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8일
V for Vendetta : 정치성이 퇴색한 것은 시대일 뿐...

알콩당콩 사이좋게 혁명해보세
E for Empire
솔직히 매트릭스 레볼루션을 보고 느낀 배신감은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보들리야르를 그릇으로 삼아 네그리와 하트적 주장을 그것도 매우 선동적인 톤으로 만들어낸다는 것. 결과적으로 도상학적인 지적유희를 미끼 삼아서 “선동의 낚시”를 감행한 것이었죠. 결국 1편과 2편의 모든 은유와 상징에 대한 팬들의 해석작업은 결국엔 삽질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낚시의 핵이 되는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과 “다중”이라는 책을 통해 주장은 한 마디로 현재는 제국주의 보다 더 음흉하고 무시무시한 “제국”이라는 “자본주의”의 필요로 인해 형성된 눈에 보이지 않는 통치체계에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통치(사실은 사육)를 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중”이란 집단으로서의 의식이 각성되면 제국쯤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데 “제국”의 통치 메카니즘이 정교해서 과연 그런 일이 발생할까는 모르겠다쯤입니다. (내 멋대로 축약)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매트릭스는 이러한 주장의 정치적 우화에 불과했다 혹은 주제적인 짜임새와 표현적 짜임새 그리고 설정상의 짜임새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융합체가 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제작자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고 남아있던 것은 결국엔 “다중”의 깨임을 선동하는 반세계화 프로파간다라는 본연의 목적만이었다 라는 식이죠.
M for Matrix
매트릭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좋든 싫든 그 범주 내에서 비교되고 분석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사실 제작진은 별로 반성 없이 같은 주장을 다른 어휘를 가지고 반복합니다.
매트릭스에서 핵심적인 대사는 1편에 나오는 모피어스의 “사람들은 지금이 1999년이라고 믿고 있지만”일지도 모릅니다. 매트릭스가 “지금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사실은 지금이 아닌 미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지금 이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미국이 아닌 영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영화가 말하고 있는 주장은 똑같이 “이 두 이야기는 지금 현재 이곳 이야기거든”입니다.
F for Fear
이 영화에서 너무나 친절하게, 마치 007에서 악당이 죽어가기 전에 지구정복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디어에 의한 공포정치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가에 대해 존 허트 선생의 대사와 함께 몽타쥬로 처리되어 보여주는 시퀀스가 있습니다. 현재미국의 문제를 다룬 “볼링포콜럼바인”의 비슷한 시퀀스와의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네그리의 “제국”은 1984, 이퀼리브리엄, 그리고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대놓고 철권을 휘두르지 않습니다만 그 지배체계는 실로 교묘해서 구성원 스스로가 스스로를 제어하고 감금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지배체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이 공포라는 것은 박통과 오공을 겪은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에서 싸이퍼가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은 미디어의 공포에 사육 당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브이포벤데타에선 이런 사육의 작동과정을 적나라하게 나열하면서 보여줍니다. 상황설정은 극단적이나 결국 벌어지는 일은 현실과 매한가지 입니다. 결국 이 시점에서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D for Doubts
원작에서 주장하는 V의 이상향은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하는 나라”입니다. 원작에 마지막에 보여지던 장면들 역시 그다지 희망적인 모습은 아니었죠. 원작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네그리의 주장도 그렇고 결국 “풍요롭게 잘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이 “풍요롭게 잘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니까. 다시 말하자면 “제국”이 심어준 그런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으니까. 사실 이 영화는 그 목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지향적이고 집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짜증나는 세뇌용 교재 같기도 해요. 테러리즘에 대한 정당성 부여 조차도 “제국”에 대한 의심야기라는 목적에 비하면 그저 내러티브를 움직이는 수단에 불과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영화 내에서 이상하리만치 “대중”에 대한 해석이 결여가 되어 있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그건 마치 옛날 일본 RPG에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인공과 극동일시를 느끼도록 하는 배려의 차원으로 주인공으로 부터 대사를 완전히 박탈해 버린 장치나 웃어야 하는 곳을 찝어서 표시하기 위해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함깨 방영하는 미국시트콤의 방관자적이고 풍경적인 대중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그들은 영화 내내 티비 앞에서 벙찐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마지막에 가면을 쓰고 시위합니다. 마치 거울이나 신분증에 본인 사진 붙이는 란 같습니다. 관객에게 여기에 자신의 얼굴을 붙이세요 이런 식 말이죠.
