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mber 이야기 : 여성운동을 까지않고 남성운동 하는 법

11월은 Movember라는 말은 오타가 아니다.

Movember는 Moustache(콧수염)의 앞 두자와 November를 합친 말로
일단은 11월에 남자들이 남성들 만의 다양한 건강 이슈를 생각하면서 
콧수염을 기르(은다기 보다는 깎지 않)는 일종의 집단행동을 의미한다.
M이 Male의 M이기도 하고 저렇게 붙여 놓으니까 Move('운동권'할 때의 그 운동, 스포츠가 아니라)가
생각나기도 해서 "모벰버"라는 건 꽤나 적절하게 들리는 명명이다. 

아마도 모벰버는 남자들의 술자리 장난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99년에 호주 뉴스에서 다뤄진 바에 의하면 호주 남부도시 아델레이드의 일부 남자들이
동물학대방지를 위한 자선모금을 홍보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11월을 모벰버라고 부르면서
콧수염을 깎지 않는 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생각했고 
그 행위의 단순성이나 명분이 아무래도 남자들의 집단의식을 자극했는지 (게다가 게으름도 자극했을 공산이 큼) 
어느새 호주 다른지역의 사람들도 따라하기 시작해서 일종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이러던 것이 2004년도에 모벰버 재단이라는 게 발족되어서 아무래도 동물학대보다는
남성성과 좀 더 결부된 이슈를 위해 수염을 기르는 건 어떨까 하는 의도로 남성건강이슈와 수염기르기를 결부시키기 시작했고
수염기르기와 모금활동을 통해 전립선암재단 등의  남성질병연구기관을 지원하는 운동으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2007년 부터는 호주/뉴질랜드를 넘어서 캐나다, 스페인, 영국, 미국에 걸쳐 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원래 면도기 만드는 쉬크와 스니커스는 당당한 모벰버운동의 스폰서였는데 
올해는 모벰버를 껀수도 생각하는 다른 기업들이 더 많이 참가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근일 발매 예정인 록스타의 레드데드 리뎀션역시 모벰버를 가지고 마케팅 중


모벰버에서 보여지는 건 첫째 남성들에게도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만의 심각한 이슈가 존재한다는 거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남성운동과 여성운동이 대체로 계급적인 맥락에서 충돌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물음이다. 
제로섬이라는 경제논리 속에서 결국 경제분야에서 여권신장을 남성권익의 박탈로 여기는 예비낙오자 남성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고, 국방의 의무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남녀를 불문하고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남자들만 군대간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여권문제로 받아들이는 상식밖의 여성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서로를 "꼴페미"와 "꼴마쵸"로 삿대질 해가면서 싸우는 초등학교운동장식의 난투를 벗어나 진짜
여성적 혹은 남성적 이슈에 대해 돌이켜 보는 건 어떠냐는 말이다.

이제는 여성운동이 남성을 공격할 필요 없고 남성운동이 여성을 밟을 필요는 없을 만큼 사회가 성숙하지 않았을까 라는
희망적인 생각이조금은 해괴한 모벰버라는 운동을 보고 들었다는 말임.




추가:
그래서 요즘 콧수염 면도 안하고 있음...
(전립선암은 무서운 거라능)

모벰버 홈페이지
http://www.movember.com/

by 액화철인 | 2009/11/12 15:37 | 잡동사니, 흔적, 기타 등등 | 트랙백 | 덧글(5)

돈은 악당이 벌어주고 영광은 영웅이 챙긴다.

"Every search for a hero must begin with something which every hero requires, a villain.
(영웅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영웅의 필수조건인, '악당'을 발견하는 데서 부터 시작되지) " 
- 미션 임파서블 2 中, 네코르비치 박사-



