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악인열전 - 투페이스 編


투페이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다들 투페이스가 누구인지 아실 듯하지만 그래도 더 깊은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인 사항을 짚고 넘어가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정체: 전 지역검사인 하비덴트

발생: 사고로 얼굴 반쪽이 타버리면서 정신세계도 반쯤 맛이 감 (사고의 내용은 여러가지 다른 버전이 있음)

특징:

1. 칼자국이 새겨진 동전을 들고 다니면서 매사를 동전던지기로 결정 (동전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음)

2. 양쪽이 확연히 다른 패션을 선호

3. 2라는 숫자에 상당히 집착하며 매사의 양면성에 대해도 깊은 애착을 보임

4. 검사 시절에는 배트맨 및 짐 고든과 협력관계를 유지

 

 

기원

배트맨의 원작자인 빌 핑거와 밥 케인이 만들어낸 캐릭터로 1942년 데뷔 당시에는 하비 켄트라고 불렸습니다.
배트맨의 우군이 악당이 된다라는 발상에서 기획된 캐릭터로서 최초에는 경찰서장 제임스 고든, 지역검사 하비 켄트, 가면의 사도 배트맨이라는 고담시 정의 3인방 중 하나로 출발합니다.

26세의 나이로 고담시 역사상 최연소 지역검사로 선출된 하비 켄트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아폴로"라는 별명을 가진 소위 "엄친아"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고담을 지키는 배트맨과는 달리 버얼건 대낮에 아이들이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는 방법으로 법을 지키는 고담사법제도의 당당한 수호자로 자리매김을 하려는 하비켄트는 고담시에 만연한 범죄와 치안조직과의 유착을 끊고 정의사회를 구현을 위해 가열찬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건은 카마인 팔코니의 라이벌 격인 살 마로니를 살인죄로 기소하면서 발생합니다. 켄트가 제출한 증거물은 바로 범죄현장에 떨어져 있는 앞면만 두 개 있는 동전. 이 동전은 살 마로니가 평소에 들고 다닌다고 알려진 부적인데다가 게다가 빼도박도 못하게 지문까지 찍혀있던 거죠. 이 증거에 의해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살 마로니는 미리 준비해 갔던 염산을 덴트의 얼굴에 끼얹어 버리고 결국 덕분에 덴트의 왼손과 왼쪽 얼굴은 심하게 망가집니다. "아폴로"로 불렸던 황금법조인의 운명은 이로 인해 심하게 굴절되기 시작합니다. 

 

얼굴이 상한 후, 살 마로니의 동전으로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 투페이스
동전은 상처를 낸 쪽으로 떨어지고 투페이스는 범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의 증거품이었던 이 동전은 덴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그의 수많은 결정을 만들어낸다.



 

투페이스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만화사가들은 루이스 스티븐스의 소설인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은 바로 1941년도에 나온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영화판일 듯합니다. 특히 초창기 투페이스의 설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정되는 1941년판 포스터를 보신다면 동감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1941년 포스터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든 복각포스터, 투페이스 캐릭터 디자인은  표절 수준?



가짜 투 페이스의 시대

아폴로 켄트라 불리던 시절의 1940년대의 하비덴트는 세 번 만화에 등장했습니다. 세번째 등장에서 성형수술로 치료받고 다시 유능하고 잘생긴 아폴로 켄트로 복귀하게 됩니다. 결국 배트맨의 숙적이라기 보다는 배트맨에 의해 구원 받는 자라는 성격이 훨씬 강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하비 아폴로 켄트의 사회 복귀 후에 40년대 말 경, 독자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의해 투페이스는 다시 등장합니다. 하비 켄트란 이름은 클락 켄트와의 연관성이 제기 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이름이 덴트로 개명되었는데 새로 나온 투페이스는 덴트 본인이 아닌 덴트의 집사인 윌킨스였습니다. 누구네 집사는 주인의 정의 실현을 암암리에 돕는데 누구네 집사는 개과천선한 주인의 못된 과거를 흉내내고 다니는 짓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투페이스 재등장은 덴트를 다시 의심받게 만들지만 결국 윌킨스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허허 다 오해였어"로 행복한 결말이 납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상당히 같잖은 가짜 투 페이스 에피소드가 의외로 인기를 끌자 1951년에 디씨는 다시 한번 유사한 이야기에 도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미남검사 -> 추남악당 -> 미남검사라는 드라마틱한 삶을 거친 하비 덴트의 일생이 영화화되고 폴 슬론이라는 잘생긴 배우가 하비 덴트 역을 맡게 된다는 배경으로 출발합니다.
. 그런데 촬영장의 사고로 폴 슬론은 하비덴트가 겪었던 똑 같은 사고를 당하고 (폴슬론에게 질투를 느낀 소품 담당이 영화에 쓰이는 가짜 염산을 진짜로 교체) 절망한 꽃미남답게 심하게 삐뚤어져서 악당짓을 하다가 응징당하게 됩니다. (슬론의 투페이스는 나름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62년에 다시 한 번 다뤄지게 되는데 이 버전에서는 염산이 아니라 조명폭발로 얼굴이 변한걸로 되어 있습니다)

1952년 또 다른 가짜가 등장합니다. 조지 블레이크라는 악당이 지 얼굴을 일부러 태워서 투페이스 행세를 하면서 하비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려는 기가 막힌 계획을 세웠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른쪽 얼굴을 태워먹었다는 것이지요. (오리지널은 왼쪽 얼굴이 탔습니다)

DC가 가짜 투페이스 이야기를 계속 이어올 만큼 투페이스는 독자들에게 상당한 어필을 했던 캐릭터였습니다. 투페이스에 대한 독자들의 이러한 열망은 사소한 가짜투페이스 에피소드로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DC는 드디어 투페이스 하비덴트를 부활시키기에 이릅니다.

 

진짜 투페이스의 복귀와 오랜 침잠


드디어, 1954년, 검사 덴트는 수사중에 금고가 폭발하는 사고로 성형이 무효가 되면서 다시 투페이스가 되어버립니다. 새로운 투페이스는  살아가기 위해 투페이스를 가져야하는 사람들, 배우, 광대, 다이버 등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결국 배트맨/로빈에 의해 다시 구원 받게 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투 페이스는 그저 사고 치면 배트맨이 구해주는 골치 아픈 친구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범죄 행태 역시 그냥 좀 심한 장난 정도일 뿐이었죠. 사실 이시기의 배트맨의 악당들은 다들 그냥 좀도둑 수준으로 톤다운 되었었습니다. 심지어 조커같은 심한 악당은 아예 반쯤은 퇴출당하기까지 했었죠. (여기엔 배트맨시리즈 전체가 겪었던 수난의 맥락이 있습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선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투페이스 역시
50년대 잠깐 복귀한 것 이 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화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1962년 폴슬론 스토리의 복각과 1968년 배트맨이 약물로 인해 투페이스가 된다는 해괴망측한 설정의 스토리 외에 하비덴트/투페이스는 잊혀진듯이 보였습니다만은 그것은 진정한 투페이스 전설의 시작을 위한 폭풍전야였던 것입니다.

