 한 번 더 증류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초심자들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아니스 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입니다.

3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무색투명한 압생트는 희다는 의미의 블랑쉬(blanche)” 혹은 푸른 색이란 의미의 라블뢰(La bleue)”라고 불립니다. 종종 이 상태로 상품화되어 팔리기도 하는데 이건 최종 착색착향과정 없이 증류만으로 완성된 맛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2의 과정을 거쳐 막 증류된 압생트는 74%입니다. 따라서 압생트 블랑쉬의 도수는 일반적으로 74%입니다. (종종 50%전후의 블랑쉬도 있지만 이 경우는 착색 없이 맛과 향의 조절을 받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블랑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일단 블랑쉬라고 나오는 압생트의 경우엔 대부분 괜춘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흰 압생트의 최고봉, 블랑쉬 드 푸제로예


 

3의 과정을 거쳐 초록색으로 착색된 일반적인 압생트는 (당연하게도) 초록이란 의미의 베르트(Verte)”라고 불립니다. 식물이 초록색인 이유와 마찬가지로 압생트의 녹색 역시 엽록소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 빛에 노출 될수록 엽록소가 분해되어 고유의 녹색은 점점 황갈색으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는데 이것은 좋은 압생트가 가진 매력 중 하나입니다.

 

3단계를 거치면서 알코올함유는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정통 제조법으로 만든 압생트 베르트는 68%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만 지역이나 양조장의 취향에 따라 더 줄어들기도 합니다. 



미국 주조업계의 장인인 랜스 윈터스가 만들어낸
뛰어난 미국식 압생트 세인트조지(생조르쥬가 아니라)
좋은 베르트는 태양 빛에의해 점점 갈색으로 변해간다.




애욕의 붉은 압생트, 압생트 루쥐, 붉은 빛은 히비스커스 꽃잎으로 착색했기 때문이다.

인공착색을 하지 않는 안되는 압생트 루쥐 하나인 스페인산 세르피스.




 

마주를 경배하라, 압생티아나.

압생트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음주시에 벌어지는 압생티아나라고 불리는 좀 유별난 의식입니다.
의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에릭 리튼 촬영


1. 정량이 표시된 전용 잔의 일정 부분까지 압생트를 따릅니다.

2. 잔 위에 바닥에 구멍이 송송 뜷려있는 전용 스푼을 걸쳐놓고 그 위에 각설탕을 올립니다.

3. 차가운 물을 서 너 방울 떨어뜨려 각설탕에 스미게 한다. 각설탕이 천천히 녹아 스푼의 구멍을 통해 압생트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4. 설탕이 거의 다 녹아 떨어질 무렵에 남아 있는 설탕을 씻어내듯이 찬 물을 서서히 가는 물줄기로 따른다. 투명한 녹색이던 액체가 차가운 물과 반응해서 탁한 젖빛의 흰 액체로 변합니다. 완성.


차가운 물 때문에 알코올에 녹아있던 기름 성분(주로 아니스의 향)이 분리가 되어 에멀젼화되는 이 마술 같은 현상은 그리스의 민속주 우조에서 나타난다고 해서 우조효과라 불리는데 우조뿐 아니라 아니스가 들어가 있는 파스티스나 터키 민속주 라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이 압생트에서 벌어질 때는 특별히 루쉬(louche, 불어로 그늘지다’, ‘수상하다’, ‘흐리다라는 의미)”라고 하죠. 이 현상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주는 것 외에도 압생트 안에 잠들어 있는 여러가지 허브의 복잡한 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좋은 압생트는 물의 첨가량에 따라 활성화되는 향의 층이 다르다고 할까요.. 같은 원액이라도 물의 첨가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과 향을 보여줍니다. 루쉬는 압생트의 질감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름성분이 에멀젼화되기 때문에 입에 약간 걸쭉한 점성이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무슨 요거트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브랜드에 따라서 (정확히는 아니스의 함유량에 따라서) 밀키스 정도에서 우유, 심한 경우엔 물 탄 밀크쉐이크 같은 질감까지도 느껴집니다.

이 섬세하고 정교한 맛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 압생티아나에서 각설탕을 빼거나 적게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탕을 멀리하는 압생트 애호가들은 설탕이란 모름지기 예전 가격경쟁을 하던 시절에 값싼 재료로 만들어진 싼 압생트의 좋지 않은 맛을 가리기 위해 업자들이 개발한 일종의 속임수이므로 좋은 압생트에는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사실 오리지널 메이커인 페르노나 페르노 보다 비싼 명품 압생트로 팔린 퀴제니에 등의 광고전단을 보면 전부 설탕과 함께 먹을 것을 권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19세기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 단 것을 더 좋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무엇이 정통인지 고증이라는 차원에서 따진다면 결국 설탕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이야기지만 음주가 무슨 역사극 찍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맛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에 의해 결정되는 거겠죠.

 

개인적으로는 설탕이 들어갈 경우 훨씬 여유 있게 향들을 하나하나 입안에서 분리해 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감상이었고 (전반적으로 발란스가 느껴짐) 설탕이 없을 때는 아니스와 페넬의 원투 펀치가 강하게 느껴지는 마조키스트적 쾌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 따라 넣기도하고 안 넣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블랑쉬나 스페인산 압생트에는 설탕을 넣어 먹지 않습니다.)