직업이 글로벌쪽(특히 영미쪽)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관련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한국에 거주중이지만 감각의 조율을 위해 외국 사람같은 미디어 소비를 해야한다. 평소에 NPR과 BBC를 귀에 꼽고 살고 (팟캐스트로) TV볼 시간이 나면 그 쪽 방송을 본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 정보는 제일 느리다. (내가 한국 미디어/방송/연예 정보를 얻는 대표적인 경로가 "이글루스"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얼마나 뒤떨어진데다가 뒤틀려져 있을지 짐작이 가시리라)
어쨌든 최근에 관련 프로모션 모니터링을 하느라 안보던 영국의 엑스팩터라는 프로를 억지로 계속 보고 있는데 이 프로는  팝아이돌/브리튼즈갓탤런 같은 선발형 리얼리티쇼로 일반인 중에서 팝스타를 뽑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잘나가는 팝디바인 리오나 루이스가 여기 출신이라는 거 보면  꽤나 영향이 있는 프로그램인듯. 제목인 엑스팩터는 팝스타가 되기 위해선 잘생긴 것, 노래잘하는 것, 춤 잘추는 것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요건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 쇼의 출연자들은 춤실력, 노래실력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인생 드라마와 짧은 라이브로 대중을 얼마나 매료시킬 수 있느냐를 가지고 경쟁을 한다. 
쇼의 형식은 (올 시즌부터) 스튜디오 가득한 관객 앞에서 일반 오디션을 가지고 싹수가 보이는 애들을 4인 심사위원 다수결로 뽑은 후에 이 중에서 부트 캠프라는 선발과정을 거쳐 남자가수, 여자가수, 그룹, 25세이상의 4개 분야에서 각각 6명을 선발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네명의 심사위원들이 각각의 분야를 책임지게 된다. 어차피 본선에서 우승하는 건 하나니까 우승자를 자기 분야에서 내기 위한 심사위원들간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지게 된다. 일단 24명이 네그룹으로 나뉘어 각 심사위원의 저택으로 찢어지고나서 거기서 절반이 떨어져나가는데 이 단계는 전적으로 각 심사위원의 판단에 의해 진행된다. 누가 시청자 전화투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골라진 집단별 3인 총 12명의 후보들은 각각의 심사위원들의 포장과 훈련을 통해 단련되어 가면서 시청자투표를 통해 매주 한명 씩 떨구는 11회의 라이브쇼를 거치게 된다.  아무래도 과정이 이렇다 보니까 출연진간의 경쟁도 당연하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선 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심사위원간 신경전도 발생한다. 그 신경전이 때로는 도를 지나쳐 제작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선발형 프로그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저열한 뒷공작과 스캔들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들어나기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인 듯 하다.

이번 시즌 응모자 중에는 존&에드워드 그라임이라는 쌍동이 형제가 있다. 이 형제는 얼굴은 반반하신데 노래나 춤이나 정말 심하게 떨어진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얘들에 비하면 얼마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소리 없이 사라진 "오리"는 디바다.


외모는 이미 팝스타




왠만하면 플레이버튼 누르지 마시길,
호기심을 이겨내야한다!!



이 형제, 일반오디션도 심사위원중 1인인 사이먼 카월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1로 통과를 하더니
24명을 가려내는 부트캠프에서도 개판인 실력을 가지고 외모빨로 통과 그리고
설마설마 하던 그룹부문 최종 3인에 선정되어 본선 라이브에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창출한다.

혹자는 올해의 그룹부문 담당심사위원인  루이스 월쉬 아저씨가 동향(더블린)출신이라는 이유로 선정되었다고도 하지만
사실 이들의 그런 단순한 온정주의라기 보다는 제작진의 전략적인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년 전의 아메리칸 아이돌, 본선 진출자 "산제이"를 생각해보면 분명하다. 노래는 못하지만 귀여운 외모로
꽤 오래 버텼던 산제이, 감정을 주체 못해 울음을 터뜨릴만큼 좋아하던 팬들과 산제이를 우승시켜 "아메리칸 아이돌"을
웃음거리로 만들자는 쇼의 안티들의 극렬지지와 저새끼 언제 떨어지나 라며 이를 갈며 지켜보는 산제이 본인의 안티들의
관심 속에 아메리칸 아이돌의 시청률은 생육하고 번성해갔다. 

산제이가 그러했든 존&에드워드(줄여서 제드워드라고 하는 유치한 닉네임까지 얻었다)는 올해 엑스팩터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출연자 중 하나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서 보는 사람들도 그들이 떨어지는 거 보려고 보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쇼의 중요한 인기요인 중 하나다.

엑스팩터의 탈락 방식은 이렇다. 최저투표 받은 후보 둘을 놔두고 4인의 심사위원들이 그자리에서 투표한다.
그래서 3:1이상으로 결론이 나면 그 결과에 따르지만 2:2가 되면 "데드락"이라는 상황이 발생
이렇게 되면 심사위원들의 결정이 아니라 실제 시청자 투표에서 제일 적게 받은 쪽이 탈락되는 거다.