 

투페이스의 재탄생

마지막 투페이스 스토리로부터 어언 17 6개월의 세월이 흐른, 1971 8, 투 페이스가 돌아옵니다. 배트맨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걸출한 작가 데니스 오닐은 투페이스의 이야기를 기원부터 다시 다룹니다. 데니스 오닐의 손을 거친 투 페이스는 사악하고 악랄하며 복귀가능성이 전혀 없는 조커나 펭귄에 버금가는 배트맨의 라이벌로 다시 태어납니다. (물론 이 때도 40년대 설정되었던 2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집착은 여전했습니다. 고담시 제2 중앙은행을 2 2일 두시 이십이분에 털겠다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 들어 배트맨과 그의 악당들의 내면이 깊이 탐구되기 시작하면서 투페이스 역시 이중인격을 상징하는 캐릭터로서의 깊이를 더합니다. 특히 미국만화의 전설 프랭크 밀러는 86년에 발표된 "배트맨:암흑기사의 귀환" 속에서 투페이스를 통해 인간 양면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풀어냅니다. 
 

배트맨: 암흑기사의 귀환에서의 투페이스

"암흑기사의 귀환"은 미국현대만화를 이야기하거나 80년대 이 후의 대중매체 속에서의 배트맨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문제작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배트맨의 공식 스토리라인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배트맨 시리즈의 가상의 미래를 다루고 있는 "미래가정형"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트맨 아니 더 나아가 히어로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를 뒤흔들고 재정립 시킨 걸작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투페이스는 얼굴이 회복되는 모습부터 등장합니다. 아캄에서의 오랫동안의 정신치료 그리고 성형수술로 인해 이제는 60대인 하비덴트는 드디어 투페이스의 악몽에서부터 깨어나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책무를 다할 준비가 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몇 일 못 가 덴트는 다시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투페이스로 돌아가게 되고 이 사건은 은퇴했던 배트맨을 전선으로 불러들이는 결정적인 단초가 됩니다. 강한 자살 충동을 보이며 집단 폭사하려는 투페이스의 계획을 배트맨이 막는 장면에서 배트맨은 투페이스의 얼굴에서 붕대를 풀어버리는데, 붕대 밑에 있는 얼굴은 한 쪽이 망가진 얼굴이 아닌 여전히 멀쩡한 하비덴트의 모습이었습니다. 망가진 건 얼굴이 아니라 정신이었다는 이야기죠.

 

배트맨 원년에서의 하비덴트

배트맨의 미래를 다룬 프랭크 밀러는 1987년엔 배트맨의 기원에 대해 돌아보는 배트맨 원년이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전년에 했던 배트맨의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하비 덴트는 투페이스가 되기 전의 지역검사, 한 마디로 정의의 편으로 등장합니다. 정의에 대한 집착 폭력적 성향으로 심지어는 혹시 덴트가 배트맨 아니야?라는 의혹을 받기도 하죠. 
프랭크 밀러는 투페이스를 전혀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하비덴트의 삐뚤어진 마음에 대한 암시와 같은 범죄소탕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과 고든과의 묘하게 얽힌 관계에 대해 보여 줌으로써 향후 투페이스로 변해버릴 이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작품에서의 하비 덴트는 투 페이스가 되기 전의 원형으로 남아 앞으로 나오게 될 수많은 투페이스 이야기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89년의 팀버튼작 영화판으로 훌륭한 마무리를 한 80년대의 배트맨은 암흑기사로서의 배트맨의 전형을 확립하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이미지의 변화는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발전을 위한 가능성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90년대에는 훨씬 더 드라마틱한 실험이 이뤄졌고 이 중에서 배트맨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존재인 투페이스의 역할 역시 부각되었습니다.

 

TV애니메이션 속의 투페이스

90년대의 배트맨을 규정한 것은 극장판의 성공으로 고무된 워너가 만들어낸 배트맨 시리즈였습니다. (The Animated Series를 줄여 흔히 TAS라고 불립니다.) 92년부터 95년까지 4번의 시즌에 걸쳐 총 85화의 에피소드로 진행된 이 시리즈는 40년대 플라이셔 스튜디오풍의 디자인과 저명도 저채도의 느와르 풍 컬러톤으로 당시의 다른 TV애니메이션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엔 에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누리게 됩니다.

투 페이스는 시즌 1 17~18, 2부작 에피소드를 통해 최초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한 악당은 그 때까지는 거의 유일했습니다. (클레이페이스 역시 2회에 걸쳐 연속으로 소개되긴 했읍니다만) 원작과의 차이를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원작의 질다가 아니라 그레이스가 약혼녀로 소개된 것, 브루스 웨인과 꽤나 친한 사이로 묘사된 것, 원래 동전을 던지는 버릇이 있다는 점 그리고 TV판의 마피아보스인 루퍼트 쏜에 의해 얼굴이 상했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TAS판 의 투페이스 디자인은 매우 상징적이었습니다. 한 쪽이 완전히 파랗게 변색되어버린 얼굴이라든지 마치 몸의 반신이 전체가 변한 듯 훼손된 목 뒤나 손이라든지 흑과 백이 명백히 갈리는 수트의 디자인라든지 하는 점은 만화영화라는 장르가 주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활용한 모습이자 투페이스의 상징성을 극도로 시각화하겠다는 제작자들의 의지이기도 했습니다.

투페이스의 반쯤 감긴 듯한 눈에서 보여지듯 TAS의 투페이스는 무심한 듯 쉬크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차분해 보이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조커와는 다른 종류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악역이었습니다.




산에 의해 탔다기 보다는 뭔가 심하게 오염된 듯한 디자인, 손 역시 완벽하게 훼손



 


배트맨 포에버의 투페이스


투페이스를 최초로 영화에 등장시킨 것은 조엘슈마허가 만든 배트맨 포에버였지만 하비덴트는 89
년에 나온 팀버튼의 배트맨에도 등장합니다. 당연히 투페이스를 속편에서 써먹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스타워즈의 "랜도 칼리시안"역으로 유명한 빌리 디 윌리엄스는 1편에서의 하비덴트 역을 수락할 당시 향후 배트맨 속편에서 투페이스가 등장할 때 반드시 자신을 투페이스로 캐스팅 하도록 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했습니다. (빌리 디 자신 역시 대단한 배트맨 덕후였고 스스로 투페이스 역이 향후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상당한 의미를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이 계약은 빌리 디 윌리엄스가 흑인 투페이스로 훌륭한 역할을 해 줄 것이라 믿었던 팀 버튼의 신뢰의 소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출연한 거냐고!!!
이게 어딜봐서 덴트야? 최소한 수염은 밀던지...




그러나 문제는 3편인 배트맨 포에버에서 발생합니다.

