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에 버금가는 커버 이야기①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by The Jeff Healey Band

비틀즈의 넘버쓰리라고 할 수 있는 조지 해리슨이 모처럼 자신의 작곡/보컬 솜씨를 뽐내는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비틀즈 노래 중에서도 상당히 자주 커버되는 곡이다. 사실 기타가 "gently weeps(부드럽게 훌쩍인다"라고 할 때는 통기타 스트러밍이 연상되는데 사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할 때나 초기 데모를 보더라도 그냥 통기타 스트록이 메인이 되는 반주의 구성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노래 내용 자체도 그냥 기타 딩가딩가 하는 한가로움과 세상이 변해가는 격렬함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까 사실 심각하게 각잡고 막 공옥진여사 장질부사 춤추는 식의 기타 연주를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은 아닌 듯 하다. 그러던 것이 처음 구상대로 녹음을 해보니까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심하게 든 해리슨이 친구인 (무려!) 에릭클랩튼에게 연락해서 이러이런 곡이 있는데 아직 좀 병신이니 미친 듯한 기타를 올려서 사람 좀 만들어주게 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당시 자신이 속한 수퍼밴드인 크림의 해산을 앞두고 있던 클랩튼은 "내가 미쳤나? 비틀즈 앨범에 숟가락 올렸다 매장 당할일 있게?"라고 거절하다가 나름 절친이라서 마지 못해 수락. 그 결과는 곡 전체를 흐르는 절대 젠틀리 안하고 감정 팍팍 실어서 와일들리하게 흐느끼는 그런 블루스 풍의 솔로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녹음한 결과물은 "While his guitar wildly wails"였던 셈인데, 곡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쥐어짜는 느낌과 자유로움이 이 절(verse)부분의 비장한 단조 하향베이스의 코드진행과 너무나 잘어우러져 확실히 걸작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쉽게 따라할 것 같은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기타솔로를 받쳐주는 오픈된 곡구성이 주는 자유도 덕분에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 마다 이 곡을 "묘기대행진"풍 솜씨자랑의 플랫폼으로 활용하곤 했기 때문에 잦은 커버의 소재가 되어온 거다.

잉베이가 열어 젖힌 미친 속주의 시대, 흔히 기타와 음절을를 갈기갈기 찢는 듯한 속주 덕분에 슈레더(shredder, 세절기)의 시대라 불렸던 시기를 이끌었던 기타신 중 하나인 비니무어의 리메이크를 들어보면 무슨 이야긴지 알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youtube.com/watch?v=UDyxmslFkFc 영상은 좀 엄해도) 최근 단지 비틀즈를 커버하기위해서 드림 시어터의 포트노이와 미스터 빅으로 유명한 폴길버트를 주축으로 임시로 구성된 프로젝트 밴드 "옐로 매터 커스터드"가 이 곡을 연주한 걸 봐도 마찬가지다.  이걸 보면 기타리스트인 길버트가 아주 그냥 신나서 "gently weeps"를 넘고 "wildly wails"도 넘어서 고속 미싱에 산채로 박음질 당하는 것 같은 미친 비명, 그러니까 "while my guitar frantically screams"로 연주하는 걸 볼 수 있다.(하단 부록 참조) 그래서 기타 마스터들이 이 곡을 연주한다고 하면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왠지 신이 난다.

그런데 내가 이 곡의 가장 좋은 버전이라고 여기는 곡은 이런 초고속연주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토토나 프램튼 같은 올드 마스터들의 해석도 아니다. 




1990년 천재 블루스 기타리스트 제프 힐리가 주축이 된 제프힐리밴드가 "Hell to Pay"라는 앨범을 발매하면서 본 곡의 커버를 수록한 적이 있다. 사실 음악을 듣고 진짜 눈물이 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나한테는 바로 제프 힐리가 연주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느꼈다. 살짝 거친 느낌의 리메이크인데 힐리 특유의 톤으로 연주되는 끈끈하고 아름다운 솔로는 정말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비디오가 아니라 오디오로 처음 들었던 나는 나중에서야 제프 힐리가 맹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사실 그건 별로 안놀라왔다. 원래 박탈은 영감의 좋은 촉매제가 되는 법이니까. 단지 기타를 치면서 사람들도 보고 바닥도 보고 세상도 보고 그런다는 식으로 노래 가사에는 뭔가를 본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 그의 장애와 겹치면서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가 장님이라는 사실 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감정적인 컨텐츠가 흘러 넘치는 연주가 겨우 24살 짜리 청년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멋진 연주를 들려주던 제프 힐리는 안타깝게도 작년 3월에 41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 





부록: 위에서 이야기한 옐로우 매터 커스터드가 라이브에서 연주한 이 곡
드럼이 마이크 포트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지막 폴 길버트 솔로 때 함께 노는 모습은 예상가능범위...


 


by 액화철인 | 2009/10/13 17:10 | 음악이라는 쾌락 | 트랙백 | 덧글(3)

뚜껑을 열자 안에 있던 녀석들이...


