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 목소리: 진정성과 장삿속 [아카이브]

정말 잘 못만든 영화가 면죄부를 받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베르니니가 피노키오라는 인류문화사상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러 재난영화와 공포영화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하기 훨씬 이전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로빈윌리엄스를 데리고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에 대해 모든 평론가와 관객들이 만장일치로 후진 영화라고 주장할 때 오직 한 분이 꿋꿋하게
별네개를 때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코폴라는 잭 케루악의 "On the Road"를 영화화하려는 장대한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며
그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을 벌기 위해 이런 영화를 찍어야하는 그의 노력에 별네개를 바칩니다"
배달의 기수적 신파를 표방하며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되서가 아니라 일부러 못만들었다는
대한민국범죄자자살특공대훈련몰살 드라마인 모 영화도 "역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라는 명분을
추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모씨가 만든 "도마 안중근"도 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대한 문화적
응징이라는 대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뭐라고 주장을 하든 간에 못만든 영화는 못만든 영화.

"그놈 목소리"는 간단히 말해 이렇습니다.
이 영화의 마케팅에서 주장하는 "현상수배극"이라는 주장은 이런 식으로 펼쳐집니다.
관객들을 피해자들이 겪는 감정적인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체험을 시켜준 후에
그 공분을 최대치로 고조 시켜놓고 나서 "단단단단 따라다라 따라다라  범인을 공개! 수배합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국민모두가 공지할 뿐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현상수배물"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거 물론 나쁜 아이디어 아닙니다. 영화가 재미도 있고 실용적이기까지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여기서 밑줄을 그어야하는 부분은 "영화가 재미도 있고"입니다. 뭐 재미라고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펀치를 때리려면 최소한 그 마지막 펀치까지는 지겹지는 않아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죠.

이 영화는 리얼리티의 상당부분을 희생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된다면
그것도 살리면서 맨 끝 장면의 감정을 고조 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공분의 도출(혹은 선동)이 우선이라면
리얼리티같은 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죠.
대표적인 예로 앵커인 주인공이 범인의 목소리를 자신의 방송에서 틀어주면서 울부짓는 클라이맥스라는
환상특급수준의 장면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방송국 직원들은 바보? 보랏에게 속은 WAPT직원들 수준?)
부모의 분노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경찰을 완전히 바보/짐짝/밥벌레로 그려놓은 점 역시 그렇습니다.
범인은 유괴범의 상식(그냥 일반인들이 상상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한)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영화 속 경찰들의 대응은 반상회 수준입니다. 그리고 나서 상식수준밖에 안되는 범인이 아주 쎈놈이라서
뭐 이런 대사나 날리고 있고 말이죠. 같은 종류의 무능한 경찰들의 모습을 그린 "살인의 추억"은 그 무능의
원인이랄지 동기랄지 하는 것들이 설명되어 있는 반면에 여기서 그려진 경찰들은 부모의 답답한 심정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그냥 걸어다니는 작대기 역할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설경구씨와 김남주씨의 연기는 꽤 괜찮은 편입니다. (연말에 상하나 쯤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꺼에요)
영화 대부분 비슷하게 흘러가긴 해도 울부짓고 분노하고하면서 관객들에 열심히 "부모마음"에 대해
전달합니다. 감독이 원하는 대로 "부모의 상처"를 관객들이 느낀다면 대부분은 이 둘의 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를 통해 그 비극을 온당하게 받아들이고 싶어도 제작진이 작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제반 상황들을 보면 억지로 그들의 상처에 감정이입을 하라는 윽박지름이 느껴져서 속아주기가 싫었습니다.

감정이 앞서고 설정에 대한 탐구가 부실하니까 이야기의 진행은 답보를 거듭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를 끌고갈 기본적인 드라이브가 없는 거죠.
공개수사/비밀수사의 고민과 부모들 심리의 점진적변화에 대한 탐구 같은 것은 핥짝거리기만 하고
가끔 지겨울까봐 터뜨려주는 추격시퀀스 속에 그냥  똑같은 장면이 날짜만 바뀐채 반복됩니다.
솔직히 몇몇 장면은 편집 순서를 다르게 해서 날짜만 바꿔도 이야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기 까지 하단 말이죠.

그래서 맨 마지막 이영호군의 납골당장면이 나와서 명복을 비는 것도 영화 선전지에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이 후원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 홍보가 나오는 것도 어째 부실공사 땜빵하려는 것 처럼 보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현상수배극"이니까 대충 이정도 했어도 완성도 보다는 명분을 생각해서 눈감아줘라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영구미제공소시효소멸 서명운동을 극장 앞에서 하는 것 그리고
서명 데스크를 지키는 담당알바께서 큰 소리로 아이들을 팔아 호객하는 거 다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마케팅은 필수지만 대중을 바보취급하는 것은 선택하지 말하야할 옵션이거든요.



어쩌면 제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실미도"가 정말 재미없었던 것 처럼
제가 애가 없어서 이 영화가 재미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는 제작자에 대한 짜증이 더욱 진하게 남았던 영화였습니다.

같은 영구미제 사건을 다뤘던 잘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이 한 번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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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재방송

by 액화철인 | 2007/07/05 11:22 | 오욕의 타임캡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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