배트맨의 세 번째 영화는 출발부터 순탄치 못했습니다. 애초에 3편은 팀버튼과 마이클 키튼이 마친가지로 1~2편의 성공을 3편까지 이어보자는 "구관명관"의 정신에서 출발했습니다. 키튼도 자신을 2류 코미디언에서 헐리우드의 잘나가는 남성심볼로 자리매김시켜준 배트맨 프랜차이즈를 쉬이 포기 할 수는 없었고 팀버튼 역시 자신을 그야말로 메인스트림에서 먹히는 감독으로 만들어 준 이 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워너브라더스가 미국내에서 8천만불 들여 1억6천만불이나 번 배트맨 리턴즈를 "성공작"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SM 퀸같은 복장의 캣우먼이나 닥치고 기괴망측한 펭귄, 다시 말해 "버튼스러움"이 전작의 "실패"라고 느낀 워너는 세 번째 영화는 철저히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판타스틱 롤러코스터 영화로 만들겠다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배트맨의 원작자 밥 케인 역시 뼛속까지 비지니스맨인 관계로 이 결정에 대해 앞장서서 찬성하죠. 결국 버튼은 감독직을 고사해버리고 연출로 한 발자국 물러납니다. 
버튼의 빈자리에 당시 다크맨과 이블데드 시리즈 등으로 나름 컬트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샘 레이미가 손을 들고 등장합니다. 문제는 워너가 보기엔 팀 버튼 대신 샘 레이미를 쓰는 건 정말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라는거죠. 기괴한 애가 싫어서 적당히 둘러서 빠이빠이했더니 더 기괴한 애가 온 셈인 겁니다. (이 시기에 샘이 맡았다면 정말 걸작이 나올 수도 있었다라는 건 우리모두의 상상속 이야기) 

결국 프로젝트는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화려하며 나름대로 거장인 조엘 슈마허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슈마허가 오기 전까지 팀버튼과 워너브라더스는 3편의 메인 악당을 리들러로 결정했었고 리들러 역할로는 "로빈 윌리엄스"가 카메라 테스트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잘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슈마허가 오면서 는 자신이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악당인 투페이스를 등장시키기로 했고 그의 머리 속에서는 투페이스와 리들러가 까불거리는, 한마디로 거의 60년대 배트맨 TV시리즈 풍의 엄청난 개그물의 경박함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박함을 보고 사고치겠군이라고 생각한 마이클 키튼(과 로빈 윌리엄스)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


투페이스 역은 빌리디가 맡는 걸로 이미 1편 시점에서 계약이 되어있었다는 건 앞에서도 말씀 드린 상황입니다. 그러나 룰루랄라 슈마허의 머리 속에는 이미 투페이스역을 맡을 배우가 세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폴로라 불릴 만큼 잘생겼고, 미친놈을 연기할만큼 미쳤고, 게다가 연기가 되면서 PR효과를 줄만큼 유명한 스타. 바로 멜깁슨이었습니다
.




어라 그럴듯 한걸?



슈마허가 꿈꾸는 최적의 투페이스 역인 멜깁슨은, 그러나 안타깝지만 제가 감독해야할 영화가 있어서…”라며 고사합니다. (결국 투페이스역을 거절하면서 감독한 브레이브 하트로멜깁슨은 오스카 감독상을 받습니다) 결국엔 주지의 사실대로 타미리존스가 최종적으로 그 역을 맡게되었는데 그렇다면 이미 89년 부터 투페이스를 맡기로 계약되어 있던 빌리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워너는 빌리디에게 권리금(사실은 위약금)을 지불하게 됩니다.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감독에게 빌리디로 하게끔 압력을 넣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인종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타미리존스의 캐스팅에 대해 슈마허는 "애시당초 타미리가 언제나 첫번째 선택이었다"라는 씨도 안먹히는 거짓말을 각종 인터뷰에서 했었지만 많은 팬들 사이에선 슈마허가 멜깁슨 캐스팅 실패 후 자신이 직전에 만든 영화인 "의뢰인"에서 검사 역할을 했던 타미리를 급하게 고용한 것이다라는 의심이 돌기도 합니다. 그 건 아마도 "배트맨 포에버"의 투페이스가 "배트맨&로빈"의 미스터 프리즈와 더불어 배트맨 영화 역사상 최악의 미스캐스팅으로 평가 받기 때문일 겁니다.



바로 직전영화에서 검사를 맡은 사람을 곧바로 투페이스로 등장시킨다.
슈마허는 이런 영화 외적으로 썰렁한 농담 같은 짓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영화는 대체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타미리존스의 투페이스는 가차 없는 혹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타미리존스 스스로도 리들러를 연기한 짐캐리에 대해 이유없는 열등감 폭발로 촬영 내내 스탭들과 감독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갈등은 영화에도 그대로 표출되어 "내가 더 사이코"라고 주장하는 듯 언제나 짐캐리보다 더 오바질을 해대지만 결국 반쯤 성공한 짐캐리 흉내밖에 되지 못하는 타미리존스 연기경력 사상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더욱 커다란 문제는 아무런 적절한 고민이나 철학 없이 캐릭터를 지 입맛대로 바꿔놓은 감독이었습니다. 슈마허가 투페이스에 대해 애착을 가진 건 좋았는데 문제는 그 애착 자체가 상당히 빗나간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겁니다. 일단 조엘 슈마허는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한 악당이란 기본적인 얼개와 설정은 알았지만 투페이스라는 캐릭터를 깊이 알지는 못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투페이스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동전 던지기를 계속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투페이스가 동전을 들고 다니는 것은 동전/우연이 주는 선택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를 위한 것인데 말이죠. 그야말로 동전은 폼이냐?”라는 것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게다가 동전에 새겨진 건 HD라는 글자. 괴물사이드의 하비덴트의 혼돈스러운 성격을 보이기 위해 그냥 기호처럼 박박 그어 놓는게 원래 설정인데 자기 옛날 이름의 이니셜을 새기고 앉아있는 하이틴 소녀 같은 섬세함은 정녕 뭐란 말입니까? 이런 문제들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영화판 투페이스는 하비덴트가 아니라 사실은 하비덴트의 집사이자 가짜 투페이스 였던 윌킨스 집사라는 농담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이로 보나, 그 사기스러움으로 보나, 그 섬세함으로 보나)

 

보면 볼수록 윌킨스 집사



롱 할로윈

영화가 삽질을 하는 동안 만화는 그 자유스러움을 바탕으로 배트맨의 수준을 점점 더 깊어지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여러 배트맨 만화 중, 투페이스가 활약한 걸작은 바로 팀 세일즈와 제프 롭이 만들어낸 1998년 작 롱 할로윈입니다. 배트맨 원년과 더불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에 커다란 영향을 준 작품인데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투 페이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이야기는 배트맨이 데뷔한지 얼마 안되는 시점 하비덴트가 지방검사로 활동하던 시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덴트는 사랑하는 아내도 돌보지 않고 범죄소탕에 매진하고 있으나 범죄는 더더욱 기승을 부리기만 합니다. 이런 시절에 마피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살인의 날짜는 바로 각 달의 명절이고 살인 현장에는 언제나 그 명절에 해당하는 물건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런 행동패턴으로 인해 "홀리데이"라는 이름을 얻게되고 마피아 대 보스인 카마인 팔코니와 정의의 사도인 배트맨/고든/덴트를 함께 긴장시키며 심지어는 서로를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살인범은 놀랍게도 어쩌구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입니다. 이 작품에서 하비덴트는 질다 덴트라는 아내가 있는 가난한 검사로 등장하며 하비의 얼굴을 망가뜨리는 것은 피고인인 갱 두목인 살바토레 마로니이며 사건의 장소는 법정안 재판 중이라는 식의 40년대의 오리진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롱할로윈은 투페이스의 탄생에 대해서 만큼은 원작의 설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투페이스의 여인들