뚜껑을 열자 안에 있던 녀석들이 날 보고 일제히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MG건탱받았지만 카우즈와 우치코마를 만지는 중이라 일단 봉인 결정.

by 액화철인 | 2009/10/09 15:46 | 절대 오덕이 아닙니다 | 트랙백 | 덧글(0)

문득 "Jesus to a Child" 이야기 - 벽장 속의 사랑

요즘 퇴근 후 매일 개인 공방에 처박혀서 닙턱 시즌4를 틀어놓고 자정이 넘게까지 작업을 하는 매우 건전한 생활을 보내는 중인데 어제였나 극 중에서 "Jesus to a Child"가 흘러 나왔다. 원래 닙턱의 삽입곡 선곡은 좋은 의미로 악명이 높다. 고르는 곡 마다 탁월한 취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니라 다른 미드의 프로듀서들은 쪽팔려서 못하는 직사주의(Literalism)적 선곡을 과감하게 해버리는 것 때문이기도 한다. 대개 드라마의 삽입곡을 고를 때는 멜로디를 극 중 정서에 맞추는 거는 당연하지만 가사의 경우 일부러 딱 맞아 떨어지는 걸 활용하여 개그의 수단으로 쓸 작정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극의 내용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을 쓰는게 자연스럽고 세련된 것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뮤직비디오 만드는 것도 비슷하잖아. "희미한 담배연기"라는 가사가 나올 때 담배연기를 화면에 뿌리는 뮤직비디오를 생각해 보라고. 그런데 제작자인 라이언 머피는 이런 식의 유치한 직사주의적 선곡을 절대 두려워 하지 않는다. 토막시체를 재조립하는 장면에서 라디오헤드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사 흘러나온다던지, 극 중 인물의 대사가 나오고 그 대사가 첫 가사로 나오는 노래가 곧바로 이어진다던지 하는 낯 뜨거운 당당함에 맞닥뜨리면 어휴 유치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오히려 나의 왠지 꼰대 같은 취향에 대해 반성하게 될 지경이다. 닙턱이야기는 정말 하루종일 하고 싶지만(예를 들자면 닙턱을 보고 나면 "아내의 유혹"은 막장드라마가 아닌 공익광고 뭐 이런 이야기) 일단 이야기 길어지니 다음 기회로 미루고...

어쨌든 조지 마이클의 "Jesus to a child"가 흘러나오는 대목은 주인공인 션 맥나마라가 선천적으로 지결손증을 가지고 태어난 막내 아들 코너에게 수술을 해주는 장면이 예전에 션 스스로 구순구개열로 치료 받던 자신의 회상과 교차되는 시퀀스인데 확실히 노래가 다루는 아이를 향한 예수와도 같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정서와 잘 어울린다. 게다가 시퀀스의 마지막도 성모자 내지는 문자 그대로 예수하고 어린아이를 소재로 한 옛 종교화 같은 구도로 마무리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라이언 머피식의 그럴싸함이다. 

그런데 이곡이 이야기하는 사랑이 사실 부모자식간이나 신과 인간 사이의  "내리 사랑"이 아니라 연인간의 사랑이라는 건 이 노래가 좋아서 가사를 파본 사람이면 다 짐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땅히 질척거려야만하는 연인간의 사랑이 이 노래 속에선 예수가 아이한테 보내는 숭엄한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는 묘한 뒤틀림이 있다. 이 노래 속의 사랑은 에로스적인 관계가 어떤 계기로 아가페적인 관계로 바뀐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가사 속의 여러가지 정황("하늘이 주고 하늘이 앗아간 heaven sent and heaven stole", "당신의 마지막 숨결로 with you last breath")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 계기는 바로 연인의 죽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1991년 1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Rock in Rio2"라는 성대한 음악축제가 벌어진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 해 벌어진 "락인리오"는 조화(造花) 장미다발처럼 화려했던 80년대 팝의 황혼을 불사르기 위해 전설적인 라인업이 모인 행사였다. 이 행사에 공연자로 참석했던 조지 마이클은 안젤모 펠레파(Anselmo Feleppa)라는 브라질 출신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를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조지 마이클이 '게이'내지는 '양성애자'라는 사실은 왬시절 부터도 소수의 관계자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일반대중으로부터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동성애가 손쉽게 기사화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도 했지만 조지 마이클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감추려는 노력을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브룩 쉴즈와의 염문이나, "I want your sex"비디오에도 함께 출연했던 캐시 정과의 공개 연애나  유명한 여성스타들  누구누구랑 자봤다고 떠들고 다니는 행동 모두 그의 의식적 노력의 일부였다. 그건 아마도 극도의 자기부정에서 탄생된 동성애 공포로 점철되어 있는("우리는 절대 게이 아님 단지 벗은 남자 몸을 숭배할 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마초정서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인의 피 때문이었을 것이다. 98년 불미스러운 일로 억지로 세상에 알려진 이 후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어머니가 알게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커밍아웃한 이후에 사람들이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왬시절의 곡들을 포함해서 이제까지 조지 마이클이 만든 사랑 노래들이 의외로 성별이 불분명했었다는 점이다. 주로 내(I)가 당신(You)에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에게 이야기하는 노래도 되고 남자가 남자에게 하는 노래도 된다. 초창기의 "Wake me up before you go go" 중의 lady라는 호칭 정도가 유일한 예외라 할 수 있을 정도다. She가 전면에 드러나는 ""Everything She Wants"같은 건 사랑 노래라기 보다는 악녀/책임/인생꼬임이 이어지는 "빌리진"류의 이성애의 악몽에 관한 노래다. "I'm you man(난 당신의 사내)"같은 언뜻 위버마쵸적인 제목의 노래도 찬찬히 살펴보면 여성에게 하는 노래라고 딱히 잘라 말할 수 없다. 이런 조지 마이클 노래의 성적 모호성은 뮤직비디오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거쳐 "이성애적 사랑노래"라는 인상을 주었던 거다. (최근에는 이성애자로 잘 알려진 남자 가수들의 곡도 오히려 게이 청취자를 공략하기 위해 이런 성적 모호성을 담는다는 추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선 가사쓰기 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조지마이클의 이런 공적 이미지 메이킹 덕분에 그가 안젤모를 만나던 90년대 초반, 그들의 사랑 역시 철저하게 감춰졌다. 비록 둘은 서로를 일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소울메이트로 인식하고 있었고 조지 마이클과는 달리 안젤모 펠레파는 제법 잘 알려진 동성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들은 절친한 친구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둘이 비밀스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1992년 안젤모는 에이즈 판정을 받게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조지 마이클의 스케쥴에서 에이즈 관련 활동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다. 
1993년 3월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던 안젤모는 뇌출혈로 세상을 뜬다.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 더 무거운 법. 연인의 슬픔을 공개적으로 애도할 수도 없는 입장이던 그는 바깥으로는 다소간의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새로운 곡을 쓸 수 없는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슬픔으로 보내던 1년 반이 지난 어느날 그는 홀린 듯 한시간 남짓 걸려 가사를 하나 써낸다. 죽은 연일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곡은 바로 "Jesus to a child"다.