다섯번째 라이브본선이 있던 지난 주말 드디어 존과 에드워드가 제법 노래잘하는 루시존스양과 함께 
최저 2인에 들어가게 된다. 
그룹담당이던 루이스 월쉬는 당연히 존과 에드워드를 지지
그리고 두 명의 여성심사위원 대니와 쉐릴은 상식을 따라 노래 훨씬 잘하는 루시존스를 지지
(쉐릴은 여성가수 담당이니까 당연히 루시존스지지)
그래서 마지막 결정권은 존과 에드워드를 이갈면서 싫어하던 사이먼 카월에게 넘어가게 된 상황.
여기 까지 왔을 때 당연히 사이먼은 루시존스를 지지하여 제드워드를 보내버릴 수도 있는데도
루시존스가 가장 적게 받았을 것이 분명한 시청자투표결과로 돌린다.
결국 제드워드 생존
아무래도 쇼는 악당이 남아있을 때 더 인기를 끄는 법 아니겠냐는 말이다. 
이 거 뭐 다 돈벌자고 하는 짓이고 말이지...

프로젝트 런웨이에도 ANTM에도 후보중에 나쁜년놈들이 꼭들어가는 거 보면
픽션이나 리얼리티쇼나 드라마 만드는 메카니즘은 다 비슷한 거 아니겠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건전한 외국미녀를 띄워주기 위해
골빈 한국미녀를 대척점에 세우는 건
대단히 뛰어난 전략이었던 거다.

봐라 다들 파닥이고 있지 않느냐고...




부록: 
* 방송상식하나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은 네종류가 있는데
뉴스거리와 직업인과 앵벌이와 병신이 있다. 

뉴스거리: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정보원이든 범인이든 영웅이든 운동선수든 뉴스나 다큐나 중계에 나오는 경우
직업인: 방송에 나오는 일이 고정직, 계약직인 경우
앵벌이: 앨범을 사주세요 영화를 봐주세요 드라마를 봐주세요 식당에 와주세요 등 방송을 통해 다른거 팔려는 경우
병신: 어쩌다 나와서 PD들의 장기말로 이용당하는 경우

그러니까 본인이 뉴스거리도 아니고 방송직종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방송통해서 팔만한 것도 없으면
그냥 방송국 카메라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거다.

by 액화철인 | 2009/11/11 15:36 | 오욕의 타임캡슐 | 트랙백 | 덧글(13)

원곡에 버금가는 커버 이야기①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by The Jeff Healey Band

비틀즈의 넘버쓰리라고 할 수 있는 조지 해리슨이 모처럼 자신의 작곡/보컬 솜씨를 뽐내는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비틀즈 노래 중에서도 상당히 자주 커버되는 곡이다. 사실 기타가 "gently weeps(부드럽게 훌쩍인다"라고 할 때는 통기타 스트러밍이 연상되는데 사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할 때나 초기 데모를 보더라도 그냥 통기타 스트록이 메인이 되는 반주의 구성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노래 내용 자체도 그냥 기타 딩가딩가 하는 한가로움과 세상이 변해가는 격렬함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까 사실 심각하게 각잡고 막 공옥진여사 장질부사 춤추는 식의 기타 연주를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은 아닌 듯 하다. 그러던 것이 처음 구상대로 녹음을 해보니까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심하게 든 해리슨이 친구인 (무려!) 에릭클랩튼에게 연락해서 이러이런 곡이 있는데 아직 좀 병신이니 미친 듯한 기타를 올려서 사람 좀 만들어주게 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당시 자신이 속한 수퍼밴드인 크림의 해산을 앞두고 있던 클랩튼은 "내가 미쳤나? 비틀즈 앨범에 숟가락 올렸다 매장 당할일 있게?"라고 거절하다가 나름 절친이라서 마지 못해 수락. 그 결과는 곡 전체를 흐르는 절대 젠틀리 안하고 감정 팍팍 실어서 와일들리하게 흐느끼는 그런 블루스 풍의 솔로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녹음한 결과물은 "While his guitar wildly wails"였던 셈인데, 곡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쥐어짜는 느낌과 자유로움이 이 절(verse)부분의 비장한 단조 하향베이스의 코드진행과 너무나 잘어우러져 확실히 걸작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쉽게 따라할 것 같은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기타솔로를 받쳐주는 오픈된 곡구성이 주는 자유도 덕분에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 마다 이 곡을 "묘기대행진"풍 솜씨자랑의 플랫폼으로 활용하곤 했기 때문에 잦은 커버의 소재가 되어온 거다.