투페이스에게는 40년대 아폴로 켄트시절부터 와이프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질다 덴트.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외모의 캐릭터였지만 브루스 웨인과는 달리 일편단심 민들레인 캐릭터입니다. 집하고 법원밖에 모르는 모범생인거죠. 이런 설정은  그의 비극을 심화시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질다 덴트와의 행복한 생활은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시절이 주는 비극을 상징합니다. TAS판에서는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약혼녀가 등장합니다. 그레이스는 나는 그대를 영원히 기다릴 꺼에요형의 순정파 캐릭터로 오리지널의 질다 덴트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범죄자가 된 덴트의 꿈 같은 과거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레이스라는 이름은  TAS의 제작진들이 뜽금 없이 지어낸 이름은 아닙니다. 71년 덴트의 부활 이후 종종 (아마도 제작진들의 착각 때문인 듯하지만 '하비 부인 이름이 G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뭐지? 그레이스라고 하자'는 식으로) 그의 부인은 그레이스라고  불렸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TAS의 제작진들은 이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녀의 이름을 그레이스라고 붙인듯합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와서 여러 만화시리즈가 질다라는 이름을 다시 부활시킵니다. 특히 전술한 롱 할로윈”에서는 질다에게 메인 캐릭터의 역할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그레이스냐 질다냐는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디씨는 캐릭터의 공식명을 질다 그레이스 덴트로 명명하고 현재 이혼중인 것으로 설정해놓았습니다. 따라서 질다와 그레이스는 같은 인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TAS판의 하비덴트에겐 약혼녀가 두 명이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약혼녀로 하비의 몰락을 바라보는 슬픈 존재라면 하비가 전성기 때 사귀다가 서로 틀어져버린 여자는 바로 고담시의 유명한 식물학자인 파멜라 릴리안 아이즐리(포이즌 아이비) 입니다.


덴트와 얽히는 또 다른 여자는 르네 몬토야입니다. TAS에서 최초로 등장 TAS오리지널 캐릭터로 나중에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TAS출신의 르네 몬토야 여사. 저 위풍당당함은 레즈비언의 특징



소속은 고담경찰서 MCU소속 (Major Crimes Unit, 중범죄반)으로 TV판에서는 배트맨이 놓친 할리퀸과 포이즌 아이비를 체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합니다.
고담경찰서 MCU를 다룬 배트맨의 스핀오프인 "고담 센트럴"이라는 연재 시리즈가 있습니다. 르네 몬토야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고담 센트럴의2편인 "Half a Life"에서 르네 몬토야는 아캄에 갇혀있는 투페이스와 친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잠자는 하비덴트를 끄집어 내게 되는데 하비덴트는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하비덴트 쪽의 정신은 그녀를 아껴주고만 싶은데 투페이스 쪽의 불안한 정신은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려버립니다.
일단 그녀를 레즈비언이라고 폭로한 후에 살인 누명을 씌워 체포당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녀를 호송하는 버스를 습격해 그녀를 가로챕니다
"다 사랑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고 고백하는 덴트를 르네는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이렇게 까지 추해지지는 맙시다. 여자가 레즈비언이라면 남자는 깨끗이 포기할 줄 알아야...



르네 몬토야에 대해 두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덴트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에 그녀가 사귀던 케이트 케인이 바로 새로운 배트우먼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 역시 폐암으로 죽어버린 초대 "퀘스쳔" 빅 세이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퀘스쳔"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형사에서 수퍼 히어로로 거듭난 르네 몬토야 TAS판 오리지널 캐릭터 중 가장 굴곡진 삶을 살고 있다.
뒤에 보이는 여전사는 마피아 명가 베르티넬리 가문의 딸, 헬레나 로사 베르티넬리, 일명 헌트레스.




 

아캄 정신병원의 투페이스

그랜트 모리슨과 데이브 맥킨의 걸작 아캄 정신병원에서의 투페이스는 기상 천외한 모습으로 망가집니다. 그의 담당의인 루스 아담스는 일단 그에게 동전을 뺏고 주사위를 줍니다. 그래서 선택 가지수를 6가지로 늘여 놓죠 그리고 다음엔 타롯 카드를 줍니다. 선택가지수가 78개가 됩니다. 결국 투페이스가 78개의 결정 속에서 고민하다가 화장실 가는 것도 결정 못해서 자리에서 오줌을 싸는 모습을 본 배트맨은 담당의에게 당신은 저걸 치료라고 부르냐?”고 화를 냅니다. 작품 맨 마지막 제모습으로 돌아온 투 페이스는 떠나는 배트맨의 뒤에 대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대사를 던집니다. “넌 누가 구해주냐?” (거의 강호밥은 먹고다니냐?”급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부분이죠.)



 

최근 투페이스의 향보

2002년도에 나온 허쉬(Batman:Hush)”라는 대하드라마를 통해 투페이스는 신의 손을 가진 외과 의사 토마스 엘리엇을 만나 얼굴이 회복되고 온전한 하비 덴트의 인격을 되찾게 됩니다. DC의 거대 프로젝트 "인피닛 크라이시스"를 겪으며 배트맨은 고담을 1년 동안 비우게 되는데 이때 고담의 치안을 하비덴트에게 맏길 정도로 그들의 관계는 회복된 듯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배트맨의 부재를 좀 과격하지만 그런대로 훌륭하게 지킨 덴트는 배트맨이 복귀하자 왠지 푸대접 받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주요 악당들이 머리에 총을 두 발씩 맞고 죽는 연쇄 살인이 일어납니다. 왠지 투페이스 냄새가 나는 사건에 배트맨은 하비에게 "너 혹시 또?"라고 다그치지만 하비는 대답하지 않은 채 미리 장치해 놓은 폭발과 함께 사라집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연쇄살인은 투페이스의 짓이 아니라는 겁니다. 배트맨의 불신때문에 하비덴트의 머리 속은 분노와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안좋은 감정의 틈을 타고 내면에 잠들어 있던 투페이스가 다시 깨어나게 됩니다. (파라미르의 병사들에게 얻어터지고 서로 작당하여 프로도를 거미에게 데리고 가는 골룸과 스미골을 생각하시면 쉬울 듯) 수술용 메스와 질산으로 얼굴 반쪽을 도로 뒤집어 다시 투페이스가 된 고담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DC의 특대형 이벤트인 파이널 크라이시스  속에서 돌아온 투페이스의 역할을 기대해 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에서의 투페이스

하비덴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놀란과 영화의 제작진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배트맨 비긴즈에 조커에 대한 힌트가 던져졌던 것 처럼 하비 덴트에 대한 힌트 역시 주어져있습니다. 그건 바로 레이첼 도즈의 상사인 지역검사 핀치가 없어진 컨테이너를 수사하다가 죽는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그 후임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펼쳐지는데 이 선거전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집니다. "암흑기사귀환"에 처음 등장하여 만화 "롱할로윈"의 핵심이 되는 문장 "I believe in Harvey Dent(난 하비덴트를 믿어요)"를 슬로건으로 손쉽게 상대 후보들을 물리친 하비덴트는 고담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백기사의 위치에 당당히 올라서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됩니다.

