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장편)

옛날 한 옛날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더래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턱에 앉아 허구헌날 양하고 풀만 보다보니까 심심해져서 소년은 장난을 치기로 했어요.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백주 대낮에 들려오는 소년의 다급한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무기로 쓸 수 있는 농기구를 들고는 산으로 뛰어올라갔어요.
헐떡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소년은 매우 즐거워졌어요. 이것이 바로 권력의 맛이구나, 이렇게 대중을 움직인다는 건
짜릿한 일이구나라는 짜릿한 쾌감은 마음 속에 감추고 소년은 "여러분이 오는 소리에 도망쳐 버렸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사람들은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일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들은 우우우 분노하며 부리나케 중턱으로 또 올라갔어요.
소년은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고는 "늑대가 건너마을에 나타났어요"라고 보도했어요.
사람들은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일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들은 우우우 분노하며 부리나케 중턱으로 또 올라갔어요.
소년은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고는 "노총각 피터슨씨(40, 남, 자영업)가 바로 늑대"라고 보도했어요.
사람들은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일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들은 우우우 분노하며 부리나케 중턱으로 또 올라갔어요.
소년은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고는 "그러나 일부에서는 안나타났다고 보기도 합니다"라고 보도했어요.
사람들은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일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들은 우우우 분노하며 부리나케 중턱으로 또 올라갔어요.
소년은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고는 "늑대는 우리 마음 속에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라고 보도했어요.
사람들은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일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들은 우우우 분노하며 부리나케 중턱으로 또 올라갔어요.
소년은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고는 "늑대는 음흉한 남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거죠"라고 보도했어요.
사람들은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일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들은 우우우 분노하며....

(후략: 대한민국에서 계속 연재 중)

PS: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일단 헤드라인은 철썩 같이 믿고, 또 맨날 속으면서 자꾸 속아주니까 
이 나라에서 언론하기 진짜 쉽겠구나 싶어. 조중동이 나쁜 것보다 사람들이 머리 나쁜 게 더 나쁜 거야.

by 액화철인 | 2009/09/14 12:20 | 오욕의 타임캡슐 | 트랙백 | 덧글(8)

사람은 미움으로 움직인다.

붉게 칠한 종이 낫과 녹색 방충망의 조화는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킨다. [사진출처: 경향닷컴]

그들이 말하는 예전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예전의 삶이 경제적으로 더 윤택했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그레코 로만 신화가 그리는 사라져 버린 황금시대에 대한 침통한 상실감이나 
기독교 신화가 전해주는 옛날 신성과 가까웠던 시절 사람들은 키가 3미터가 넘었었고 900살도 넘게 살았었다는
그런 허구로 치부해선 안된다. 실제로 예전은 그 분들에게 더 좋았었다. 

사회가 어떠했든 간에, 누가 대통령이었던 간에 비록 지금 보다는 못 먹고 못살았었을지라도
때 되면 발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분들에게 그 시절은 지금보다 백만배는 낫게 느껴질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착각일지언정 스스로가 경제주체라는, 부양자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라한 피부양자로 전락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에겐 얼굴이 없다.
시간을 탓할 수는 없다. 시간에게 화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한탄을 이런 식으로 생물학적 젊음에 대한
일반적 질투만으로 축소 시키는 것 역시 온당하지는 않다.
그들이 봄날의 꿈처럼 회상하는 "좋았던 시절"엔 모든 것이 분명했었다. 그들은 그 분명함이 그립다. 
그 분명함의 핵심이었던 "함께 하는 분노"가 그립다.

사랑, 애정은 개개인의 삶의 방식과 역사를 규정할 수 있지만, 결코 그 규정은 집단을 오랜지배하고 유지하진 못한다. 
어릴 적엔 함께 몰려다니면서 어떤 미소년을 위해 형광봉을 흔들 수 도 있지만 그건 한 때일 뿐이다.
사랑은 어떤 유대를 한 세대 이상 유지 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 위인이든 연예인이든 사랑이 바래지 않는다해도
결국엔 각자 홀로 존경하고 각자 홀로 사랑하게 된다. 집단을 오래 동안 유대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증오는 다르다. 

