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4일
21그램: 심령영화?
마지막 션펜이 삶의 끝자락에 그렁하게 매달려있는 목소리로 읇조리는 21그램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은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1907년에 메사츄세츠 주의 던컨 맥두걸이라는 의학자가 발표한 논문에 나오는 "살아있을 때와 죽어있을 때의체중차이가 21그람 고로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는 주장에 근거 한 것인데 사실 이 이론은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걸 재려면 수십명의 피험체가 저울위에서 운명하셔야한다는 것인데 그런 비인도적으로 보이는 실험을 감히 하시려는 분은 안계시겠지요. 추후에 환자가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체중 뿐아니라 혈압이나 골밀도나 체지방 등 그 상태를 종합적으로 잴 수 있는 침대 겸용 저울이 나와서 환자의 복지를 위한 모니터행위라는 식의 정당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이런 실험을 시도하는 거 자체가 조금 우습긴 하죠. "오늘, 내일 운명하실텐데 이제 그만 저울에 눕히시는 게..." 게다가 인체라는 것이 하루에도 크게는 2킬로의 편차로 체중이 변하지 않습니까? 그 100분의 1정도인 21그람의 존재는 무척이나 미미하죠. 20세기 초엽의 기독교 계열의 과학자들이 "과학"(대표적으로는 진화론과 천체물리학)과 합리주의가 신앙을 위협하자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과학의 힘을 빌어 종교를 합리의 영역에서 증명하려는 시도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되는 맥두걸 박사도 나중에 가서는 영혼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둥 개는 죽을 때 체중차이를 보이지 않으므로 개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둥 하는 무수한 "어록급"의 헛소리를 남기게 됩니다. 어쨌든 감독이 말하는 21그램은 "삶과 죽음의 차이" 그러므로 "삶의 의미 내지는 상징" 정도로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영혼의 무게는 아니죠. 여기엔 민감한 이슈가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복받았을 정도로 관념이 뚜렷합니다. 이건 기독교 들어오기 훨씬 이전 부터 우리의 "집합적 무의식"(칼융의 말을 잠깐 빌리면)속에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저 자연스럽죠. 사람의 영이 죽으면 빠져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믿음입니다. 그러나 서양은 좀 틀린 문제입니다. 영혼의 존재에 대한 인정은 그 사람의 종교와 관련된 이슈가 됩니다. 특히 최근의 경우는 종교와 정치 이슈가 첨예하게 얽히면서 (학교 기도 문제라든지...) 영혼의 존재인정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이냐리뚜 감독 역시 "21그램이 영혼의 무게다"라는 이야기는 영화 어디서도 안합니다. 베니시오 델 토로가 연기하는 막가파 예수쟁이 역시 관찰의 대상이지 영화의 정서를 주도하는 페르소나는 아니죠. 이렇게 섬세하게 "정치적 옳바름"에 충실하게 해놓은 설정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자연스럽게 "영혼의 무게=21그램"이라는 식으로 홍보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물론 쉽게 원작자의 의도를 훼손했다고 비난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전통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해오던 우리나라 문화에 맞는 "현지화"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듭니다. 영화는 제가 굳이 한 번 더 좋다고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비선형적인 장면연결은 사실은 비선형적 시간연결에 선형적 정서연결이 덧붙여진 형태였지요. 쉽게 말해 데이빗 린이 시각적 모티브로 장면을 연결한 것 처럼 이 영화에서는 정서적인 내용으로 장면이 연결되는 형태입니다. 예를 들어 델 토로 캐릭터의 아내가 사고현장을 보러 차를 몰고 나가는 장면 뒤에 펜과 와츠가 차를 몰고 황야를 가로질러 델토로의 일하는 모습을 슬쩍 지켜보는 장면이 붙는 식으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메멘토와 비교하곤 하는데 그건 사실은 도그빌을 보면서 연극적이다라고 말하는 것만큼 게으르고 단편적인 연관입니다. 메멘토는 뒤로가는 컬러 시퀀스 사이에 앞으로 가는 흑백시퀀스가 결합되어 나름대로 선형적인 시간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선이 하나는 뒤로가고 하나는 앞으로가긴 하지만) 오히려 시간 배열은 이냐리뚜 감독의 전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와 유사성이 많습니다. 아모레스의 경우 21그램 보다는 훨씬 큰 덩어리로 잘랐기 때문에 비교적 선형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그 영화 역시 상당히 불규칙해 보이는 시간 배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션팬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나오미 와츠의 "죄책감"연기는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사실 남편을 죽인자에게 몇 년이 흐른 후에 복수하겠다고 갑자기 결심하는 것은 결국 남편의 불행을 뒤로 한 채 그의 죽음의 수혜자와 육체적 쾌락을 나눈 다는 행복에 대한 내재적 반발로 인한 것인데 그 지배정서인 죄책감이 공감을 얻기 위해선 나오미 와츠의 연기가 상당히 핵심이되어야 했습니다. 펜과 와츠 커플의 연기는 죄책감이 한 사람에게 싹터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고 확대되어 서로 공명한다는 상당히 복잡한 심리변화를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비선형 타임라인 덕분에 각각의 장면에서 그 느낌을 해결해야한다는 허들을 멋지게 뛰어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냐리뚜 감독은 조너선 드미 감독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이나 배우에게서 연기를 뽑아내는 법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베르날 최고의 연기는 역시 아모레스 페로스) 참고로 영화 마지막부분의 션펜 대사의 번역이 이상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영혼 어쩌구로...) 원문을 올립니다 힘든 영어는 아니니까 함 음미해 보시기 바래요.. How many lives do we live? How many times do we die? They say we all lose 21 grams... at the exact moment of our death. Everyone. And how much fits into 21 grams? How much is lost? When do we lose 21 grams? How much goes with them? How much is gained? How much is gained? Twenty-one grams. The weight of a stack of five nickels. The weight of a hummingbird. A chocolate bar. How much did 21 grams weigh? |
# by | 2007/07/14 01:25 | 영화라는 쾌락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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