하비 덴트의 역할은 수많은 고려 대상을 제치고 애론 에크하트에게 돌아갔습니다. 감독이 첫 번째로 의사를 타진한 배우가 맷 데이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초부터 "순수의 타락"의 상징으로서의 하비덴트/투페이스를 그리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동안인 맷데이먼과는 달리 애론 에크하트는 강인하고 전통적인 그야말로 "아폴로"의 느낌이 강한 미남형 마스크의 주인공입니다. 머리가 금발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만화의 설정에 들어맞는 캐스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하비덴트의 이야기는 만화와는 다른 전개를 취합니다. 원작에 비해 대단히 드라마틱한 얼굴이 타버리는 과정이나 배트맨/브루스 웨인과 삼각관계라든지 하는 큰 그림부터 원래의 별명이 내사과의 개자식 "투페이스 하비덴트"라는 점이나 원래 양면이 같은 동전을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 등의 디테일한 점까지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의 하비덴트의 모습은 배트맨의 우군이었다가 우발적 사고로 얼굴을 다치고 범죄의 길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배트맨에 의해 구원을 얻는 40년대 하비덴트(하비켄트)의 이야기의 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80년대 이 후의 주요 악당 중 한명으로서의 투페이스 모습에 익숙해져있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영화 속의 모습이 초라한 조기 퇴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투페이스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배트맨에게 다시 구원받은 "피해자"로 그려지고 있는 그의 초창기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것은 스케어크로우를 타락한 정신과의사로 조커를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로 그리고 라즈 알굴을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을 초월한 "이념"으로 표현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리얼 배트맨"의 작풍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크나이트에서의 하비덴트는 "원칙이 그를 버렸기에 운에게만 기댈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캐릭터"라는 투페이스의 본질을 원작에 대한 존경을 담아 솜씨있게 보여준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하게 처리된 하비덴트의 다음편 출연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과 가설이 난무하고 있는 요즘의 모습은 투페이스 초창기 때 팬들이 끊임없이 투페이스의 부활을 요구하는 모습과 묘하게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처음에 맷데이먼과 계약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영화 두 편 출연을 한 꺼번에 해야만 하는데 대한 부담감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투페이스는 놀란판 배트맨의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출연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점이 세 번째 영화에서의 투페이스의 부활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박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by 액화철인 | 2008/08/15 01:54 | 히어로물이라는 쾌락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0)

DC악인열전 - 조커編




배트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숙적(Nemesis)은 누구입니까?

 

미국 히어로물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악당캐릭터 진용을 적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트맨이지만
그 쟁쟁한 악당들 가운데서도 조커는 으뜸가는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조커의 기믹은 한마디로 미친광대”라 할 수 있습니다. 백화된 피부, 녹색 머리카락, 지워지지 않는 붉은 입술, 웃는 모습으로 고정된 안면근육,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보라색 정장과 액세서리. 외모의 변형은 화학약품에 빠지는 사고 때문이지만 그의 기괴한 사고체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대체로 사고 전 부터 원래 사이코패스였다는 주장과 사고 때문이라는 주장 두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조커의 특징적인 무기는 바로 조커 베놈(조커독)이라는 일종의 화학약품입니다. 이 약품에 노출된 희생자는 웃는 모습으로 죽습니다. 미치게 한다거나 얼려버린다거나 두려움에 떨게한다거나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죽여 버리는 즉사성의 살인무기로 조커의 살인마로서의 성격을 반영합니다.  (물론 후일 에피소드에 따라 그 독성은 조절되지만 기본적으로 조커베놈은 맹독입니다)
작가들이 조커를 만들면서 "웃으면서 죽는 독"이라는 기믹을 넣을 때는 밑도 끝도 없는 일종의 "도시 전설"을 참고 했다고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기믹 뒤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파상풍에 걸리거나 맹독(특히 스트리키네 류)에 중독되면 얼굴이 웃는 모습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증상이 발생합니다. "리수스 사르도니쿠스"(우리말로 경소, 경련웃음이라는 뜻)라는 거창한 의학용어까지 가지고 있는 증상입니다. 한마디로 조커베놈은 급속의 파상풍균 혹은 파상풍유발물질 내지는 스트리키네 성분의 독극물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조커의 기믹은 범죄현장에 그의 시그니쳐인 조커가 그려진 트럼프 카드를 남겨 놓는 것입니다. 사실 초창기 부터 있었던 기믹이지만 워낙 화려한 범죄를 저지르다 보니 작가들도 카드 놓는 걸 종종 까먹고 최근에는 잘 쓰여지지 않아서 잊혀거 아니냐는 의심도 들었습니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의 에필로그 부분에 인상적으로 사용됩니다.

조커의 별명은 바로 Clown Prince of Crime (범죄계의 광대 왕자)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Crown Prince(왕세자)라는 말을 가지고 만든 말 장난입니다. 고담시의 "범죄의 총아"로 꼽히는 인물답게
조커는 배트맨의 가장 큰 숙적입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배트맨은 일단 조커부터 의심하고 조커는 입버릇처럼 배트맨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은 자는 자기 자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는 다른 악당이 배트맨을 무찌를 것 같으면 훼방을 놓기도 하고 스스로 배트맨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아도 "너 없으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사니"라는 식으로 살려주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커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단 한가지,  배트맨과 함께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둘의 관계는 아주 기괴하게 뒤틀려버린 "놀이터 우정"처럼 보입니다. 한마디로 조커는 배트맨 때문에 존재하는 겁니다. 배트맨에 대한 조커의 광적인 집착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배트맨 때문에 화학약품통에 빠지게 되었다는 개인적 원한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배트맨에 대한 조커의 기묘한 동지의식 (코스츔 변태로서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배트맨의 역할이 본질적으로 탐정이라면 조커의 역할은 연쇄살인마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1940년대 첫 등장 후 초기 12편 정도의 에피소드에서 조커는 40명에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활약상을 보여줍니다. 19세기 실존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베르히트 作 “서푼짜리 오페라칼잡이 맥이라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살인마 조커의 강렬한 존재감은 초기 배트맨 시리즈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했고 시리즈 초기 부터 배트맨의 가장 대표적 숙적의 위치로 올라서도록 했습니다.



정체에 얽힌 미스테리
조커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그의 중요성이나 위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의 공식적인 정체는 미상으로 남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1951디텍티브 코믹 168는 데뷔 12년이 지나서야 최초로 조커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조커의 정체는"레드 후드"라는 복면절도범이라는 것이 새롭게 소개된 조커의 기원이었습니다. 
조커가 되기 전, "레드 후드"는 머리를 통째로 가리는 빨간 복면을 쓰고 부하들을 거느리며 범죄를 일삼는 소규모 절도단의 보스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화학약품 공장절도 시도 때 배트맨과 대치하게 되고 결국 그 상황을 벗어나려다 화학약품통에 빠지게 되어 결국 조커로 다시 탄생한다는 전통적인 "조커의 오리진"설정은 이 에피소드에서 최초로 정립됩니다만 조커가 누구냐라는, 정작 중요한 "조커의  정체"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DC는 교묘하게도 조커라는 가면 아래 또 다른 가면을 쓴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꼼수"를 쓴 셈이 된거죠. 즉 조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레드 후드"라는 답을 내리면서 "레드 후드의 정체는 누구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이 꼬리를 무는 "로스트" 시즌 맺기 같은 짓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커/레드후드의 관계를 일종의 기믹으로 활용한 6인치 액션피겨

 

1988년에 발표된 걸작 알란무어의 걸작 킬링 조크는 이런 고전적인 설정을 넘어서 레드후드였던 그 남자의 정체를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합니다. 이 작품의 스토리라인은 조커가 고든 서장을 미치게 하려는 계획과 조커 본인의 회상,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됩니다. 그의 회상 속에서는 화학회사의 엔지니어였지만 꿈은 코미디언이었던 한 남자가 소개됩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까지 그만두고 노력하지만 워낙 특이한 유머감각과 재능부족으로 인해 실패하고 맙니다. 임신한 아내까지 딸린 채로 생계가 막막해져 버린 상황에서 레드후드가 이끄는 조직의 조직원들의 유혹에 빠져 전 직장인 화학약품공장을 털 범죄를 계획합니다.