증오는 한 세대를 규정하는 걸 넘어서 세습마저 된다. 세대를 넘고 세기를 넘고 밀레니엄을 지배하기도 한다.
사회의 건강을 재는 척도가 집단으로서의 결속력이나 공동의 추진력이라면 "분명한 공적(共敵)"이 있는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그들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칠 수 있음"은 모든 것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놈들보다 더 잘사는, 놈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공통의 힘을 기르기 위해 한 손엔 칼을 들고 다른 손엔 코란을 들고 
달려간다. 사랑의 종교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종교도 사랑만 가지고 유지 할 수는 없기에 이교도를 태우고 마녀를 태우고
정복전쟁을 일으키고 지금도 어디에선 사찰이 불타게 해달라고 빌고, 우상의 목을 자르면서  집합적인 증오를 배양한다.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늑대와 돼지의 얼굴을 한 "빨갱이"가 있었다. (가끔은 "일본놈"도)
빨갱이에 대한 증오 속에서 80먹은 노인부터 이승복 어린이 까지 갈등 없이 고민 없이 하나가 되었다.
가끔 예외인 녀석들은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한 타산지석과 일벌백계의 재료로 쓰면 될 뿐이다. 
우리를 하나 되게하는 그 증오는  빨간 색 바늘을 북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의 나침반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버렸고 어느날 갑자기 그들은 마치 냉장고 안에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곰팡이가 슬어버린
어머니의 김치를 찾아내듯 이미 고장나버린 증오 메카니즘을 발견한다. 우리를 뭉치게 하던 공통의 적은 더 이상 없다.
젊은 애들은 빨갱이보다는 친일파와 미국이 밉다고 한다. 노동자는 자본이 밉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밉다고 한다.
아내들은 남편의 30년간의 폭력이 밉다고 헤어지자고 한다. 발랑 까진 것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어른들이 밉다고 한다. 
집합적 증오의 대상이 없어진 아이들은 광야를 헤메면서 남의 나라 축구팀, 빌미를 제공한 연예인들, 죄상이 드러난 일반인들,
상대를 바꿔가면서 "휘발성 집단증오"를 즐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화가 난다.

마땅히 모두가 자기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증오라는 토템"이 산산히 부숴져 버린 것에 대해서, 자신의 일생만큼
묵혀놓은 그 귀중한 유산을 이제 더 이상 후손들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죽을 만큼 화가 난다. 
지난 10년간 벌어진 망측하기 짝이 없는 일들, 양국정상의 악수,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입장하는 단일팀,
만경봉호 가득 실려온 인형같은 처자들의 표정, 흰 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가 그려진 불경스런 깃발들, 그 속에서 
소중한 흙으로 만든 우상이 씻겨져 녹아내리는 걸 그들은 목격했다.

훼손된 건 단순한 우상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뇌를 공유하며 기름 잘쳐진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는 행복하고 부지런한 국민의 모습이자, 
반공의 수장이신 미국님과의 영원한 유대를 보장하는 강한 고리이며, 자신들이 원조로서 존경받고 대접받아야하는
당위의 증거다. 

그들의 존재이유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그들은 그 무너져 가는 흉물에 더욱 더 강하게 매달린다. 
증오에 대상 안엔  "집합적 증오"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함시켜 골조를 보강하고 
더 원색적인 표현으로 치장한다. 
그렇게 예전보다 더욱 조악하게 고쳐진 증오 모형에 복대를 두른 자살 특공대 처럼 매달려
"놈을 파내고 그 자리에 내가 대신 묻히겠다"라고 울부짓는 모습은 목숨이 위태로울만큼
심각하게 상처입은 동물의 마지막 몸짓이다. 버림받고 겁에 질리고 아무 것도 남은게 없는 자의
슬픈 패악질이다. 사회의 건강을 재는 척도는 집단의 결속력이 아니라 구성원에 대한 배려나
구성원의 양식수준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멸종 위기의 동물들의 슬픈 유전자다.  

by 액화철인 | 2009/09/11 22:06 | 오욕의 타임캡슐 | 트랙백 | 덧글(13)

get groupies는 "팬들 따먹어라"가 맞다

표현이 거칠기 때문에 일단 경고 세운다. 노약자, 임산부, 심장병 클릭금지. 난독증도 왠만하면 클릭 금지.
잘 모르는 박아무개가 잘했네 못했네 하는 포스팅도 아니고 불쌍하네 뭐하네 하는 포스팅도 아니고
팬들이 병맛이네 어쩌고 하는 글도 아니고

그냥 그 사건의 단편만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들 생각하세요.