잉베이가 열어 젖힌 미친 속주의 시대, 흔히 기타와 음절을를 갈기갈기 찢는 듯한 속주 덕분에 슈레더(shredder, 세절기)의 시대라 불렸던 시기를 이끌었던 기타신 중 하나인 비니무어의 리메이크를 들어보면 무슨 이야긴지 알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youtube.com/watch?v=UDyxmslFkFc 영상은 좀 엄해도) 최근 단지 비틀즈를 커버하기위해서 드림 시어터의 포트노이와 미스터 빅으로 유명한 폴길버트를 주축으로 임시로 구성된 프로젝트 밴드 "옐로 매터 커스터드"가 이 곡을 연주한 걸 봐도 마찬가지다.  이걸 보면 기타리스트인 길버트가 아주 그냥 신나서 "gently weeps"를 넘고 "wildly wails"도 넘어서 고속 미싱에 산채로 박음질 당하는 것 같은 미친 비명, 그러니까 "while my guitar frantically screams"로 연주하는 걸 볼 수 있다.(하단 부록 참조) 그래서 기타 마스터들이 이 곡을 연주한다고 하면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왠지 신이 난다.

그런데 내가 이 곡의 가장 좋은 버전이라고 여기는 곡은 이런 초고속연주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토토나 프램튼 같은 올드 마스터들의 해석도 아니다. 




1990년 천재 블루스 기타리스트 제프 힐리가 주축이 된 제프힐리밴드가 "Hell to Pay"라는 앨범을 발매하면서 본 곡의 커버를 수록한 적이 있다. 사실 음악을 듣고 진짜 눈물이 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나한테는 바로 제프 힐리가 연주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느꼈다. 살짝 거친 느낌의 리메이크인데 힐리 특유의 톤으로 연주되는 끈끈하고 아름다운 솔로는 정말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비디오가 아니라 오디오로 처음 들었던 나는 나중에서야 제프 힐리가 맹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사실 그건 별로 안놀라왔다. 원래 박탈은 영감의 좋은 촉매제가 되는 법이니까. 단지 기타를 치면서 사람들도 보고 바닥도 보고 세상도 보고 그런다는 식으로 노래 가사에는 뭔가를 본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 그의 장애와 겹치면서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가 장님이라는 사실 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감정적인 컨텐츠가 흘러 넘치는 연주가 겨우 24살 짜리 청년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멋진 연주를 들려주던 제프 힐리는 안타깝게도 작년 3월에 41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 





부록: 위에서 이야기한 옐로우 매터 커스터드가 라이브에서 연주한 이 곡
드럼이 마이크 포트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지막 폴 길버트 솔로 때 함께 노는 모습은 예상가능범위...


 


by 액화철인 | 2009/10/13 17:10 | 음악이라는 쾌락 | 트랙백 | 덧글(3)

뚜껑을 열자 안에 있던 녀석들이...


뚜껑을 열자 안에 있던 녀석들이 날 보고 일제히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MG건탱받았지만 카우즈와 우치코마를 만지는 중이라 일단 봉인 결정.

by 액화철인 | 2009/10/09 15:46 | 절대 오덕이 아닙니다 | 트랙백 | 덧글(0)