레드후드라는 범죄자는 매우 신출귀몰한 인물입니다. 매번 경찰이 현장에서 아슬아슬하게 레드후드를 붙잡아 가면을 벗겨보면 엉뚱한 녀석이 들어있곤 하는 식의 "바꿔치기 탈출"의 대가입니다. 그러나 사실 레드후드는 이 조직원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었습니다. 조직원들은 훔치려는 시설의 관계자/내부직원을 유혹해 낸 다음 이용해 먹을만큼 이용해먹고 마지막엔 "레드후드"복장을 입혀 놓고 누명을 다 씌워 놓은 채로 남겨놓고 사라지는 식의 수법을 구사했던 거죠. 결국 이 실패한 코미디언 역시 그들의 수법에 걸려들어 레드 후드복장을 한채로 범죄현장에서 배트맨과 마주치게 되고 화학약품 속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한마디로 조커의 정체는 "레드 후드"가 아니라 화학엔지니어 출신의 실패한 코미디언,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타이밍에 있었던 지독히도 운 나쁜 사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구한 이야기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회상의 끝 무렵, 조커는 과거라는 게 원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오늘은 이렇게 기억할 수도 있고 내일은 또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고 내 과거가 선택가능한 객관식인 쪽이 낫다 어쩌구 하는 대사를 던짐으로 드디어 조커의 정체가 드러나는 건가!이러면서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던 독자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매우 조커다운 행동을 저지릅니다. 다시 말 해 이 버전 역시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온지 20년이 가깝지만 아직까지도 이제까지 나온 조커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킬링 조크"는 다음해 나온 팀버튼의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팀버튼은 특수한 난독증이 있어서 만화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최초로 정독한 만화책, 정독할 수 있을만큼 이해가 잘되고 맘에들었던 만화책이 바로 "킬링 조크"라 밝힌 바 있습니다)




"레드후드설"을 다룬 두 작품 "Detective Comics 168호"와 "킬링 조크"
"레드후드"의 정체에 대해 독자들에게 대담하게 묻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표지만 본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게 조커 이야기인지 모른채 책을 열게된다.



조커에 정체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진 설은 잭 네이피어입니다. 특별히 우수해서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고 만화책에 비해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매체인 “극장영화로 소개 되었기 때문입니다. 1989년 팀버튼이 만든 배트맨은 잭 네이피어라는 범죄자를  배트맨 부모의 원수이자 조커의 정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여러가지 면에서 팬들의 원성을 사게 된 무지막지한 설정파괴였습니다. 오랜새월 만화가 전통을 가지고 구축해 놓은  배트맨 대 조커라는 두 싸이코의 이념적 대립”이라는 수준높은 갈등을 부모의 원수라는 신파극으로 바꿔 놓는 만행인 셈이었죠. 영화자체의 완성도나 예술성은 뛰어났고 일반대중 사이에 배트맨을 알리는 커다란 공헌을 한 작품이었지만 원작의 설정과의 일치라는 점에 있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잭 니콜슨이었으나
그의 조커는 원작의 조커에서 영감만을 얻어 창조된 완전히 다른 캐릭터




조커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 것은 DC의 일종의 불문율 식으로 지켜져 오던 법칙이었습니다. 51년엔 "레드후드"라는 또 다른 닉네임인 만들어 줌으로써, 그리고 88년의 "킬링조크"에선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도록 스토리 구성을 함으로써 작가들은 그의 이름을 철저히 감춘 바 있습니다. 영화의 영향이나 파급력때문인지 몰라도 89년 팀버튼 판 배트맨 이후로 조커의 전신을 이라고 부르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배트맨 시리즈인 Gotham Knights중 2004년에 4회 분량으로 발매된 Pushback이라는 스토리에선 킬링조크에서 다뤄진 슬픈 코미디언의 이야기가 리들러의 회상 속에 나옵니다. 이 회상 속에서 조커는 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영화판 때문에 한 번 벌어진 허탈한 사고일까요? 

2007 2월 DC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 시작된
Batman: Confidential”이라는 새 시리즈는 배트맨의 초창기를 다룹니다.
현재 두번째 스토리아크인 "
Lovers and Madmen”에는 너무 완벽해서 세상에 어려운일이 없기에 우울한 천재범죄자인 "잭"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겹기만한 천재범죄자가 조커의 정체라는 이야기는 운나쁜 코미디언이 조커의 정체라고 이야기한 "킬링조크"의 스토리라인과는 정면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조커가 되기 전에 이미 심각한 수준의 사이코패스였다는 설정과 "잭"이 조커로 변하게 된 사건 뒤에 배트맨의 의도가 깊게 관여된 점 등을 보자면 오히려 영화판의 "잭 네이피어"쪽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말로 "Lovers and Madmen"의 연재가 끝났고 영화 개봉시점에 맞춰 에피소드를 묶은 TPB가 발간 될 쯤에 "조커=잭"설에 대한 DC의 입장이 밝혀질 듯 합니다. 하지만 공식 사이트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DC는 조커의 과거가 역시 선택지가 있는 객관식으로 남겨 놓고 싶어하는 듯합니다.


객관식 과거를 가진 살인마, 조커



사실 잭이라는 이름은 조커에게 참 어울립니다. 조커를 만드는데 모델이 된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영향도 엿보이고우리 나라로 치면 철수쯤 되는 흔한 이름이라는 사실이 주는 상징성 때문일 수도 있겠죠철수 영희라는 영어 표현이 Jack and Jill, 그리고 파이트 클럽의 이름 모를 주인공 역시 스스로를 Jack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마디로 너도 나도 조커라는 조커의 꿈을 반영한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TV애니메이션판(TAS)은 직접적으로 조커의 정체에 대해 다루지는 않았지만 TAS의 극장판이라 할 수 있는 걸작 장편 애니메이션인 "Mask of Phantasm"에서 조커는 마피아 보스 살바토레 발레스트라의 운전사/행동대원 출신인 걸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악행의 기록
조커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들 중 배트맨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업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배트걸의 은퇴 - 고든 서장의 조카이자 수양딸인 바바라 고든이 한창 배트걸로 활동할 무렵 조커는 고든 서장을 미치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행동의 일환으로 그녀의 척추에 총을 쏩니다. 결국 그녀는 하반신 마비에 걸려 배트걸의 이름을 버려야만 하게 됩니다. 이 후 바바라 고든은 그녀의 천재적인 컴퓨터 스킬과 두뇌를 이용하여 수퍼히어로들을 위한 정보 브로커의 역할을 하는 "오라클"로 거듭나게 됩니다.