1. 일단 번역이라는 매우 기계적인 관점에서


"Get groupies"를 "열성 팬들을 만들어라"라고 해석 하는 건

"Did you sleep with her(그녀와 했어?)"를 "그녀하고 함께 쿨쿨 잠 잤어요?"로 번역하는 것과 같고
"I came inside(안에다 사정했어)"를 "나는 안으로 들어왔어"로 번역하는 것과 같고
"I like him, because he's hung(난 그 남자가 고추가 커서 좋아)"를 "난 그 남자가 목매달려서 좋아"로 번역하는 것과 같다.

번역의 정확성의 근거로 삼기 위해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거든이라고
온라인 사전을 컨트롤V로 따다 붙이는 거 별로 소용도 없고 신빙성도 없다.
말은 사전에 있는게 아니라 실제 쓰는 사람의 입에 있는 것이거든...

groupie는 누가 너무 좋아서 섹스도 할 정도로 열성적인 팬을 가리킨다. 그루피에는 섹스의 함의가 있어.
(올모스트 페이머스에도 나오잖아. 그루피는 아무나 자는 애니까 그루피로 부르지 말고 밴드에이드라고 부르라고)
그러니까 get에 따먹는다는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groupie하고 합쳐지면서 그런 말이 되는 거다.
"너 좋아서 자자고 달려들 팬들을 만들어(얻어)"나, "팬들 따먹어"나 사실은 비슷한데
실제 어감을 살리면서 정확히 번역하려면 "팬들 따먹어"정도가 좋겠다.





2. 그리고 정작 흥미로운 것 대해

그런데...

내가 인간 말종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보통남자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이런 대화가 기억나더군 중3 때였는데

"교생 새로왔다며?"
"응, 근데 빨통이 어으으으~"
"따먹어?"
"누가 몰라서 못 먹어?"
"우리 형이 돼지 발정제를 구했는데...(후략)"



아마도 다른 녀석들과는 조금 달랐었나 보다.
는 페이크고 그 나이 또래 남자들은 이런 말들 하지 않나?

친구 사귄지 얼마 안되는 친구 A에게 친구 B가 한 질문

"그래서 아직 안 먹었냐?"



 
이건 생방송 가요프로그램 중 HOT의 강타의 클로즈업 샷을 보면서 예전 남자 상사가 한 말

"쟤들은 저 여자애들 다 따 먹을까?"



2년 전에 1집 앨범을 내고 데뷔한 친구에게 내가 해준말

"어이 이제 더 많이 따먹겠네"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은 "따먹었어", "따먹어라", "따먹었니?", "따먹어버려", "땄다", "쑤셨다", "박았다", "꼽았다" 입에 달고 살잖아.

한국에서 팝스타 된다는 친구에게 "좋겠네, 가서 여자팬들 좀 따먹고"라고 말했다고 죽일놈이 되는 거면 좀 웃기잖아.
뭐 박재범 사건(사실 사건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에 대해 별로 할말은 없어.
이 사건으로 인해 연예매니지먼트업계가 좀 더 철저해지겠구나 라든지
역시 대한민국은 애정결핍의 상처받은 육식동물이라는 심증이 굳는다든지 정도.
프로답지 못함을 위해 줄 수 있는 동정의 여지는 별로 없거든.

3. 이 포스팅의 존재이유
내가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포스팅하게 된 계기는 사실 진짜 단편적이고 사소한 건데
팬이 하나가 조목조목 오역이라고 지적하면서 올린 포스팅,
대부분은 맞는데 "Get groupies"란 부분에 따먹는 의미 같은 건 없어효 라고 한 부분이 참 흥미로왔어.