문득 "Jesus to a Child" 이야기 - 벽장 속의 사랑

요즘 퇴근 후 매일 개인 공방에 처박혀서 닙턱 시즌4를 틀어놓고 자정이 넘게까지 작업을 하는 매우 건전한 생활을 보내는 중인데 어제였나 극 중에서 "Jesus to a Child"가 흘러 나왔다. 원래 닙턱의 삽입곡 선곡은 좋은 의미로 악명이 높다. 고르는 곡 마다 탁월한 취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니라 다른 미드의 프로듀서들은 쪽팔려서 못하는 직사주의(Literalism)적 선곡을 과감하게 해버리는 것 때문이기도 한다. 대개 드라마의 삽입곡을 고를 때는 멜로디를 극 중 정서에 맞추는 거는 당연하지만 가사의 경우 일부러 딱 맞아 떨어지는 걸 활용하여 개그의 수단으로 쓸 작정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극의 내용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을 쓰는게 자연스럽고 세련된 것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뮤직비디오 만드는 것도 비슷하잖아. "희미한 담배연기"라는 가사가 나올 때 담배연기를 화면에 뿌리는 뮤직비디오를 생각해 보라고. 그런데 제작자인 라이언 머피는 이런 식의 유치한 직사주의적 선곡을 절대 두려워 하지 않는다. 토막시체를 재조립하는 장면에서 라디오헤드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사 흘러나온다던지, 극 중 인물의 대사가 나오고 그 대사가 첫 가사로 나오는 노래가 곧바로 이어진다던지 하는 낯 뜨거운 당당함에 맞닥뜨리면 어휴 유치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오히려 나의 왠지 꼰대 같은 취향에 대해 반성하게 될 지경이다. 닙턱이야기는 정말 하루종일 하고 싶지만(예를 들자면 닙턱을 보고 나면 "아내의 유혹"은 막장드라마가 아닌 공익광고 뭐 이런 이야기) 일단 이야기 길어지니 다음 기회로 미루고...

어쨌든 조지 마이클의 "Jesus to a child"가 흘러나오는 대목은 주인공인 션 맥나마라가 선천적으로 지결손증을 가지고 태어난 막내 아들 코너에게 수술을 해주는 장면이 예전에 션 스스로 구순구개열로 치료 받던 자신의 회상과 교차되는 시퀀스인데 확실히 노래가 다루는 아이를 향한 예수와도 같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정서와 잘 어울린다. 게다가 시퀀스의 마지막도 성모자 내지는 문자 그대로 예수하고 어린아이를 소재로 한 옛 종교화 같은 구도로 마무리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라이언 머피식의 그럴싸함이다. 

그런데 이곡이 이야기하는 사랑이 사실 부모자식간이나 신과 인간 사이의  "내리 사랑"이 아니라 연인간의 사랑이라는 건 이 노래가 좋아서 가사를 파본 사람이면 다 짐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땅히 질척거려야만하는 연인간의 사랑이 이 노래 속에선 예수가 아이한테 보내는 숭엄한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는 묘한 뒤틀림이 있다. 이 노래 속의 사랑은 에로스적인 관계가 어떤 계기로 아가페적인 관계로 바뀐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가사 속의 여러가지 정황("하늘이 주고 하늘이 앗아간 heaven sent and heaven stole", "당신의 마지막 숨결로 with you last breath")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 계기는 바로 연인의 죽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1991년 1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Rock in Rio2"라는 성대한 음악축제가 벌어진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 해 벌어진 "락인리오"는 조화(造花) 장미다발처럼 화려했던 80년대 팝의 황혼을 불사르기 위해 전설적인 라인업이 모인 행사였다. 이 행사에 공연자로 참석했던 조지 마이클은 안젤모 펠레파(Anselmo Feleppa)라는 브라질 출신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를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조지 마이클이 '게이'내지는 '양성애자'라는 사실은 왬시절 부터도 소수의 관계자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일반대중으로부터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동성애가 손쉽게 기사화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도 했지만 조지 마이클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감추려는 노력을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브룩 쉴즈와의 염문이나, "I want your sex"비디오에도 함께 출연했던 캐시 정과의 공개 연애나  유명한 여성스타들  누구누구랑 자봤다고 떠들고 다니는 행동 모두 그의 의식적 노력의 일부였다. 그건 아마도 극도의 자기부정에서 탄생된 동성애 공포로 점철되어 있는("우리는 절대 게이 아님 단지 벗은 남자 몸을 숭배할 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마초정서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인의 피 때문이었을 것이다. 98년 불미스러운 일로 억지로 세상에 알려진 이 후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어머니가 알게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커밍아웃한 이후에 사람들이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왬시절의 곡들을 포함해서 이제까지 조지 마이클이 만든 사랑 노래들이 의외로 성별이 불분명했었다는 점이다. 주로 내(I)가 당신(You)에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에게 이야기하는 노래도 되고 남자가 남자에게 하는 노래도 된다. 초창기의 "Wake me up before you go go" 중의 lady라는 호칭 정도가 유일한 예외라 할 수 있을 정도다. She가 전면에 드러나는 ""Everything She Wants"같은 건 사랑 노래라기 보다는 악녀/책임/인생꼬임이 이어지는 "빌리진"류의 이성애의 악몽에 관한 노래다. "I'm you man(난 당신의 사내)"같은 언뜻 위버마쵸적인 제목의 노래도 찬찬히 살펴보면 여성에게 하는 노래라고 딱히 잘라 말할 수 없다. 이런 조지 마이클 노래의 성적 모호성은 뮤직비디오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거쳐 "이성애적 사랑노래"라는 인상을 주었던 거다. (최근에는 이성애자로 잘 알려진 남자 가수들의 곡도 오히려 게이 청취자를 공략하기 위해 이런 성적 모호성을 담는다는 추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선 가사쓰기 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조지마이클의 이런 공적 이미지 메이킹 덕분에 그가 안젤모를 만나던 90년대 초반, 그들의 사랑 역시 철저하게 감춰졌다. 비록 둘은 서로를 일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소울메이트로 인식하고 있었고 조지 마이클과는 달리 안젤모 펠레파는 제법 잘 알려진 동성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들은 절친한 친구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둘이 비밀스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1992년 안젤모는 에이즈 판정을 받게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조지 마이클의 스케쥴에서 에이즈 관련 활동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다. 
1993년 3월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던 안젤모는 뇌출혈로 세상을 뜬다.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 더 무거운 법. 연인의 슬픔을 공개적으로 애도할 수도 없는 입장이던 그는 바깥으로는 다소간의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새로운 곡을 쓸 수 없는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슬픔으로 보내던 1년 반이 지난 어느날 그는 홀린 듯 한시간 남짓 걸려 가사를 하나 써낸다. 죽은 연일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곡은 바로 "Jesus to a child"다.