1994년 11월 MTV유럽피언 뮤직어워드에서 처음 공개 된 후, (소니와의 문제로)앨범의 형태로는 1996년이 되어야 정식으로 소개 될 수 있었던 이 곡은 단조의 보사노바 발라드다. 대충의 감은 오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가사와 역시 마찬가지의 모호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뮤직비오 때문에 발표 당시 사람들에게 "분명 죽은 연인에 관한 노래 같은데 왜 하필 남자인 예수에 비유?"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의문과 억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에 발표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맥락을 모르면 정말 해괴한 이미지로 가득하지만
조지와 안젤모와의 일을 알고 나면 여러가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병실과 도망치는 듯한 환자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가면과 깃털을 쓴 죽음의 여신, 쓰러진 육체들
시간과 생명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수많은 바니타스들,  장례의 상징들, 삼도천...

맥락을 이해하고 다시 노래를 들어보자.
한국어 번역, 영어 원문 그리고 스포츠 캐스트 스타일의 코멘터리가 붙는다.
좀 깨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당신 눈에 깃든 친절함
아마 내가 우는 소릴 들었나봐요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Kindness In your eyes
I guess You heard me cry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병상을 곁에서 울고 있는 화자를 미소지으며 위로 해주는 환자의 모습.
 예수같은 미소는 죽음을 앞두고 생을 초탈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


그래요 난 축복받았어요,
하늘이 보내줬고 하늘이 앗아간거죠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I'm blessed I know
Heaven sent And Heaven stole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애인이 죽어 버린 이후, 그 때 병상에서 아픈 채로 지어주던 미소를 추억하는 대목이다)


내가 이 모든 고통을 통해 뭘 배웠을까
이젠 그 무엇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같은 감정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젠 알아요.

사랑을 발견하면
사랑이란게 존재한다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젠 없어서 그리워하는 그 사랑이 
차디찬 밤에 곁으로 찾아와준다는 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이 크나 큰 행복을 품고 있다는 걸 안다면
입맞췄던 그 연인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때에 위로가 된다는 걸

And what have I learned
From all this pain
I thought I'd never feel the same
About anyone
Or anything again
But now I know
When you find love
When you know that it exists
Then the lover that you miss
Will come to you on those cold, cold nights
When you've been loved
When you know it holds such bliss
Then the lover that you kissed
Will comfort you when there's no hope in sight

(이렇게 아프다면 사랑을 모르는 게 오히려 더 나았었을 뻔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진짜 사랑은 알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외롭고 힘들 때 큰 위안이 된다는 걸 고통을 겪으면서 화자는 깨닫게 된다.



내 눈의 슬픔
아무도 짐작 못했고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Sadness In my eyes
No one guessed
Or no one tried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벽장 속에 감춰져있는 화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그대만이 날 이해했다라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이 대목을 쓰는 조지 마이클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랑없이 차가왔지만 
당신은 마지막 숨결로
내영혼을 구원했어요.
당신은 날 보며 미소지었죠
마치 예수가 아이에게 그러듯
Loveless and cold
With your last breath
You saved my soul
You smiled at me
Like Jesus to a child

(연인의 죽음은 사람을 냉소하게 만든다. 슬픔은 비인간성을 끌어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연인은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길 바랬다. 그리고 그 모습은 예수 같은 무한한 애정을 담은 미소로 기억되고 있다.)

이 수많은 눈물 속에서 뭘 배웠을까
그 많은 세월 기다려
이제 막 시작하려 하는데
신이 사랑을 앗아간 셈이야
And what have I learned
From all these tears
I've waited for you all those years
And just when it began
He took your love away

(안젤모와 조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히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었다고 느껴진다. 20대 후반에 겨우 만나 너 내 일생동안 어디가있다가 이제 나타난겨 하는 기분이었는데 만난지 2년도 안되어 사별하게 된 그의 심정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사랑을 발견하면
사랑이란게 존재한다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젠 없어서 그리워하는 그 사랑이 
차디찬 밤에 곁으로 찾아와준다는 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이 크나 큰 행복을 품고 있다는 걸 안다면
입맞췄던 그 연인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때에 위로가 된다는 걸
But I still say
When you find love
When you know that it exists
Then the lover that you miss
Will come to you on those cold, cold nights
When you've been loved
When you know it holds such bliss
Then the lover that you kissed
Will comfort you when there's no hope in sight



그러니까 당신이 못다한 말들
내가 대신 노래해 줄께요.
당신과 내가 나눴을 사랑까지
두사람 몫의 사랑을 할 께요.
하나하나의 모든 추억이
이제 내 일부가 되었으니
당신은 영원히 내 사랑이에요.
So the words you could not say
I'll sing them for you
And the love we would have made
I'll make it for two
For every single memory
Has become a part of me
You will always be My love

(이 노래가 만들어진 이유, 앞으로 화자가 살아갈 이유다. 당신이 못다한 말들을 내가 노래로 만들고 당신이 못한 사랑 내가 당신 몫까지 한다는, 모 애니메이션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안젤모는 죽었어! 더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난 사랑 받았어요
그러니 난 사랑이 뭔지 잘 알아요.
내가 입맞췄던 그 연인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꺼에요
Well I've been loved
So I know just what love is
And the lover that I kissed
Is always by my side

내가 아직도 그리워하는 그 연인은
사뭇 어린 아이에게 있어 예수 같은 사람...
Oh the lover I still miss
Was Jesus to a child


1998년 아우팅 당한 이후 조지 마이클은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를 때 꼭 "안젤모"에게 바친다는 이야기를 한다.