남자친구들끼리는 그냥 "가서 스타되서 팬 따먹어"라는 이야기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잖아.  
페이스북이나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무슨 프레스 컨퍼런스 장도 아니고 좀 공개가 되어 있어도 사적인 영역이잖아.
그 것 까지 변명해줄 필요는 없었는데 그런 거 보니까 아직 총체적으로 덜자란 "성의식"이랄까 뭐 이런게 느껴져서.
"우리 오빠(사실은 우리 오빠의 친구)는 따먹는 다는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안하욧!!!!"이라는 팬심이 느껴졌달까...

하긴 지들도 "따먹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거 가지고 시비를 먼저 건 공격자 남자들 쪽이 더 우습긴 하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쉴드를 치는 거잖아. (사실 저 케이스의 적절한 쉴드는 "니들은 따먹는다는 말 안쓰니"쪽이 
상식적으로 보이긴 하는데. 여기는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니니까) 역시 병신공격에는 병신쉴드랄까..
(예외 사항: 위의 사례를 보고도 나는 그의 친구의(그도 아니고 그의 친구의) "가서 팬들 따먹어"라는 말에
열 뻗친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따먹는 체험"과는 거리가 먼 불쌍한 인생을 살고 있는게 틀림 없으니까 
열 뻗쳐도 된다. 그 열까지 박탈하고 싶지는 않다. 실컷 열내고 자위하고 씻고 자라.) 

그리고 여자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물론 제가 알고 지내는 여성분들은 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자들은 "따먹는다"는 말을 굉장히 자주 씁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자주 씁니다. 그러니까
친구끼리 따먹는다는 말 한 거 너무 괘념치 말아주세요.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허벅지가 진리인 정우성도
아마 썼을 것이고 스톰섀도우 이병헌도 썼구요 비 정지훈 군도 아마 썼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섭생"이라는 메타포로 좀 저속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게다가 남자들은 대체로 생각이 어려서 저속함을 유대의 기제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여러분들을 애정하고 싶다는 의미로 어엿비 보아주셔요...



한 줄 요약:
남자끼리 여자 따먹는 이야기 한 게 이슈가 될 수 있는 건 정치인들이 기자 데리고 입 잘못놀릴 때로 족함.
(왜 정치인은 틀리냐고? 이 쪽이야 말로 여성을 욕망의 대상이기 이전에 남자와 차이가 없는 공적 의무의 대상으로 
 봐야하는 의무가 있어야하니까 그렇지. 속으로 따먹고 싶다고 느끼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살짝 다른 한 줄 (요약은 아니고):
확실히 "지나친 엄격함"은 "분노"에서 나오고 "분노"는 "개인적 행복의 부재"에서 나오는 법.



by 액화철인 | 2009/09/09 18:28 | 영어가 무슨 특권? | 트랙백(1) | 덧글(119)

비틀즈 리마스터를 주문했다.

원래 정가가 260불 정도라고 알고 있어서
한국에선 30만원대 초반 정가에 25만원 정도에 팔겠지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내가 바보.
원래 이 동네에선 돈주고 문화 컨텐츠 사는 사람 바보만드는 가격정책이 진리 아니겠음?

정가 38만원에 할인가가 30~31만원 이라공?

그래서 까라고 그랬다.
아마존에서 180불에 팔더라 S&H도 16불 쯤.
그래서 아마존에서 샀다.
환율을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25만원 나오더라.

결국은 예상가격이지...




남의 사랑을 착취하는 건 좋은데 너무 그러면 정 떨어지잖어...
어차피 안 팔려서 1년 있다가 잔뜩 낮출 거 면서 말이야...

by 액화철인 | 2009/08/26 15:40 | 음악이라는 쾌락 | 트랙백 | 덧글(5)

연애라는 메타포를 통해 본 "베라 막말 사건"

일단 내용상으로는 연애 38%, 시사 62%지만 연애 밸리 가중치 30%가 더해져 결국 연애 밸리로 보낸다.