시대의 총아에서 탕아로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쉽게 말해 풀 뜯어 담근 술입니다. 딱히 해로운 것처럼 느껴지지 않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 녀석이 유럽과 미국에서 판매금지가 되었을까요? 

 

녹색요정에 취한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절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중독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부어라마셔라 해댔으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기성세대들은 이런 아름다운 시절에 대해 꼴사납게 생각했죠. 예술 한답시고 술에 취해서 해롱대는 백수들, 바 한 쪽에서 서로의 하의 속에 손을 집어넣고 조물락거리는 술취한 남녀들, 거리에는 술을 못 이겨 대낮부터 자기의 토사물 속에 처박혀있는 사람들, 정신병원을 가득 메운 수전증부터 환각에 정신분열까지 골고루 가지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들이런 말세 같은 작태를 보면서 당시 프랑스의 (꼴통)식자층들은 개탄을 금치 못했고 종교단체인 청십자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금주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주타겟은 바로 프랑스인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압생트였습니다.

압생트가 주 타겟이 되어버린 건 가장 인기 있는 술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 뒤에는 금주운동을 피해보려는 프랑스 와인업자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엽에 와서야 겨우 병충해대란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프랑스 와인업계는 갑자기 벌어진 금주운동이라는 또 다른 폭탄을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금주운동이 종교단체 주도로 진행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와인은 성서에도 나오는 거룩한 술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포화를 피해갑니다. “최후에 만찬에 사용된 바로 그 명품음료”, “지저스 크라이스트도 인정한 보혈음료라는 식으로 와인은 땅과 하늘, 즉 자연이 시간을 들여 탄생시킨 건강음료지만 불길한 색깔의 압생트는 공장에서 장사꾼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옥의 국물이라는 식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펼칩니다. 또 당시는 프랑스 전체가 진보와 수구꼴통으로 갈라져 싸운 드레퓌스 무고사건(1894~1906) 덕분에 카톨릭교계의 유태인에 대한 감정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압생트의 최초생산자인 페르노가 유태인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교회로서는 압생트를 공격할만한 더 큰 명분이 있는 셈이었죠.

 

그들에게 대중을 설득할 과학적 근거를 처음 제공한 것은 발렝땡 마냥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1860년대부터 진행해 오던 실험이었습니다. 정신병원을 경영하던 마냥박사는 압생트에 해롱거리는 사람들의 꼴이 보기 싫어 이거 분명히 해롭다, 다른 술보다 엑스트라로 해로와라는 심증을 정하고 압생트의 유해성분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결과를 마음 속에 정해 놓고 하는 실험은 실험이 아니라 기원이고, 과학이 아니라 종교잖습니까?

이 분께서 하신 실험이 이런 식입니다. 압생트라는 술 자체가 아니라 압생트라는 술에 들어있는 압생트라는 풀(쓴 쑥)의 농축액을 생쥐에게 노출시킵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생쥐들이 파르르 발작을 일으키며 죽기 시작합니다. ‘유레카! 역시 압생트(쓴 쑥)는 과다 복용하면 발작을 일으키면서 사망하는 군! QED! 따라서 압생트()은 다른 술에 비해 발작과 사망을 일으킨다. 그런데 압생트 때문에 입원한 환자들을 보니까 환각에 시달린다던데 여기에 환각을 추가해 3종세트로 구성해보자.’라는 식으로 자기가 이미 세워 놓은 결론을 확인한(?) 마냥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압생트()병을 가리키면서 뇌까렸습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19세기 말엽에 왈락이라는 화학자에 의해 쓴 쑥 안에 함유된 투존(thujone)이란 성분이 발견되면서 이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을 얻어갑니다. “압생트 안에는 투존이란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게 환각과 마비와 발작을 일으킨다더라.”라면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압생트, 그것은 죽음! 이라는 끔찍한 내용의 포스터


마냥박사는 환각, 발작 외에도 불면증, 충동장애, 분노 등 온갖 부작용들을 한데 묶어 압생티즘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런 부작용들에 대해 사람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실제 압생트를 음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런 오버질에 대해 코웃음을 쳤을 뿐 아니라 오히려 먹으면 발작하며 죽는다는데, 오오 비장한 걸, 한 잔 더.” 혹은 먹으면 환각이 보인다는데, 오오 녹색 요정이여 어서 강림하시오, 벤투라 벤투라 스페이스한 잔 더이러면서 더욱 마셔댔습니다. 아마도 도덕주의자들이 붙인 죽음의 술이라는 딱지는 보헤미안들에겐 오히려 타나토스적인 낭만이라는 매력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했습니다. (연적을 깨고 꿀단지를 비운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처럼 이 맛있는 거 먹으면 죽는다는 협박은 절대 안 통하는 법입니다.)

 

그러던 와중, 1905년 더운 여름날 스위스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압생트금지를 주장하는 쪽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고 여론을 돌리는 기폭제가 됩니다.  