1994년 11월 MTV유럽피언 뮤직어워드에서 처음 공개 된 후, (소니와의 문제로)앨범의 형태로는 1996년이 되어야 정식으로 소개 될 수 있었던 이 곡은 단조의 보사노바 발라드다. 대충의 감은 오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가사와 역시 마찬가지의 모호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뮤직비오 때문에 발표 당시 사람들에게 "분명 죽은 연인에 관한 노래 같은데 왜 하필 남자인 예수에 비유?"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의문과 억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에 발표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맥락을 모르면 정말 해괴한 이미지로 가득하지만
조지와 안젤모와의 일을 알고 나면 여러가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병실과 도망치는 듯한 환자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가면과 깃털을 쓴 죽음의 여신, 쓰러진 육체들
시간과 생명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수많은 바니타스들,  장례의 상징들, 삼도천...

맥락을 이해하고 다시 노래를 들어보자.
한국어 번역, 영어 원문 그리고 스포츠 캐스트 스타일의 코멘터리가 붙는다.
좀 깨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당신 눈에 깃든 친절함
아마 내가 우는 소릴 들었나봐요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Kindness In your eyes
I guess You heard me cry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병상을 곁에서 울고 있는 화자를 미소지으며 위로 해주는 환자의 모습.
 예수같은 미소는 죽음을 앞두고 생을 초탈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


그래요 난 축복받았어요,
하늘이 보내줬고 하늘이 앗아간거죠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I'm blessed I know
Heaven sent And Heaven stole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애인이 죽어 버린 이후, 그 때 병상에서 아픈 채로 지어주던 미소를 추억하는 대목이다)


내가 이 모든 고통을 통해 뭘 배웠을까
이젠 그 무엇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같은 감정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젠 알아요.

사랑을 발견하면
사랑이란게 존재한다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젠 없어서 그리워하는 그 사랑이 
차디찬 밤에 곁으로 찾아와준다는 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이 크나 큰 행복을 품고 있다는 걸 안다면
입맞췄던 그 연인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때에 위로가 된다는 걸

And what have I learned
From all this pain
I thought I'd never feel the same
About anyone
Or anything again
But now I know
When you find love
When you know that it exists
Then the lover that you miss
Will come to you on those cold, cold nights
When you've been loved
When you know it holds such bliss
Then the lover that you kissed
Will comfort you when there's no hope in sight

(이렇게 아프다면 사랑을 모르는 게 오히려 더 나았었을 뻔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진짜 사랑은 알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외롭고 힘들 때 큰 위안이 된다는 걸 고통을 겪으면서 화자는 깨닫게 된다.