1. 먼저 추억을 늘어 놓습니다.
본인의 외모에 그다지 탁월한 면이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아무래도 상당히 좋게 말하는 거고, 굳이 분류하자면 국민학교 6학년 이후로 복근과 갈비뼈를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안경돼지 쪽에 속하고 취미 역시, 외모에서 연상되는 덕스러운 짓들은
대개 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이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괜찮은 여성들과 "편력"이라고 자랑스럽게 볼드체로
이마에 새길 정도로 엄청나게 연애질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주변의 남자 녀석들이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종종 물어보곤 했었다. 30대 까지는 나이트도 안 갔었고 술도 안 먹었으니 업소여성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술먹여서 자빠뜨린 것도 아닌데 90년 대 말, 막내동생이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 마다
매번 우리집에서 자고가는 여자가 바뀌어있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막내 동생에게 군대시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형이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녀석은 대단히 지고지순한 연애노선을 걷는다.  


외모의 장애를 물리치고 인간승리를 거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고수들 앞에선 명함을 반쯤만 꺼내 보일 정도의 수준이긴 해도 나름 달변이고,
잡기에 능하고, 아는 거 많아서 화제 안 끊기고 나름 잘 웃기고... 
(사실 따져보면 "결못남"에서 볼 수 있듯 지나친 장인정신이 가미된 잡기나 지식은
연애에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근데 그게 아니라오.

사실 내 비결은 다른데에 있었어.

그건 바로 타게팅.
공략대상의 선정이라는 건데, 좀 풀어서 말하자면 넘어가기 쉬운 사람을 공략한다는 거다. 
어떤 사람이 넘어가기 쉬울까? 못생긴 사람들? 머리 나쁜 사람들? 절대 아닙니다. 
조금 거칠고 세게 답을 이야기 하자면  "아빠한테 사랑 못받은 여자애들"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애정결핍인 쪽이 꼬시는 게 쉽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아빠에게 사랑받지 못한 애들, 혹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빠에게 사랑 받지 못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여자들에게는 연애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근본적인 깊은 구멍이 있다.
이건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남자애들과는 틀린 문제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느 남자애들은 여자를 어떻게 꼬실까 연구하다 아빠에게
사랑받지 못한애들을 꼬시면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행동에 옮긴다
.)
그 공허는 마치 족쇄처럼 스스로를 자립하지 못하게 한다. 자기를 채워줄 수 있는
저수지 같은 감수성과 서비스의 남자에게 약하다. 현재 누군가와 사귀고 있더라도
그를 말라버린 샘 정도로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기에 얼마든지 끼어들 여지는 있다.
남자 한 명에게 확인 받는 것 보다 열명에게 확인 받는 것이 더 좋고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사람에게 확인을 받는 쪽이 더 가치 있다.

원래 색정광은 아이러니하게도 섹스라는 행위 자체로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채울 수 없지만 그 방법 말고는 모르니까 계속 말라버릴 때까지 육체의 숲을 질주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애정결핍은 진짜 자기자신과 화해하고 자기자신을 좋아하게 되기까진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이렇게 근본적 애정결핍자들만 유혹하다 보니까 쉽게 잘 수는 있는데
연애가 진짜 고통이다.

"충격 고백! C모군, 새로운 여자와의 섹스가 제일 쉬웠어요."  

애정에 대한 확인이 매일 필요하다. 예쁘다는 확인이 매시간 일어나야 한다. 정말 "High Maintenance"다.
그 채워 줄 수 없는 결핍의 무저갱에 매몰되어 버릴 것만 같다. 그러다 보면 결국 금방 헤어진다.
그런데 그냥 잘 헤어지면 다른 사람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니 나쁘지 않은데 그게 아니라 
온갖 쇼를 하고 온갖 욕을 들어먹는다. 게다가 요즘 같은 개인 미디어 시대에는 헤어지고 나서도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걔가 자기 블로그에 니 이야기 써놨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처음 열 몇 명은 찾아가서 보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그 마저도 보지 않는다.
다 똑같은 이야기다. "헛 똑똑이, 사랑할 가치가 없는 인간 쓰레기, 사람 마음을 장난감으로 아는
사이코패쓰 등"의 평가와 명명에 이어 "저런 거에 속다니 내가 병신이었지"라는 자조.