안젤모 펠레파와 조지 마이클의 다정한 한 때






이 포스팅에서 쌓아놓은 환상을 박살내기 위한 첨언:

사실 안젤모 펠레파는 예수에 비견되기에는 좀 문제가 많은 인물이긴 했다. 원래 디자이너로서의 재능 보다 남자를 꼬시는 능력이 탁월한 꽃뱀이라서 조지 마이클에게 접근한 이유도 순전히 그의 명성과 돈 때문이었고 여하튼 각종 뒷공작을 펼쳐 결국 "공사"에 성공해 원하는 대로 조지 마이클로 부터 신형 벤츠를 포함한 비싼 선물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걸 자랑으로 떠벌리고 다녔고 그런 와중에도 여기저기 애인은 많이 만들고 다녔기 때문에 에이즈로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런 식으로 기억되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조지 마이클 역시 약물중독이나 섹스중독으로 있는 사고 없는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사람인데다가 약간의 허언증끼가 있어서 실제보다 훨씬 더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심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위험은 무조건 부정해버리는 위험한 레벨의 회피기질이 있는 사람이라 사실 1년 반의 작곡불능도 사실 안젤모의 슬픔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전속음반사인 소니와의 관계라든지 자신도 에이즈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라든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심하게 들기는 한다. 곧 출판을 앞두고 있다는 조지 마이클의 자서전이 나와도 앞에서 말한대로 추억을 심하게 미화하는 그의 기질 덕분에 아무래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 말대로 진실은 저너머에



- 음악밸리로 보낼까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역시 사랑 이야기라 연애밸리로 보냅니다.

 

by 액화철인 | 2009/10/07 18:36 | 가고싶지않은연애밸리가는글 | 트랙백 | 덧글(12)

처음해보는 애프터 서비스 - Dixie Chicks "Not Ready to Make Nice"

어제 올린 포스팅에 연결해서 올려봅니다. 정작 가수 이야기 하는데 음악은 소개 안했다는 게 걸려서 말이죠.
딕시 칙스의 2006년 재기작인 "Taking the Long Way(먼 길을 택하기)" 앨범의 첫번째 싱글인
"Not Ready to make nice(화해할 준비 안됐거든)"의 영상입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대로 2003년의 사태에 대한 딕시칙스의 입장을 담은 곡이죠.
걸어 오는 싸움 다 받아주겠다는 기개가 느껴집니다. 

2007년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공연입니다. 딕시 칙스를 소개하는 초로의 여성은 바로 포크의 전설인 조안 바에즈입니다.
이 분도 정치적 견해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컨츄리락이지만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다크한 어레인지와 진행이 이채로운 곡으로
나탈리 메인즈의 시원하게 뽑아주는 보컬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곡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좀 신파조로 뽑은 공식 뮤비를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컨츄리 음악계 전체에다 대고 하는 디스...
디스 송이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용서하라고? 말은 좋게 들리네
잊으라고? 내가 그럴 수 있을진 모르겠어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한다고 하지만
난 아직 기다리는 중이야 

의심하는 건 끝났어.
더이상 고민할 것도 없어. 
난 이미 댓가를 치뤘고
계속 치룰 거야. 

난 화해할 준비 안됐거든
내 주장을 꺾을 준비 안됐거든
난 아직도 불같이 화가 나 있고
같은 이야기 속에서 뺑뺑이 돌 시간도 없어. 

바로잡기엔 너무 늦어 버렸고
만약에 바로잡을 수 있다해도 난 아마 안그럴 거야. 
난 불처럼 화가 나있으니까 
니가 이래야만한다고 강요하는대로 내자신을 굽힐 순 없거든.

나보고 그냥 이제 좀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거 알겠는데
그 일이 내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놨어.
사실 그래서 왠지 즐겁기도 해

잘 준비를 하고 난 아기처럼 곤히 잠들어. 한 점 후회없이 말이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라는 작자가 딸에게 보지도 못한 생판 남을
미워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슬프고 슬픈 이야기냐고.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고작 내가 한 말이 누군가의 꼭지를 그토록 돌게 해서
나한테 "닥치고 노래나 안하면 니 인생 끝장인줄 알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가 되냐고. 

난 화해할 준비 안됐거든
내 주장을 꺾을 준비 안됐거든
난 아직도 불같이 화가 나 있고
같은 이야기 속에서 뺑뺑이 돌 시간도 없어. 

잘 넘어가기엔 너무 늦어 버렸고
만약에 그럴 수 있다해도 난 아마 안그럴 거야. 
난 불처럼 화가 나있으니까 
니가  이래야만한다고 강요하는대로 내자신을 굽힐 순 없거든.