 

쟝 랑프레라는 서른 한 살의 농부는 부인과의 말다툼 끝에 자기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베테리제 라이플로 자신의 부인과 두 아이 (카톨릭의 입장에선 세 아이)를 쏴 죽여버립니다. 말다툼하던 부인의 머리에 한 발, 총성에 놀래서 뛰어 들어온 네 살 짜리 큰 딸의 가슴에 한 발, 그리고 요람에서 자고 있던 한 살 짜리 둘 째 딸의 몸통에 한 발,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자살하려다가 그만 턱에 총알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면서 술에 취해 잠이 들어버리는데 이 후 부인의 시신을 부검해보니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체포되고 나서야 술에 깨어난 후 자신이 무참히 쏘아 죽인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을 보고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며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스위스의 조그만 마을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렸습니다. 충격을 받은 마을사람들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허공에 던지기 시작했고 몇 일 후 마을회의에서 그 착하고 선량하던 쟝을 살인마로 만든 범인은 바로 그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라고 결론 지어버립니다.


압생트를 쏘아버린 바로 그 총


당시 유럽인들은 무절제하게 술을 마셔댔고 게다가 식민지 전쟁덕분에 총이 흔해져서 술김에 가족들을 쏴 죽이는 일이 꽤나 빈번한 편이었는데 랑프레 사건은 마을 사람들이 내린 압생트가 범인이요라는 황당한 결론 때문에 와인업자와 종교단체의 힘을 얻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게 됩니다.


압생트 때문에 돌아버린 게 정말인지 사건이 있던 날 랑프레이의 음주일지를 살펴 봅시다. 

1. 아침에 일어나 쌉싸름한 압생트 두 잔 (당연히 물 타서)

2. 오전 5:30 일터인 포도원으로 나가는 도중, 동네 술집에 들러 크렘데멘테라는 리큐르와 물을 섞어 한잔, 그리고 꼬냑과 탄산수를 섞어서 또 한잔

3. 오후 12:00 점심시간에 빵, 치즈, 소시지와 함께 집에서 직접 담근 와인 석 잔

4. 오후 3:00, 일하다 말고 잠시 휴식, 휴식 중에 와인 두 잔

5. 오후 4:15 일하는 도중 한잔 하고 하라는 동네 주민의 권유에 와인 한 잔

6. 오후 4:30 일 끝나고 카페에 들러 커피에 브랜디를 타서 한 잔

7. 오후 5:00 와이프 보고 커피 한잔 달라고 하더니 커피에 집에서 직접 만든 독한 브랜디를 넣고 한잔. 커피가 안 따듯하다고 와이프한테 성질


잔으로 쓰니까 감이 안 올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쟝은 하루에 2리터가넘는 보통 와인과 동네에서도 최고로 강한 것으로 유명했던 홈메이드 와인을 역시 2리터 넘게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4~5리터 와인과 리큐르 그리고 브랜디 종류 이렇게 매일 드시는 거였다는 이야기죠. 문제가 된 압생트는 고작 아침에 한 두잔 정도

 

상식적으로 압생트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냐는 거죠. 술을 저 정도 매일 마셔댔다면 어느 순간에 돌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앞 뒤 다 무시하고 아침에 먹은 압생트 두 잔이 바로 살인의 원흉이라는 식으로 언론들은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압생트 제조업자들도 아뿔싸 하면서 PR을 전개 했는데 이미 게임오버. 산소가 함유된 압생트, 위생적인 공정을 거친 압생트, 심지어는 유해성분이라고 알려진 투존이 빠진 압생트 등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아 이 사람들아 원래는 약으로 개발된 거임이라고 외쳐보기도 했지만 이미 여론은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드레퓌스 사건 때는 드레퓌스를 옹호하던 진보언론까지도 압생트의 유해와 판매금지를 주창하고 나섰으니 어느 새 유럽은 압생트 반대를 통해 이념통합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1906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1908년 네덜란드 그리고 1910년에는 스위스, 1912년에는 미국, 마침내 1915년에는 종주국 프랑스도 압생트 판매금지를 실시합니다. 이렇게 한 세기를 풍미했던 압생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오명을 한아름 안은 채 쓸쓸히 사라지게 됩니다.





악착스러운 종교단체의 활동은 압생트의 종말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여론몰이의 결과였다.

1910년 스위스의 압생트 판금에 맞춰 스위스의 풍자교양지인 "르귀귀스에 실린 이 포스터는 압생트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청십자를 성직자의 옷을 입은 악마로 묘사하고 있다.





르귀귀스의 포스터를 변형한 듯 보이는 1915년의 이 포스터는 프랑스의 압생트 금지를 다루고 있다.
가운데는 커다랗데 프랑스 만세라고 쓰여져있고 청십자 신부 대신 당시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인 푸앙카레가 당당히 서있다.








좀 더 진지한 다른 포스터.
프랑스의 국민들이 녹색 요정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고
천국에선 5년 전 먼저 간 스위스의 초록요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어지는 2편 진상규명편에서는 압생트에 얽힌 오해를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커밍 쑨...

by 액화철인 | 2009/02/08 16:03 | 입 안의 쾌락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9)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