사실 헤어진다는 건 쌍방의 결정인데 나만 욕먹고 나만 악당이 되어버린다.
(물론 근본적으로 애정결핍남은 악당이 될 수 밖에 없는 건 인정. 따지고 보면 나도 잘한 건 없어.)

2. 그리고 시사를 언급합니다.

왜 "베라 막말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굳이 내 질풍노도의 시기를 언급하는지는 나중에 나오니까
일단 베라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미수다 패널 중 하나인 베라가 한국비하를 했다면서 한국언론이 병신드립을 하고 자빠진 사건은
다들 알고 있을 꺼야.
사실 언론이 병맛인 건 일단 뉴스거리가 못되. 언론은 본질적으로 병맛이거든.
잘나가는 데는 잘나가는 대로 광고주 눈치 봐야하고, 못나가면 못나가는 대로 찌질하고, 
외국도 타블로이드 같은 거 보면 진짜 말도 안되는 이야기 써놓고 입 씻잖아.
영국에도 "더 선"과 그 짝퉁들이 있고 미국에도 "내셔널 인콰이어러"와 그 짝퉁들이 있고
그리고 문선명이 만든 병맛풀풀나는 "워싱턴 타임즈"(워싱턴 포스트 아님)도 있고. 
그러니까 그냥 언론은 병신이라고 일단  접어 놓고 생각하자고.

문제는 말이지 병신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은 없는데 여기에 사람들이 넘어가서 우우 지랄하는데 있어. 
사실 그래 언론사는 클릭수로 먹고 사니까 그게 넘들의 거지근성이니까 제목을 자극적으로 짓게 마련이야.
"미수다 베라, 한국 사랑할 필요없다." 클릭 수 올라가는 소리 들리지? 나도 한 번 자극적으로 지어 볼까?
"미수다 베라, 한국, 쥐들의 천국" 아까 보다 클릭 수 올라가는 소리 더 빨리 들려. 이거 재미있는데. 
하나 더 해볼께
"미수다 베라, 한국, 교양있는 유럽인에겐 지옥" 오오 이것도 자극적이야. 여러분도 해보세요.
제목이 자극적이라서 끌려 들어가서 클릭을 해. 나도 그랬었어. "30대 애널 연탄자살"이런 문구 보면
30대가 항문에 연탄을 넣고 자살한 거 같잖아. 물론 들어가보면 "30대 애널리스트가 연탄가스로..."뭐 이렇지만.
그래서 들어가 본다고. 그건 본성이야. 궁금하잖아.
그래서 내용을 봐 그럼 아주 속을 긁는 내용이야. 근데 난 궁금한게 이건데. 왜 언론에게 본인을 기분 나쁘게 할
권리를 허락하는 거냐고. 아니 조선일보가 "베라가 막말했더라"그러면 막말한게 되나?
동아일보가 "베라가 한국 비하했더라" 그러면 비하한게 되나?
왜 그 말에 권위를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냐고.
그건 활자야. 허언이야. 왜 거기에 본인의 혈압을 올리는 권한을 허락하는 겁니까들?

사실 경우를 따져보면 동아일보는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었어

"온라인에는 아직까지 그녀가 쓴 책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거나 당사자를 취재한 보도는 없이
대부분 처음 문제를 제기한 누리꾼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

"하지만 ‘책의 일부 내용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는 주장도 있었다"
                                                                                                  - 동아일보 기사 중-

이걸 보면  "베라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건 비난만 쓰고 칭찬은 안 썼기 때문이다. 비판은 좋지만,
듣는 사람의 기분 생각해가면서 칭찬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쉬웠다"라고 의견을 개진하는
병신들이 있는 게 진짜 동아일보 책임은 아니거든. 병신같은 기사를 더 병신 같이 읽은 사람 잘못이지.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미즈노의 추억.


3. 가슴 아픈 사랑이고 말고. 

베라사건은 언론이 병신짓한 것도 있지만 함께 병신춤을 군무로 추어주신
일반 대중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
을 뻔했던 케이스다. 이 집단군무 뒤에는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뿌리깊은 정신적 문제가 있다.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국민정서"는 바로 아빠에게 사랑 못받은 여자애들과 너무 비슷하다. 
나라 전체에서 애정결핍의 패배와 자조가 뚝뚝 묻어난다.