G for Gaps
원작이 등장한 80년대와 현재의 이슈는 무척이나 다릅니다. 다행히도 제작진은 원작의 완벽재현 이런 건 일찌감치 던져 버린 채 자신들이 믿고 있는 정치적 주장을 포장하기 위해 원작을 이용합니다. 전후 영국사회라는 가상 공간은 현재 미국의 미디어 독재의 은유로 이용되고 “다중”의 의식을 깨우는 촉매의 역할로서의 V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가이 폭스마스크는 무슨 플래시몹 준비물처럼 쓰입니다. 덕분에 역사 왜곡이 한가지 발생합니다.
가이 폭스라는 이 친구, 무슨 거창한 신념으로 권력에 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 카톨릭 기득권 세력의 옹호자 입니다. 좀 심한 비유 같지만 한나라당 실권 이후, “뉴라이트” 아저씨 하나가 집값 떨어지는 게 열불이 나서 국회와 인근의 증권가 빌딩들을 통째로 폭파시키려다 잡혔다고 생각해봅시다. 이거 순수하게 반독재 영웅으로 부르기 뭐하지 않습니까? 영화 오프닝에서 가이폭스가 무슨 독립투사인 것처럼 그려지는 걸 보는 건 그래서 조금 아이러니컬 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죽음 이후까지 오래 살아남는 신념 어쩌구 하는 나레이션 역시 닭살입니다.
가이폭스데이의 절정이 가이폭스의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것으로 끝나는 문화적 배경을 생각하면 원작에서도 V가 가이 폭스 마스크를 쓰는 설정은 일종의 악취미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거기서 끝납니다. 영국의 펑크밴드들이 히틀러의 이미지나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따다 쓴 것과 비슷한 쇼맨쉽인거죠.
이런 낯 뜨거운 설정변경들은 원작이 던져주는 헤게모니의 성격에 대한 양비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척이나 냉소적인 논의('그놈이나 이놈이나' 라는, 대처시대의 영국에 걸맞는)를 요즘 이야기로 바꿔 놓기 위한 것들입니다. 각색 참 잘했다고 볼 수 있죠.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비라는 캐릭터에 집중됩니다. 한마디로 시작과 끝이 완전히 다릅니다. 원작에서 처음 이비가 핑거맨들에게 걸린 이유는 이비가 성적 호객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윤락여성 지망생이었다는 거죠. V에게 구출 당하고 그리고 V를 떠나고 나서 다른 남자와 동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비는 V2가 됩니다. 의사당이 날라가는 순간 죽은 V를 대신해 V의 차림을 하고 군중들 앞에 등장하는 거죠. 창녀에서 투사라는 오래된 로맨스물의 전형이 되는 이 변화는 주인공이 환골탈태하는 신화적 영웅담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멍청한 대중을 위한 사기극"같은 의미도 겹칩니다. 그래서 불속에서 다시 건설되는 희망이라는 쾌감과 "원래 대중선동이 그런거 아니겠어?라는 냉소가 묘하게 어우려집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비는 어떤가요? 여기서 이비는 사뭇 "성녀"입니다. 검문은 친구만나러가다가 겪고, 동거하는 남자는 게이고… 한 마디로 영화 내내 이비는 한번도 안 합니다. 하면 죽는 슬래셔 무비의 공식을 보면 알겠지만 아직도 영화는 보수적 매체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맨얼굴로 마치 "아베 마리아"같은 표정을 하고 혁명을 맞이합니다.