바바라 고든의 박쥐날개를 꺾은 것은 바로 조커였다




2. 사라 에센 고든의 살해 - 고담시가 지진으로 작살이 난 후의 혼란을 그린 에피소드 "No Man's Land"에서 조커는 고든 서장의 두 번 째 부인이자 고담경찰의 동료인 사라 에센의 머리에 총을 쏴 죽입니다.

사라 에센 형사. "배트맨: 원년"에서 고든 서장의 바람상대로 시작해서, 
그의 두 번째 와이프가 되는 사랑의 결실을 맺지만
결국 조커에 의해 순직힌다.





3.인저스티스 리그의 설립 - 수퍼맨의 숙적 렉스 루터와 함께 저스티스 리그에 맞서는 단체를 만듭니다. 대놓고 싸워보자는 네이밍센스는 바로 조커의 특성 그대로 입니다.



4. "로빈"의 살해 - 조커와 배트맨의 악연이 그야말로 "열매"를 맺는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 코믹스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상징적인 일이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부활이라든지 변절이라든지 하는 복잡하고도 풍부한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발점도 되었습니다. 

사실 로빈을 죽인 주체는 "조커"가 아니라 바로 DC의 독자들이었습니다. 80년대 초 ,DC는 초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을 "나이트윙"이라는 성인 수퍼히어로로 성장시키는 기획을 하면서 초대 로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2대 로빈 제이슨 토드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냅니다.
로빈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제이슨 토드는 그야말로 "딕그레이슨 2"로 기획되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서커스 키드라는 점 부터 시작해서 금발로 설정되었던 머리카락도 로빈이 되면서 부터 흑발로 염색하는 등 한 마디로 이름만 바뀐 "딕그레이슨"이었습니다.

고담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나이트윙"으로 활약하는 초대 로빈에 비해 거의 자리채우기 정도만 하고 있는 제이슨 토드의 존재가 팬들에게는 그다지 임팩트를 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1988년 "Death in the family" 총4회 중 2회의 마지막 부분, 함정에 빠진 로빈을 조커가 쇠장도리로 죽도록 패고는 폭탄이 설치된 창고에 가둡니다. 그리고 그 창고가 폭발해 버립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과연 로빈은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유료번호로 원하는 결과에 한 표를 던져 주세요. 많이 나온 의견이 다음 호에 반영됩니다"라는 황당한 독자 설문조사를 던져놓습니다.

이 기획이 로빈을 중심으로 진행된 숨은 의도는 프로모션의 흥미성을 높이기 위해 제법 잘알려진 캐릭터를 활용한다는 것과 사람들이 "죽이지 말아주세요"라고 탄원 전화를 할만큼 사랑받는 캐릭터를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차피 죽이지 않겠지만 팬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살렸다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참여의 재미를 주고자 하는 기획이었던 것이죠. "설마 로빈을 죽이자고 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던 DC스태프는 절망적인 결과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로빈을 상대로 "하프라이프"를 즐기고 계신 우리의 조선생
"삐루"쓰시는 폼이 프리맨 선생 못지 않으심다.



집계기간인 3일동안 무려 10,00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고 결과는 5,343표 대 5,271이라는 백 몇표 차이, 그야말로 박빙으로 "로빈은 죽는다"라는 쪽으로 결정이 나게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투표는 정말 바보같은 짓이라는 거죠. 2004년도 켈로그 파맛시리얼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코맛시리얼 대 파맛시리얼"이라는 짜고 치는 것 같은 설문 조사도 "설마 파맛을 만들겠어?"라는 엉뚱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88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로빈을 죽이냐?"라고 찬성표를 던졌지만 "진짜 로빈을 죽이는지 볼까?"라는 심정으로 표를 던진 사람들도 많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시대는 "파맛"과 "로빈의 죽음"을 선택했다.




결과를 집계한 DC는 투표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었지만 충격적인 투표결과를 "현재의 로빈은 인기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해버리고 투표결과를 정직하게 공개한 후 배트맨이 폭사당한 로빈의 시신을 부여안고 우는 충격의 3회를 내보내게 됩니다.




냉소주의가 미국만화를 죽인 바로 그 충격의 현장.



이 결과에 대해 진짜 DC를 아끼던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죠. 진짜 캐릭터에 대해 애착을 갖는 사람들의 의견보다 그저 재미로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세계를 망가뜨린 셈이니까요. 결국 이러한 불만 수렴은 후일 제이슨 토드를 드래곤볼을 모아 되살려내는 기폭제가 됩니다만 되살아난 제이슨은 자신의 자리가 이미 팀 드레이크라는 3대 로빈(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뛰어나고 개성있는)에 의해 채워졌고, 배트맨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악역화되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로빈편에서 다루겠습니다만)분노한 제이슨이 스스로를 "레드 후드"로 부르며 붉은 가면을 쓰고 다는 사실은 조커와의 관계에서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내가 죽었는데 잘먹고 잘사는 니들이 밉다.
날 죽인 조커를 살려 놓는 배트맨도 밉다.
나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3대를 들이냐?"
되살아난 보이원더는 그렇게 비뚤어져 버린다.






조커 탄생의 비화
1940년, 배트맨이 데뷔1년만에 Detective Comics라는 포맷을 넘어 스스로의 독자적인 만화시리즈로 발전되는 그 순간, 그 역사적인 Batman #1 (계간 배트맨 통권1호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에는 후일 배트맨에게 영향을 끼칠 두 캐릭터가 소개가 됩니다. 하나는 셀리나 카일, 후일 캣우먼으로 불리게 되는 여도적이고 (여기서는 "더 캣"이라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조커였습니다. "Detective Comics"라는 "월간 앤솔로지(여러 캐릭터 이야기가 한꺼번에 들어 있는 형식의 만화잡지 포맷)"에서 배트맨이 상대했던 그 동안의 악당들은 대부분 마피아들이나 "미친 과학자"류의 캐릭터였습니다. 배트맨 독립시리즈의 출범과 함께 DC는 당시 데뷔 10년차를 바라보는 유명한 시리즈인 "딕 트레이시"의 성공요인 중 하나였던 "화려한 악당 캐릭터 로스터"를 짜주기 시작합니다. 조커는 그렇게 출발하게됩니다. 

조커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작품은 1928년에 만들어진 흑백무성영화 "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s)""입니다. 독일 표현주의 영상작가들의 헐리우드 진출이 활발했었던 1920년대 중후반, 유니버설 호러 클래식의 틀을 정립한 시네아스트 파울 레니는 "웃는 남자"라는 빅토르 위고의 생애 최고의 걸작을 영화화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릴적 인신매매단에 팔려 기괴한 수술을 받고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입구조가 고정되어버린 끔찍한 운명의 소유자 "그윈플레인"입니다. 영화에선 이 역할을 "칼리가리 박사의 옷장"로 유명한 콘라드 바이트가 맡았는데 실제로 외과적으로 고정되어버린 듯한 그의 끔찍한 미소는 예술영화를 즐겨보았던 배트맨의 스토리작가인 빌 핑거의 머리 속에 각인 되었고 자연스럽게 조커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콘라드 바이트가 연기한 "그윈플레인"의 인상적인 미소가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1928년작 "웃는 남자"의 포스터





작년 다크나이트 제작 발표 당시 많은 사람들을 낚았던 조커 예상도의 원본사진 역시
1928년 "웃는 남자"에서의 콘라드 바이트의 프로모션용 초상사진이다.