용서하라고? 말은 좋게 들리네
잊으라고? 내가 그럴 수 있을진 모르겠어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한다고 하지만
난 아직 기다리는 중이야 



Forgive, sounds good
Forget, I’m not sure I could
They say time heals everything
But I’m still waiting

I’m through with doubt
There’s nothing left for me to figure out
I’ve paid a price
And I’ll keep paying

I’m not ready to make nice
I’m not ready to back down
I’m still mad as hell and
I don’t have time to go round and round and round
It’s too late to make it right
I probably wouldn’t if I could
‘Cause I’m mad as hell
Can’t bring myself to do what it is you think I should

I know you said
Can’t you just get over it
It turned my whole world around
And I kind of like it

I made my bed and I sleep like a baby
With no regrets and I don’t mind sayin’
It’s a sad sad story when a mother will teach her
Daughter that she ought to hate a perfect stranger
And how in the world can the words that I said
Send somebody so over the edge
That they’d write me a letter
Sayin’ that I better shut up and sing
Or my life will be over

I’m not ready to make nice
I’m not ready to back down
I’m still mad as hell and
I don’t have time to go round and round and round
It’s too late to make it right
I probably wouldn’t if I could
‘Cause I’m mad as hell
Can’t bring myself to do what it is you think I should

I’m not ready to make nice
I’m not ready to back down
I’m still mad as hell and
I don’t have time to go round and round and round
It’s too late to make it right
I probably wouldn’t if I could
‘Cause I’m mad as hell
Can’t bring myself to do what it is you think I should

What it is you think I should

Forgive, sounds good
Forget, I’m not sure I could
They say time heals everything
But I’m still waiting

by 액화철인 | 2009/09/18 14:20 | 음악이라는 쾌락 | 트랙백 | 덧글(2)

미국인들이라고 다 같은 미국인?

재범과 dixie chicks: 한국만 그러는 것은 아니야.
라는 포스팅이 있더군. 해당 포스팅을 요약하자면 "연예인의 잘못된 말에 발끈하는 건 우리나라만 그런 것 아니고 
문화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도 마찬가지임. 그러니 이건 우리 고유의 신경증 때문에 그런 것 아님"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논거로 딕시칙스의 이야기를 들고 있는 내용이다.

사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희까닥하는 건 딕시 칙스 때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중세의 마녀사냥도 있고 유태인사냥도 있었고
픽션에선 프랑켄슈타인 쇠스랑 추격도 있다. 인류의 문명이나 이성은 창호지 같은 거라서 물에 녹고 바람에도 찢어질 수 있는
법이라 사실 별 일 아님에 미쳐서 길길이 날뛰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건 맞다.

그러나 그 증거로 원글의 저자가 제기한 딕시칙스의 이슈는 뭔가 핀트가 안 맞는 듯 하다.
사실 미국이라도 다 같은 미국인이 아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녹아 있는 솥단지다. 
사실 20년 산 교포들 조차도 자기 동네만 아는 경우가 많다. 사실 TV만 좀 보아도 주변에 타인종 친구들만 있어도
느낄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런 충돌과 융합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미국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잘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원글에서 다룬 딕시 칙스의 이야기 중 본인이 부족하게 느끼는 부분을 채우는 느낌으로 거기에 대해 짧게 한 번
써볼까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러다가 길어지겠지?)



1. 미국인도 미국인 나름
사실 우리나라도 정치적 입장이나, 출신지역이나 교육수준이나 소득수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 처럼
미국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대체로 보수적인 공화당과 대체로 진보적인 민주당이 있다는 것 외에도
북부하고 남부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겨우 공업과 농업간의 산업구조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해득실/계급갈등/산업주도권쟁탈의
문제를 흑인인권문제로 포장해서 서로 총칼을 겨눈지 15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당시 노동집약적인 목화농업에 반드시 필요한 노예제도를 고집했던 쪽의 정치적 배경이 민주당 중에서도 남부지역의
의원들이었기 때문에 같은 민주당이라도 북부와 남부는 첨예하게 달랐다. 사실 그 때의 민주당과 요즘의 민주당은 틀리지만
닉슨 때까지만해도 남부의 민주당은 바로 그 민주당이었다. 워싱턴에서 민주당이 진보적인 법안의 발의를 위해 앴지만
남부의 민주당은 한마디로 공화당 뺨칠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보수=공화, 진보=민주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한  2차대전 이후 뉴딜 시대의 FD루즈벨트 정권 중에도
남부에선 보수면서도 정신 못차리고 계속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건 사실 뭐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주장하는
더욱 적극적인 정부의 시장개입 등의 이데올로기를 따라서가 아니라 아빠가 지지했으니 나도라는 좀 웃기는 이유였다.
노예해방의 기치하에 남북전쟁을 일으켜 남쪽 땅을 짓밟은 정권이 공화당이었으니 아무래도 심정상 지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닉슨과 레이건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긴하는데, 지금도 남부출신의 민주당은 진짜 두건만 쓰면 KKK될 것
같은 애들이 있다.

날씨가 따듯하고 2차산업보다는 1차산업이 발달해서 그런지 남부에 대한 인상은 전반적으로 좋지않다. 
땡볕에서 일하느라 목뒤가 뻘겋게 익었다는 의미에서 나온 "redneck"이란 표현은 원래 거친 남부 촌놈을 의미하는 말이고
(후에 아팔래치아 쪽의 하층민이나 심지어는 캐나다의 촌놈들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기도 했지만)
촌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hick"이란 말 역시 남부 사람들에 주로 쓰인다. 

딱 이런 이미지라 보면 된다.


Trailer park trash라는 말은 이동주택인 트레일러들이 모여있는 단지에 사는 하층민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물론 이런 이동주택단지가 남부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인간 쓰레기들은 아니지만
이 역시 주로 남부의 무식한 하층민의 이미지와 연결이 된다. 