그 결핍 때문에 자신감이 없으니까 끊임 없이 확인하려 든다. 나는 중요하니까 날 봐줘라는
자의식이 하늘을 찌른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는 점에 절망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중심일 수도 있다는 힌트를 찾기위해 광야를 헤멘다.
그건 우리가 일본보다 못살고 미국보다 못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겐 우리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존감이 결핍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고 "이제 괜찮다. 이정도면 되었다."라고
토닥일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통해 투사된 우리의 이미지를 끊임 없이 확인하려든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지도그리기와 도표그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줄세우기를 해본다. 우리 앞에 서있는 잘사는 나라에는 애정을 구걸하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보면서 안도한다.

유명스포츠 경기가 있다면 어김 없이 올라오는 외국게시판 번역은 흥미롭긴 해도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 자의식의 증상이다. 이런 면을 건드려 성공한 많은 아이템중 하나가 바로 "미수다"다.
 미수다는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에 대한 분명하고 끊임 없는 확인을 하려는
애정결핍자의 처량한 몸짓이다. 

로버트 할리가 좋아해 주니까, 미즈노 슌페이가 좋아해주니까, 이다도시가 좋아해주니까,
우리는 좋은 나라일꺼야 라는 식의 휘발성 자존감을 끊임 없이 공급해주는 공장이다.
(사실은 Meth Lab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음)

그러다가 누가 조금만 나쁜 말하면 너 어떻게 그럴 수 있어로 돌변하는 것도 애정결핍의 증상과 똑같다.

모든 나라 욕먹지. 욕안먹는 나라 어딨어. 미국인은 건방지고 무식하고, 스페인에는 소매치기 열라많고,
프랑스는 시내에 물 썩은 냄새나고, 이탈리아는 욕심만 앞서서 무식한 지도자를 뽑아서 국제망신중이고
(이건 욕하기 보다는 함께 부둥켜 안고 울고 싶은 기분), 남아공은 치안이 개판이고, 중국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고, 일본은 애들 성격 치졸하고... 한국은 건드리면 안됨? 만국으로부터 까임방지권이라도
획득했어? 그건 그렇게 보는 거냐. 그건 틀렸다. 분노할 수 있지만
깠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막 패악질 해대는 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미즈노가 만두 광고 찍은게 우리나라가 무슨 큰 은혜를 베푼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일본인인데
한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미워하더라라고 까발린 거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사실 미즈노가 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들은 예들, 뭐 홍가라와 이야기 같은 건 사실과 다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어.
그러나 미즈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우리의 반응은 "니말이 이러이러해서 틀렸다"는 지적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지.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배신감이었던 거야. 
미즈노 슌페이가 욕먹는 거 사실은 그 사람이 잘못했다기 보다는 그 사람 앞에서 해해 거리며 애정했던 
우리 모습이 병신 같게 느껴지기 때문 아니겠어? 그러니까 꼬투리 잡는 거야. 인터뷰 때 돈을 요구했다는 둥,
한국이 일본 베낀다고 까발렸다는 둥하고 구차한 이야기를 들먹거리면서. 
왜냐하면 그 거 말고는 근거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만두광고 찍은 이야기나 나오고 한국에서 김치 예찬하면서
뒤로는 반일에 대해 깐다고 욕하는데...

어이 이봐 나도 요코하마 카레빵은 예찬하고 싶은데 야스쿠니 참배는 개념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거든.

베라의 망언 여부는 진짜 병맛 같아서 길게 쓰고 싶지 않을 지경이야.
지하철 보고 쥐 연상 부분은 솔직히 사실 아님? 그리고 그 문장이 제대로 번역된 걸 읽으면
"서울이나 파리 같은 대도시에선"이라고 이야기 하잖아. 프랑스도 파리도 비하한 거네.
그리고 쥐 아니고 사막쥐라고 점프하면서 경쟁하는 것처럼 이동하는 녀석들 있어.

저비아라고 이렇게 생긴 놈인데, 어때 모욕감에 치가 떨리나?