조커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배트맨을 만들어낸 빌 핑거, 밥 케인 듀오 그리고 당시 밥 케인의 어시스턴트로 만화계에 입문한 잉커(inker, 펜슬러의 밑그림을 잉크로 트레이스하는 사람)인 제리 로빈슨 이었습니다. 이 셋 중에 누가 먼저 조커를 생각해 내었는가에 대해서 나중에 세명 아니 핑거/케인 듀오와 로빈슨 양자가 추하게 물고 뜯는 모습을 보여줍니다만 대충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케인: 빌이 콘라드 바이트의 사진을 들고 와서 이게 바로 "조커"다 라고 먼저 말했다.
제리 로빈슨: 트럼프의 조커카드를 바탕으로 내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내가 만든 것이다. 빌은 내 스케치를 보고 "콘라드 바이트 같네"라고 이야기 했을 뿐이다



미소의 비밀

어느 쪽의 이야기가 맞든 초창기 조커의 표정은 콘라드 바이트의 걸출한 연기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 과장되고 기괴한 미소가 조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지만 재밌는 것은 조커의 웃음이라는 현상의 본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조커의 웃음이 물리적으로 고정된 것인가 아니면 심리적으로 고정된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자주 짓는 표정에 불과한가라는 것에 대해 잘못된 선입관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죠. 만약 다음과 같은 퀴즈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다음 문장은 참인가 거짓인가?
 - 조커는 화학약품에 빠져서 얼굴이 미소짓는 채로 고정되어 버렸다
    ⓐ  참              
    ⓑ  거짓

  








정답은 "거짓"입니다. 원래 만화판의 조커의 미소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조커는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주로 웃는 모습을 하고있을 때가 많을 뿐이죠. TAS에서도 "웃는 채 고정된 입" 같은 것은 아예 설정에서 빠진 듯 다양한 표정의 조커를 만날 수 있습니다. 

TAS의 조커는 웃고 싶을 때만 웃는다



조커의 미소가 고정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입니다만 여기서의 원인도 화햑약품 때문이 아니라 총상을 치료하기 위한 "성형수술" 때문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팀버튼의 조커에서 볼 수있는 "수술에 의한 안면기형"이라는 요소는 빅토르 위고의 "웃는남자"에서 전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만화판의 조커를 뛰어넘어 조커의 프로토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그윈플레인"을 참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물론 팀 버튼 이전에도 조커의 미소가 고정된 것이라는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 오해는 조커의 무기인 조커 베놈의 특징에서 기인합니다. 사람이 웃는 모습으로 고정된 채 죽어버린다라는 조커베놈의 효과에서 "고정된 미소"라는 이미지가 나왔고 그것이 조커에게 씌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조커가 스스로 조커베놈의 영향으로 고정된 미소를 가지고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최근에 그랜트 모리슨은 성형수술 실패로 미소가 고정된다는 모티브를 사용해서 조커의 모습을 바꾸는 시도를 합니다. 2006년 "배트맨 655호"에서 조커는 배트맨을 사칭한 경찰에게 얼굴에 총을 맞는 변을 당합니다. 그 덕분에 철저한 안면복구 수술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아캄 정신병원에서 성형수술이 끝난 채로 깨어납니다. 수술의 부작용으로 입이 웃는 모습으로 고정되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조커는 서서히 부활을 꿈꾸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의 새로운 조커의 이미지는 "고로시야 이치"에서의 가키하라를 연상시킬 정도로 기괴한 모습입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작품 "고로시야 이치"의 찢어진 입의 모티브(좌)는 
코믹스판 조커의 새로운 모습(중) 그리고 히쓰 레저의 조커의 모습(우)과도 연관성을 가진다
이런 귀부터 귀까지 찢어진 입은 "글래스고 스마일"(혹은 첼시 스마일)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통 입술 끝에 살짝 칼집을 내준 후 주먹이나 발로 복부 혹은 사타구니를 가격하여
자연스럽게 찢어지게 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영화 "갱스오브뉴욕"에도 이런 상처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나이
조커는 원래 2회 짜리 악당이었습니다. 인상적인 악당을 만들어줬지만 "시적정의(Poetic Justice)"라 할까요. 예고살인 같은 강도 높은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을 계속 살려두는 데에 대해 제작진들은 일종의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던 거죠. 그런데 조커의 죽음이 그려진 2화의 맨 마지막에는 대단히 조악하게 그려진 몇 컷이 추가되어 있는데 그 컷은 사실은 조커가 살아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휘트니 엘스워쓰는 조커의 가능성을 보고 죽은 것 같지만 시체는 못찾는 식으로 조커를 살려둡니다.
"죽은줄 알았더니 시체없더라"의 패턴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극악무도한 살인마에게 잔인한 최후를 줘야하는 도덕적 의무감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 갈등의 결과인 이런 패턴은 조커의 무서움에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불멸성을 더하는 효과를 주게 됩니다. 하지만 조커는 그의 근원적 "엽기성"때문에 시대에 의해 매장당하게 됩니다.

만화의 과격한 표현이 지탄을 받게 된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미국 만화잡지협회(CMAA)는 1954년 자체검열기준이라 할 수 있는 "코믹스 코드"를 만들어 적용하기시작합니다. 이로서 만화의 황금시대는 끝나고 흔히 은시대(Silver Age)라 불리는 비교적 얌전한 시기가 도래합니다. 하는 짓마다 19금인 캐릭터인 조커에게 "은시대"는 가혹했습니다. 조커는 장난꾸러기/좀도둑 정도로 전락해 버리고맙니다. 배트맨이 부러워서 자기도 무기 벨트(펀샵에서 구입한 듯한 황당한 무기들로 가득찬)를 만들고 그걸 바꿔치기 하는 무슨 시트콤 같은 전개에 이르면 이건 조커가 아니라 크레용신짱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배트맨 역시 잡법이나 잡으러 다니고 게이가 아니라는 걸 "억지로" 증명하기 위해 "강제로" 배트우먼과 연애질이나 하는 상황에서 조커의 설자리는 더 이상 없어보였습니다. 색깔을 잃어버린 배트맨은 처절한 외면을 받았고 리즈의 판매량이 바닥을 친 1964년, DC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아예 죽여 버릴까 하는 고민까지 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 배트맨을 이끌게 된 만화계의 전설 줄리어스 슈워츠는 배트맨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배트맨 진용의 몇몇의 캐릭터들을 퇴출시키게 됩니다. 

배트우먼이나 에이스, 배트마이트 같은 개그성 캐릭터, 면피성 캐릭터들이  슈워츠 시대에 퇴출된 대표적 캐릭터 였습니다. 조커는 공식적 퇴출의 길을 면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코믹스 시리즈에서 모습을 감춰버립니다. 이렇게 만화지면에서 사라진 조커는 가장 굴욕적인 모습으로 의외의 매체를 통해 재등장하게 됩니다.

1966년부터 시작된 TV판 "배트맨"은 사실 일부 배트맨 골수 팬들에겐 "묻어두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