흔히 남부의 하층민들 이야기가 나오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은 다음과 같다. (남부사람들이라고 다 이런 건 아니다)

1. 인종차별주의와 KKK - 남북전쟁 때 패배한 남부의 민주당지지자들이 흰 두건을 둘러쓰고 십자가를 태우면서 건방진 흑인들을
   린치하고 다녔다. 아직도 KKK는 남부에서 가끔 날잡아 행진한다. 물론 잘사는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미워하는 경우는 없고
   다 지들이 초라한 인생을 사는 걸 유대인과 흑인들과 기타 백인이 아닌 인종의 탓으로 돌리는 인생 패배자들이라고 보면된다.
   (어느나라나 원래 몰려다니면서 남탓하며 분노하는 사람들 치고 스스로 행복한 사람들은 없다. 언제나 이런 사람들은 
   함께 우우 하기전에 스스로의 인생이 과연 살 만한 건가를 고민하는 쪽이 훨씬 인류에 도움이 된다.) 필자가 살던 도시에도 
   이런 애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었는데 평소에 안 가던 곳을 차를 잘못돌려 갔다가 나무에 흑인 마네킹인형을 매달아 논 걸
   보고 시껍했던 적이 있었다.

2. 남부군 깃발 - 노예제도를 찬성했던 남부 11개 주의 연합인 confederate의 깃발 역시 이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깃발에 "남부는 다시 일어서리라"라고 써가지고 다니는 넘들은 참 무섭다. 이 깃발은 KKK행진에도 쓰이지만
   자동차 범퍼스티커로 혹은 대놓고 집 앞에다 계양하고 사는 애들도 있다. 이걸 가지고 인종차별 아니고 남부출신의 자부심
   어쩌고 하는 넘들을 많이 보았는데 결국엔 스스로는 잘난 게 없으니까 애국심과 애향심 뒤에 숨어서 "백인최고"라는 소리나
   질러대는 인생패배자들이다. 


이렇게 대놓고 남부동맹군깃발을 쓰는 거면 차라리 분명한데 진짜 안보이는데 붙이고 다니는 놈들도 많다.




3. 근친상간 - 원래 교육수준이 낮다 보니까 삼촌과 사촌과 심지어는 부모자식간의 상간이 빈번하게 이뤄진다는 그런 통설이
   있는데 사실 누가 조사한 적은 없으니까 원래 남부 녀석들은 사촌끼리 해서 애도 낳고 그런다라고 사실처럼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꽤나 널리 펴져있고 대중매체에서도 흔히 보이는 하나의 전형으로 확립되어 있다.  
   심지어는 남부 하층민들은 이렇게 근친교배를 하니까 머리가 나쁘다라는 식의 뉘앙스가 파생되기도 했다.      

4. 픽업트럭과 건랙 - 사냥을 다니고 험한일을 하고 미국차를 사랑하다 보니 역시 차종은 픽업트럭이다. 특히 쉐비의 픽업트럭.
   사냥용이다 보니까 차에는 총을 적재할 수 있는 건랙을 다는 경우도 흔하다. 총기소지는 미국인의 권리라면서 거품을 무는 것도
   이 아저씨들이다. 미국에 살 때 리서치 때문에 총기잡지를 정기 구독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NRA(미국총기협회)에서
   전화가 왔었다. 설문조사하는 전화였는데 한참 떠들다가 총기는 가지고 있느냐고 하길래 음 외국인이라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랬더니 아무래도 좀 놀란 듯 그 특유의 심한 남부 액센트로 "그럼 몸조심 하셔" 뭐 이런 식으로 인사하고 전화를 끊더라. 

5. 개신교와 애국심 - 원래 민도가 낮을 수록 종교와 파시즘은 잘먹히는 법. 종교는 그들에겐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이들에겐 미움의 당위로 쓰인다는 것. 그러니까 인종차별이나 낙태클리닉에게 벌이는 이들의 테러행위의 뒤엔 전부 소위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의 잘못된 해석이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시스템적인 착취의 도구로 쓰인다는
   건데 정치가들이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 들먹이는 것이 기독교다. 또 한 자기들도 못살면서 TV선교사들에게 돈을 퍼주는
   것도 이 쪽 사람들이다. 사실 이들이야 말로 개신교도들이 종교탄압을 피해 건너온 초창기 이민자들과 가장 가까운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신앙심과 애국심은 같다. 사실 독립전쟁 때도, 남북전쟁 때 남군으로 피를 많이 흘렸었다.
   하지만 이 하층민들 중 조상이 목화농장을 가지고 있거나 종교지도자였던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남부 자본가들을 위해
   땀흘렸던 백인 노동자들 그러니까 흑인노예들과 마찬가지인 무산계급인데 정작 남부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에
   앞장서서 총알받이를 해준 거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보수적 정치인들의 가장 큰 정치기반이라는 건 우리나라의
   저소득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신앙심과 애국심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계속 거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6. 컨츄리 음악 - 남부는 컨츄리와 블루그래스, 블루스 음악의 본산이다. 그 중에서도 컨츄리 음악은 이들에게 있어서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컨츄리를 소비하는 가장 큰 마켓이 이들이다. 가끔 가쓰 브룩스 같은 초대형급 스타들이 나타나서 컨츄리의
   매력을 메인스트림에 떨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스타들이 없어도,  백인 젊은이들 조차 R&B와 어번을 듣는 요즘에도 
   꾸준히 컨츄리를 소비하는 계층이 바로 이 쪽이다. 사실 그것이 컨츄리 음악에 무식한 촌놈들이나 듣는 음악이라는 낙인을
   찍고 장르 자체에 나쁜 인식을 주어 자주 메인스트림화되지 못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은 그걸 극복하는 스타들이 나온다)

이렇게 주류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레드넥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Jeff Foxworthy라는 남부출신의 코미디언이
"만약 이렇다면 당신은 레드넥일 수도(You might be a redneck if...)"라는 자학 개그성 코미디로 
Redneck들(과 그 외의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 농담들 몇 개를 살펴보면
미국 내의 레드넥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You might be a redneck if you work in the yard with your shirt off and so does your wife
만약 당신 웃통을 벗고 들판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당신 부인도 마찬가지라면  당신은 레드넥 일 수도 있습니다.