R for Romance
원작과 차이점 중 가장 당혹감이 느껴졌던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원작에선 V와 이비의 로맨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긴 합니다. 근데 어디 존재했었느냐 하면 "컷과 컷 사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작가의 무책임한 암시와 독자의 제멋대로 상상에 존재하는 거죠. 근데 왜 갑자기 이렇게 분명한 장미색 전개는? 파시스트 선동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혹은 의인화된 강령)에 대한 미끼 혹은 보상으로서의 역할로 그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혁명하면 여자생겨, 나탈리포트만 같은" 물론 이건 심증 뿐인이야기입니다, 휘리릭)
원작의 사제관계에 유사연인관계를 진하게 입혀버린 것은 나쁘게 이야기하면 논점을 흐리는 것이고 좋게 이야기 하면 영화에 상업성을 더합니다.(모든 사제관계는 기본적으로 유사연인관계라는 무책임하지만 전국의 남자선생님들이 환영할 수 있는 발언은 삭제) 이런 혐의는 맨 처음과 끝을 이루는 '세상을 바꾸는 신념과 신념 뒤의 한 인간을 사랑하는 고통'에 대한 이비의 신파적 나레이션으로 더욱 짙어집니다. 그 나레이션은 이 영화의 위험성을 희석시키는 듯한 당의정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제는 “내가 사랑한 테러리스트”였단 말이냐는 거죠.
그러나 그건 가장 안전하면서도 효과적 방법입니다. 제작자들에게는 “이건 사랑 이야기일 뿐”이라는 변명의 우산을 제공하고 관객들에게는 혁명이 주는 파괴의 쾌감 극대화 시켜서 제공할 수 있는 식의 구성이랄까요. 옥보단의 맨 끝에 초췌해진 주인공이 “색욕의 허무함에 대해 깨닫고 중이 되었다. 아아 성은 허무한 것” 이래도 결국 기억나는 것은 두 여인네가 피리를 사이에 두고 엉덩이 맞추던 장면 이라는 이야기죠. 아주 속보이지만 현명한 책임 회피 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운데 토막이 위험할수록 말이죠.
P for Propaganda
이 영화와 종종 비교되는 파이트클럽이나 시계태엽오렌지를 볼작시면 섬뜩하리만치 분명한 의도가 보입니다. 권력에 대한 냉소적인 보고서 입니다. 전자는 소비지향의 자본주의이고 후자는 권력에 의한 대중의 강제적 계몽입니다. 브이포벤데타에서 다뤄지는 건 네그리/하트 식의 “제국”의 징후, “미디어 독재”라든지 미셀 푸코가 말하는 “생체정부”같은 겁니다. 개개인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따른다고 믿게 하면서도 사실은 일관된 행동패턴을 이끌어내는 그런 효과적인 독재에 저항하는 선동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선동은 위의 두 작품과는 다르게 적극적이지 못하고 아님 말고 식의 입장을 끝까지 견지합니다. 오히려 영화의 그런 점은 (제작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액자와도 같은 외피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영화가 주장하는 “제국의 나팔수”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케이스로 스스로를 만들어버립니다. 쉽게 말해서 “제국”에 대한 공포나 제국의 전복에 대한 통쾌감 역시 “제국”을 유지하고 “다중”의 눈을 가리는 도구인 “미디어”에 의한 표현이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현명하게도 그런 시대를 이해하고 자신에 대한 주제파악까지 끝내놓고 구석에서 찌그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그 구석이 사실은 (돌맞기 힘든)명당이라는 점이지만 말이죠.
추가1: 오해가 있을까봐 네그리/하트의 문제의 서적은 매트릭스와 거의 동시에 나왔습니다. 이런 걸 싱크로시티라고 합니다... ^^ 둘의 주장이 일치한듯 하다는 이야기지 워쇼스키가 참조했다. 숭배한다 이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혹시 그럴 수도) 근데 매트릭스 땐 그런 느낌이 안들었는데 혹시 개봉 후 읽어보고 나서 "아자 이거다.. 이거 제대로 배껴보자" 이러면서 리로디드하고 레볼루션을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진짜 나쁜 놈들이고...
추가2: 확실히 이 영화에 대한 재미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정치적 상황과 이 영화의 배경과의 유사점을 얼마나 느끼느냐에 달려있는 듯합니다.
좀 더 지겨운 만화원작 이야기
# by | 2007/07/18 23:07 | 영화라는 쾌락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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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브이 포 벤데타
→공식홈페이지: 영어 / 한국어 세계 3차대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근미래의 영국. 애덤 서틀러 의장이 이끄는 독재정부가 정권을 휘어잡고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무자비한 감시와 통제를 행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방송국 직원으로 일하던 이비 해먼드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V'라고 부르는 기묘한 인물과의 만남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