사람들이 막 먼저 나갈려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을 빗댄 건데 틀린 말이야? 
백인이라 동양인들을 쥐로 묘사한거라고? 그럼 프랑스는 아시아? 지하철 있는 대도시는 전부 아시아에 있고?

그리고 "교양있는 유러피안 어쩌구"라는 부분 말입니다요. 원래 제대로 개념 박힌 애들은 동양인이던
서양인이던 문화가 다른 곳에 가면 자칫하다가는 결례를 범하기 십상이라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배운 교양 예의 다 동원해서 조심하려고 해. 애들 머리 함부로 만지다가 가문을 욕보인 놈으로 찍힐까봐 조심한다고.
우리나라의 외국인들이 다 그렇다는 거 아니야, 당연히 해골성당 벽에 낙서하는 한국넘들처럼 
 몇 일전에 롯데 백화점에서 와인사면서 따달라고 땡깡부린 호주남자놈들 같은 애들도 있어. 
베라가 안타까워 하는 건 자기 딴엔 예의 바르고 가정교육 잘 받은 사람 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와인따달라면서 땡깡부리던 호주놈들 같은 다른 무례한 외국인들과
별로 차이가 없어보이는 결과, 즉 잘 울고, 작은일에 신경쓰고 불손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창피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야.

자신의 똘레랑스의 부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부분을 "동양인이 무식하고 나는 교양있음"이라고 해석하면 어쩌라고. 

혹시 몰라서 그 부분 전재 한다. 

" 내 개인적인 창피함 때문에 고백해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다른 외국인들과 
  구분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 처럼 잘 울고 작은일에 신경 쓰고,
  불손한 사람으로 구분되어진 것이다. 예의 바르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유럽인으로서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불쾌감을 느끼고, 아직까지도
  한국의 규칙과 금기사항에 말썽만 부리고 있었다. 마치 서울거리의 말썽꾼들 처럼"
  (번역:요요님, 다소간의 오타 수정, 출처 http://blog.naver.com/wunderba?Redirect=Log&logNo=50069746349 )

사실 베라가 폄훼했는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한 거 아니야. 

거기에 우우 들고 일어나는 게 흥미롭고 서글픈거야. 우리가 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수다 출연진들에게 정을 쏟다가 그 쪽에서 틀어져 버리면 심하게 배신감 느끼게 되는 건가?
정을 많이 쏟아서?

원래 애정결핍이 그렇게 애정을 남발한다. 그리고 끊임 없이 피곤하게 감시하지. 쟤도 나 좋아하나? 
그러다가 상대방이 자기 싫어하는 것 조짐이 보이면 온갖 난리에 패악을 부린다. 
정이 많아서 애정을 남발하는 게 아니라 사랑받고 싶으니까 불쌍할 정도로 사랑에 목말라 있으니까 그런 거다. 

그럼 누가 사랑해 주면 좋음? 
예전에 국제 컨퍼런스 가는 길에 일본사람 미국사람 나 이렇게 한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다.
일본 사람은 스포츠 관련 국제기구사람, 미국인은 군인 출신(한국주둔)으로 아랍에서 물류업,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정치상황이야기가 나왔다.
(왜 자연스러워 그게!!!)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 외국인들하고 이야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난 화제가 뭔가 메이저리그나
최신 영화로 바뀌길 기다렸는데 일본 아저씨가 끊임 없이 이야기하는 거라. 미국 아저씨도 별로 말 안하고.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아저씨 주장은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을 좋아해"였다.
아놔 그래서 어쩌라고 많이 좋아하세요. 
별로 중요한 거 아니잖아. 미국이 좋아해주는 것도, 일본이 좋아해주는 것도.


애정결핍에 대한 일반적인 심리치료해결법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좋아하고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이거 오늘 내일 이뤄질 일은 아니고 갈길도 멀어보이지만 그래도 당당해지자고.
당당함은 섹시함이잖아. 좀 섹시한 국민성을 가져보자고.

추가: 중요한 건 미수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으면서 이런 포스팅 하다니?

추가2: 이거 개인 블로그임. 이 글 읽다가 울컥하시면 이 사실을 한 번 더 상기해주시길 바랄께...

by 액화철인 | 2009/08/25 18:23 | 가고싶지않은연애밸리가는글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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