You might be a redneck if you’ve been married three times and still have the same in-laws
만약 당신이 세 번 결혼 했는데 처가식구들이 여전히 계속 같다면 당신은 레드넥 일 수도 있습니다. (전부 한 자매하고 했다는 이야기)
 
You might be a redneck if you  take a six-pack cooler to church
만약 맥주6캔들이용 아이스 박스를 가지고 교회에 간다면 당신은 레드넥 일 수도 있습니다.

You might be a redneck if you think watching professional wrestling is foreplay
만약 프로레슬링시청이 "전희"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레드넥 일 수도 있습니다.

You might be a redneck if your parents met at a family reunion
만약 당신 부모가 명절 가족 모임에서 처음 만난 거라면 당신은 레드넥 일 수도 있습니다. (근친상간)


사실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 소득 수준이 낮아서 멍청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모든 흑인은 범죄자"나
"모든 게이는 변태" 만큼이나 나쁜 일반화지만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고 다닐 수 있는 건
바로 이사람들 스스로 남들을 미워하고 살육해온 전력들이 있고 실제로 욕먹을 만한 짓, 멍청한 짓을 하고 다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실제로는 정말 사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집단이기도하고
사실상 가해자의 위치에도 자주 서는 계층이기도 하다. 

근데 사실 써놓고 보니 어느나라 국민성과 좀 비슷하기도 하다...
(계층별 이미지와 실상의 상대성에과 레드넥에 있어서 정치적 공정함의 적용에 대해선 기회가 닿으면 포스팅하도록 하고)

2. 딕시 칙스 사건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할만큼 유명한 이야기지만 간단하게 정리 해보자면 
2003년 런던 콘서트 때 스테이지에서 "Traveling Soldier"를 부르기 전에

"우리 미국에서 왔지만 우리도 전쟁 싫고 부시가 우리 텍사스 출신이란게 쪽팔려요"라고 한 거다. 

상상을 돕기 위해 한국 연예인을 집어 넣어 생각해 보자면 윤밴이 독일 가서 공연하는데
독일애들이 "한국애들 대운하 짓는다네, 우리 지었다가 말았는데... 한국인들 조트망, 병신들 ㅋㅋㅋ"이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
그러니까 윤밴이 노래 부르기 전에 "하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겠슴다. 우리도 대운하 싫어요. 쥐새끼가 대통령이라 쪽팔려요"라고
이야기 한 셈이다.
대충 윤밴이 실제 이랬다면 분위기 어떨 줄 짐작 감? 내가 보기엔 오히려 용자라고 칭찬을 더 들으면 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딕시 칙스의 발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난리가 나긴 했지만 대부분은 속시원하게 이야기 했다라는 반응이었다.
아닌게 아니ㅏ 2003년에 부시를 깐 연예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랍시고 권리장전이 한창 침해당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도 알 파치노도, 리차드 드라이퍼스도, 크리스틴 데이비스(섹스앤더시티의 샬롯)도,
새무얼 엘 잭슨 형님도, 마틴 쉰도, 대작가인 커트 보네거트도 광고에 출연하면서 까지 부시를 깠다.
사실 부시는 재임기간 내내 사방에서 까였고 제정신이 박혀있는 미국인이라면 부끄러워해야하는 존재였다.

부시 치하 제정신인 미국인들의 반응, "세계인들아 부시 때매 졸 미안해"


이들의 문제는 원 트랙백 포스팅에서 말한 것 처럼 시기를 잘못 잡은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의 음악적 장르가 문제였던 거다. 
딕시 칙스의 장르가 컨츄리였고 컨츄리의 팬들의 대부분이 "미국만세!!가서 다 조지고 부시고!!!" 뭐 이러는 레드넥들이다.
딕시 칙스가 락이었다면 아마도 그 발언에 대해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카니에 웨스트가 부시를 깠을 때도 ("부시는 흑인들은
신경 안 써") 아니 감히 대통령을 이러면서 카니에 앨범 불매운동 이런 건 안 일어났었다. 하지만 폐쇄된 컨츄리 음악계는
자신들의 음악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굴복해야 했다. 쉽게 말해 우우 들고 일어난 놈들은 민도가 낮고 극우파시즘을
신봉하는 남부의 멍청이들이었다는 거다. 이들이 들은 건 간단하다 "미국대통령 쪽팔려요" 이 말 하나만 들었다.
왜 쪽팔린지,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그냥 "이런 영국가서 나라 망신 시키는 년들" 뭐 이렇게
들고 일어난거지. (그러니까 난독증과 제대로 안 읽음은 칠거지악의 근원이다)


물론 컨츄리팬들 중에도 당연히 딕시칙스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위의 사진은 "전쟁을 반대하는 컨츄리팬들은 딕시칙스를 환영합니다"
밑에는 콘서트 장에서 "2004년 대선에서, 대통령은 나탈리로!(나탈리 메인즈=딕시 칙스 보컬)"