내 눈의 슬픔
아무도 짐작 못했고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Sadness In my eyes
No one guessed
Or no one tried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벽장 속에 감춰져있는 화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그대만이 날 이해했다라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이 대목을 쓰는 조지 마이클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랑없이 차가왔지만 
당신은 마지막 숨결로
내영혼을 구원했어요.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Loveless and cold
With your last breath
You saved my soul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연인의 죽음은 사람을 냉소하게 만든다. 슬픔은 비인간성을 끌어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연인은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길 바랬다. 그리고 그 모습은 예수 같은 무한한 애정을 담은 미소로 기억되고 있다.)

이 수많은 눈물 속에서 뭘 배웠을까
그 많은 세월 기다려
이제 막 시작하려 하는데
신이 사랑을 앗아간 셈이야
And what have I learned
From all these tears
I've waited for you all those years
And just when it began
He took your love away

(안젤모와 조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히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었다고 느껴진다. 20대 후반에 겨우 만나 너 내 일생동안 어디가있다가 이제 나타난겨 하는 기분이었는데 만난지 2년도 안되어 사별하게 된 그의 심정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사랑을 발견하면
사랑이란게 존재한다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젠 없어서 그리워하는 그 사랑이 
차디찬 밤에 곁으로 찾아와준다는 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이 크나 큰 행복을 품고 있다는 걸 안다면
입맞췄던 그 연인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때에 위로가 된다는 걸
But I still say
When you find love
When you know that it exists
Then the lover that you miss
Will come to you on those cold, cold nights
When you've been loved
When you know it holds such bliss
Then the lover that you kissed
Will comfort you when there's no hope in sight



그러니까 당신이 못다한 말들
내가 대신 노래해 줄께요.
당신과 내가 나눴을 사랑까지
두사람 몫의 사랑을 할 께요.
하나하나의 모든 추억이
이제 내 일부가 되었으니
당신은 영원히 내 사랑이에요.
So the words you could not say
I'll sing them for you
And the love we would have made
I'll make it for two
For every single memory
Has become a part of me
You will always be My love

(이 노래가 만들어진 이유, 앞으로 화자가 살아갈 이유다. 당신이 못다한 말들을 내가 노래로 만들고 당신이 못한 사랑 내가 당신 몫까지 한다는, 모 애니메이션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안젤모는 죽었어! 더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난 사랑 받았어요
그러니 난 사랑이 뭔지 잘 알아요.
내가 입맞췄던 그 연인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꺼에요
Well I've been loved
So I know just what love is
And the lover that I kissed
Is always by my side

내가 아직도 그리워하는 그 연인은
사뭇 어린 아이에게 있어 예수 같은 사람...
Oh the lover I still miss
Was Jesus to a child


1998년 아우팅 당한 이후 조지 마이클은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를 때 꼭 "안젤모"에게 바친다는 이야기를 한다.


안젤모 펠레파와 조지 마이클의 다정한 한 때






이 포스팅에서 쌓아놓은 환상을 박살내기 위한 첨언:

사실 안젤모 펠레파는 예수에 비견되기에는 좀 문제가 많은 인물이긴 했다. 원래 디자이너로서의 재능 보다 남자를 꼬시는 능력이 탁월한 꽃뱀이라서 조지 마이클에게 접근한 이유도 순전히 그의 명성과 돈 때문이었고 여하튼 각종 뒷공작을 펼쳐 결국 "공사"에 성공해 원하는 대로 조지 마이클로 부터 신형 벤츠를 포함한 비싼 선물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걸 자랑으로 떠벌리고 다녔고 그런 와중에도 여기저기 애인은 많이 만들고 다녔기 때문에 에이즈로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런 식으로 기억되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조지 마이클 역시 약물중독이나 섹스중독으로 있는 사고 없는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사람인데다가 약간의 허언증끼가 있어서 실제보다 훨씬 더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심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위험은 무조건 부정해버리는 위험한 레벨의 회피기질이 있는 사람이라 사실 1년 반의 작곡불능도 사실 안젤모의 슬픔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전속음반사인 소니와의 관계라든지 자신도 에이즈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라든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심하게 들기는 한다. 곧 출판을 앞두고 있다는 조지 마이클의 자서전이 나와도 앞에서 말한대로 추억을 심하게 미화하는 그의 기질 덕분에 아무래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 말대로 진실은 저너머에



- 음악밸리로 보낼까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역시 사랑 이야기라 연애밸리로 보냅니다.

 

by 액화철인 | 2009/10/07 18:36 | 가고싶지않은연애밸리가는글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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