하지만 그런 멍청이들도 팬들이라고 딕시 칙스는 공식사과를 했는데 그 때 잘 못한 것도 없는데 왜 사과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던걸 보면 확실히 딕시칙스가 뭘 잘못했던 것 같지는 않다. 사과에도 불구하고 불행과 무료함이 뼈에 사무쳐서
까야겠다는 대상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남부의 하층민들께서는 더욱 가열차게 반대행진을 했고 시디를 태우고
칙스의 스폰인 립튼 불매를 하고 난리를 부린 거다. 딕시 칙스의 팬베이스 중 76%가 팬 안할래라고 했다는 사실은
좀 놀랍긴 해도 원래 컨츄리음악의 팬베이스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옳은 일은 옳은 일, 마돈나가 쉴드를 쳐줬고 더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쉴드를 쳐줬다. 그리고 그들의 사건 후
첫 미국투어지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우리 나왔으니까 어디 함 야유를 보내려면 보내봐봐"라는 나탈리 메인즈의 외침에
만석의 관객들은 오히려 환호로 답했다. 
물론 보수적인 멍청이들이 잡고 있는 컨츄리 음악계에선 상황이 틀렸다. 딕시 칙스 음악을 틀었다고 방송국이 DJ에게
징계를 먹이기도하고 컨츄리뮤직어워드 시상식에서 후보자로 딕시칙스가 거명되었을 때 야유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딕시칙스는 시상식에 참석 자체를 안했었음)
이 사람들이 누구겠는가? 

그래서 결말은? 
원 포스팅 저자께선 딕시칙스가 사건 이후 예전 같지 않고 뭔가 대중의 심기를 거슬려 피해를 봤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는 것 같다. 사실 그 글의 기본적인 논지는 건전하다. "그런 광풍은 잘못된 것이지만 사람사는 곳에선 다 벌어진다.
그리고 그건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문제다. 한국만 그런건 아니다"라는 말은 100% 동의 한다 하지만 딕시칙스의 결말 부분이
조금 사실과는 다르다. 
" 예측불가의 미친 놈들에게 기스를 내면 부당하고 억울해도 깽값 무는 거다"가 아니라 
"미친 놈들의 지랄 발광 따위는 제대로된 사회라면 눌러버릴 수 있다"라는 것이 실제 벌어진 일의 교훈이다.

2003년 그 사건 이 후 딕시 칙스에게 벌어진 일은 실제로는 이렇다.

컨츄리 음악계가 딕시칙스를 버렸다고 하지만 딕시칙스 역시 컨츄리 음악계를 버렸다.

2003년 컨츄리뮤직어워드는 칙스에게 상하나 주지 않았지만 그런 촌스런 상 받아서 뭐해.
칙스는 바로 그해 더 권위있는 그래미를 세 개 챙긴다. 
슈피겔지와의 2003년 인터뷰에서 칙스는 "더 이상 우린 컨츄리 음악계에 속하지 않고 락큰롤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컨츄리 안하고 이젠 댄스 이런 이야기는 이니다. 우리 음악이야 어차피 컨츄리풍의 락인데
그쪽 세계에서 안 받아준다고 음악 못하는 것도 아니고, 뭐 우리가 말지 뭐 니들 없으면 못하냐.
남부에서 촌놈들끼리 잘 먹고 잘살아봐라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사건 후 처음 발표한 그들의 차기 앨범 "Taking the Long Way"(2006)은 팝차트와 컨츄리차트 두 군데에 동시에
1위로 데뷔하고 첫주만에 골드레코드를 달성한다. 그들의 세 번째 넘버원 앨범이었다.
물론 여전히 옹졸한 컨츄리 음악계는 그들의 앨범을 틀지 않았고 그들의 공연 광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해 공연으로 카나다와 유럽과 북미에서 번 수익은 그 손해를 커버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해 그래미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5개의 상을 받는다.
그 상들 중에는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같은 굵직한 것들도 포함되어있다.

2006년 런던에서 다시 공연하게 된 칙스는 관객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고 관객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낸다.
"아셔야할 듯해서, 우리는 부시가 텍사스 출신이라 쪽팔려요"



3. 박재범사건과 딕시칙스를 비교?.
사실 따지고 보면 웃긴다. 칙스는 나름 당당하게 정치적 소신을 이야기 한것이고 박재범은 그냥 개인적인 공간에서
투덜거린 것 뿐이다. 그러니까 이 둘을 비교한다는 게 사실은 좀 낯 뜨겁고 웃기긴하다.

사실 원트랙백글의 논지에 극렬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찬성한다.
하지만 칙스사건을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으로서 잘못 전달되고 있는 정황에 대해
바로잡기 위해 포스팅을 하기로 한 거였는데 이렇게 쓰다보니
두 케이스를 비교할 수 있다고 100번 양보해서 억지로 억지로 해봤을 때 얻어지는 결론이 있다.

그건 사실 어느 나라나 광풍은 있다는 결론이 아니다. 거기서 내려질 수 있는 결론은 파시즘 같은 걸 받아들일 정도로
멍청하고 불행한 패배자들이 광풍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깨어 있는 제정신 박혀있는 사람들이 그런 걸 만들지는 않는다.
그걸 만들어 낸 사회나 계층은 병들어 있는 거다. 


좀 심하게 이야기 해보자면  "여자는 못생긴 쪽이 서비스가 좋아"나 "느닷없이 다른 여자가 우리 안방에 누워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라는 말이냐. 주물러달라는 거냐"나 "사실 요(자신의 여제자를 가리키며) 감칠 맛이 있다.
요렇게 조그만데 매력이 있는 거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회적 제재도 못하는 주제에 만만한게 연예인이라고
사적인 공간에 어릴 때 남긴 "한국 쫌 병맛인듯"이란 말과 본인 스스로도 아니고 본인 친구가 "가서 따먹어라"는 말  
가지고 윽박질러 쫓아낸 비겁함과 멍청함 그리고 그것이 잘 버무려진 열폭질을 하는 인간들이 같은 국민이라는 것이 좀
불쾌하기까지 하다.

결국 이들의 수준이 미국남부 레드넥 수준이라는 이야기잖아...
뭐 그런건가?
응 그럴지도..

by 액화철인 | 2009/09/17 19:57 | 오욕의 타임캡슐 | 트랙백(1) | 덧글(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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